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화사하고 역동적인 변화, 상동_20170916

사려울 2018. 9. 19. 23:54

흔적과 더불어 기억 또한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상동을 찾고 뒤이어 밤이 되면 제천을 잠시 찾기로 했다.

상동에 오면 시간도 고갯마루를 넘기 힘들어 잠시 머무르는지 과거의 흔적을 한 걸음 늦게 지우고, 지워지기 전 남아 있는 그 흔적들에 대한 호기심과 흩어지려는 기억을 다시 추스리기 위함이었다.

시기적으로 완연한 가을이 내려 앉기 전이라 여전히 여름 색채가 강했지만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는 여름조차 막을 수 없는 순응이었는지 미세한 가을 파동은 조금만 주시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라진 광산마을, 상동_20150912

동화처럼 단아했던 모운동을 뒤로 한 채 더 깊은 산중으로 뻗어난 한길의 끝엔 또 다른 한 때의 부귀를 누리던 탄광마을이며 오늘의 최종 목적지였던 상동이 있었다. 한때 세계 텅스텐의 10%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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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상동에 도착하여 직행한 곳은 꼴두바우로 짙은 녹음이 조금씩 지쳐 서서히 흩어지려는 조짐이 보였다.

과연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한편으론 궁금했지만 어느 누군가에 의해 가꿔지는 걸 보면 같은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관심에서 거부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도 도드라진 기암은 마을을 지탱하는 수호신이라 해도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고, 작은 손길은 그에 대한 화답이라 여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상동에 오면 변함없이 느끼는 게 협곡 같은 골짜기라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럼에도 그 모습이 평이하지 않았다.

오는 길에 스치듯 지나는 선바위산 또한 풍류를 읊기에 멋진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꼴두바우 광장 한 켠 재떨이에 쓸쓸히 남겨진 담배꽁초는 묘하게 쓸쓸하고 텅 빈 공원과 흡사했다.

공원 전체가 무척 깔끔해서 아무렇게나 눌러 끈 연초 잎은 점점 하얗게, 하얀 필터는 점점 누렇게 변해가는 모습에서 연약한 두 존재가 서로 의지하는 게 아닐까?

또한 이물질이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공원에 냉랭한 분위기를 살짝 흔들어 깨우는 존재 같기도 했다.

가지 끝에 살짝 물든 가을.

자식을 바라는 어미의 마음, 무릇 모든 생명이 가진 불멸의 진리 아니겠나.

옛부터 마을 수호신과 같은 거대 바위 앞에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다분히 도가적이고 유가적인 이야기들은 이미 전국토에 걸쳐 깊이 뿌리내린 전설이라 그에 맞게 이야기가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야기들도 외면과 함께 시들해져 갔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삶을 선택했던 상동도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 응집되어 있던 사연들 또한 잊혀지고 지워지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형의 가치는 어떤 외압에도 능히 살아남지만 기억의 단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

공원을 정독하듯 천천히, 그리고 세세히 둘러보며 희미해진 기억을 추스르는 사이 시간이 꽤나 조급했던지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여울처럼 물이 찰랑이던 수로는 이미 물의 기억이 잊혀진 듯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꼴두바우도 마냥 시간이 기다려 줄 수 없는 노릇이라 아쉬운 마음을 챙겨 작별하는데 무슨 미련인지 힐끗 둘러보며 점점 멀어졌다.

정식 명칭이 꼴두바위? 아니면 여느 지도에서 처럼 꼴두바우?

차라리 어떻게 불러도 용인되는 그런 곳이 정감 넘친다.

꼴두바우 주차장 주변은 이미 인적이 메말라 어디에서도 근래 들어 사람이 남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말끔하게 덧칠해진 건물은 묘한 아쉬움을 폭로하는 것만 같았다.

이때만큼 터미널이 궁금한 적 있을까?

재회하는 가족에게 있어 가장이자 아버지는 가족들이 늘 사무쳤을 게고, 가족들은 남편이자 아버지 안위가 늘 걱정되었을 거다.

안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당시 직접적인 재회 뿐이었을 건데 그때의 정겨움을 터미널 앞에 담백하면서 확실하게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면 터미널 내부는 어떨까?

동서울부터 가까운 태백과 영월까지 제법 많은 차편은 준비되어 있음에도 손님을 본 적은 없었다.

내부에는 창고를 방불케 했고, 매표원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멈춰선 시계.

2015년 여정 때와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르고 이후부터는 이와 같은 모양이다.

이제는 시계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시대일까? 아니면 시간이 멈춰버린 상동의 단상일까?

터미널에서 꼴두바위 방면을 향해 마을로 천천히 걸어 두 갈래 길이 합쳐지는 곳까지 갔다 다시 왔던 길로 출발했다.

대부분 인적이 없는 점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지만 2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은 새롭게 도색하여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벗겨진 페인트와 그 위로 흘러내린 얼룩들에 새로운 색깔이 칠해져 거리는 확연히 화사해졌고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2년 전을 회상하며 한길을 벗어나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고,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계단이 촘촘히 들어찬 오르막이 나와 길 따라 걸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야 될 놀이터는 잡초가 무성했다.

골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거의 없어 인적에 목마른 형태 그대로였다.

사람이 떠나 홀로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지붕은 내려앉거나 무너졌고, 그 자리엔 자연의 일부가 황막한 흔적을 덮고 있었다.

한길과 맞닿은 집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구조물들은 사람을 그리워하다 이렇게 제 힘을 잃어버렸다.

비교적 긴 계단을 따라 가옥이 늘어선 길을 찾아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았다.

여긴 사람이 거주하는지 길도, 가옥도 온전했다.

앞서 사람이 살고 있는 가옥은 막다른 길이라 다시 돌아와 뿌듯한 오르막을 따라 걸었고, 이 길은 다른 가옥과 길로 이어졌다.

누군가 길 옆에 경작을 하고 있어 다른 터와 달리 여기 작은 터는 생명들이 정갈하게 성장했다.

다만 길 위에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방증으로 채 익지도 않은 감이 빼곡하게 떨어져 길 위에서도 그 원형을 유지하며 점차 짓무르고 있었다.

그런 황막한 모습을 애써 지우려는지 화사한 꽃이 피어 공허의 막장이 아닌 거듭된 희망을 암시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과 삶의 양분 위에 부활을 보여주는 각종 채소.

기나긴 골짜기에 기억은 진행형이며 함께 어울리는 전형을 보여줬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사이 하루 시간은 점점 지나 내일 떠오를 시간을 기약해야 했다.

다시 한길로 내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암시였다.

원래 가진 몸에서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졌다.

부서진 유리와 창문, 낡은 창틀은 어쩔 수 없겠지만 건물 대부분을 차지하는 벽이 새로 옷을 입으면서 덩달아 골목 전체가 화사해졌고, 걷던 중에도 주변을 찬찬히 훑어봤다.

이 거리의 인적이 끊이지 않던 시절에 자리 잡은 간판과 메뉴들이 아직 남아 그 시절의 사진관이 되었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이전에 가득했던 무거운 정적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다시 터미널 부근 주차된 자리로 돌아왔다.

어느 누군가에게 추억이 된 시간을 형상화시킨 작품들이 휑하던 공간에 들어서서 그 어느 누군가의 향수와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했다.

동상의 얼굴엔 하나 같이 미소가 담겨져 있는데 향수가 깃든 사람들 또한 이 모습을 접한다면 같은 미소가 새겨지지 않을까?

일상이 고되고 힘든 만큼 뒤따른 휴식은 더욱 달콤한 것을, 그래서 이 한 잔 막걸리는 안도와 보상이나 다름없다.

공원에 작품은 모든 걸 다 함축적으로 재현시켜 놓았다.

이게 바로 일상의 단상 아닐까?

시계점 앞은 어느새 인적은 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정갈하게 꾸며놓고 시간을 고치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물은 왜 끊이질 않고 흘러넘치는 걸까?

 

2015년 캐나다 광산개발회사 알몬티는 개발권을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중석 재개발을 선언했단다.

다국적 컨소시엄이 구성된다면 개발은 시간문제로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대규모, 다국적, 협력 체계가 구성될 경우 이들은 개발을 진행할 수밖에 없고, 이들의 사업 보전 영역은 상당히 넓어 단기간 투자에 대한 손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흔히 외국계 다국적 기업은 빠끔이라 애시당초 돈이 되지 않거나 불확실성이 높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을 거다.

역설하여 채산성이 인정되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으로 자본이 유입되기 시작한다면 상동의 변화 또한 시간문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몇 번 상동을 들락거리는 사이 과거 향수를 지펴준 덕에 정이 들어 마치 길목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그 정에 따른 관심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에 이와 같은 사례가 얼마나 많겠냐마는 내 기준에서 접근하기 비교적 쉬우면서 감성과의 절묘한 합치, 때마침 뻔질나게 여행을 다니는 강원도 남부권에 속해 있는 우연 아닌 필연이라고 봐야 된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자주, 몇 번 오게 될지, 한 치 앞 내일도 예측을 할 수 없는 마당에 더 먼 미래는 더더욱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무심코 덜 익숙한 왼손보다 오른손으로 수저를 들지 않을까?

내 마음 가는 대로 미래에 얼만큼 상동과 그 일대를 찾을지 나 또한 수 년이 지나 고찰해 봐야 되겠다.

상동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사이 어느새 해가 저물어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가을 잠자리가 위태로운 풀 위에 자리를 잡고 흔들릴 때마다 날개짓 하며 공중에 떴다 다시 그 자리에 안착했다.

가을이 되었다는 건 낮이 부쩍 짧아졌다는 거다.

언젠가 이 공원에서 크게 틀어 놓은 음악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공단에 있는 공원이라 주말 휴일은 도로를 포함하여 일대가 텅 비다시피 했는데 그 기회를 한껏 누린 기억,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을 반추해 그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잠시 넋 나간 사람처럼 음악에 심취해 봤다.

물론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공원 전체가 습지처럼 눅눅하여 오래 있을 수 없어 당시만큼 시간을 보낼 수 없었으나 재현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는 있었다.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은 깊었고, 잠시 동안 레이크호텔 옆 호수변 산책로를 걸으며 기나긴 여정을 가진 하루를 마무리했다.

상동의 오래된 시간을 되돌아보며 유형의 존재들은 시간과 함께 퇴색되고 늙고 나약해져 가지만 무형의 기억은 잊힐지언정 전혀 퇴색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그 변하지 않는 시간의 기억들, 온전히 남은 추억들을 되새기는 하루이자 여정의 마지막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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