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백제의 함성이 겨울 서릿발처럼 묻혀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에 빠진 당성(당항성)이 같은 고장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북편 멀리 사라진 위대한 한민족 고구려가, 남편 가까운 곳엔 슬기롭던 백제가, 서해 건너 대륙을 호령하던 당이 있었고, 성 일대 맹주는 지혜롭던 신라였다.
현재의 필연은 과거의 셀 수 없는 파편들이며, 생존을 위한 핏빛 투쟁은 인류의 본질이다.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에 뜨겁던 열기는 잠자고 이제는 황량한 겨울이 활보해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시대의 슬픔과 기쁨도 모두 땅 속에 묻고 서리와 이슬처럼 그저 다가왔다 흩어질 뿐이었다.
당성 또는 당항성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테뫼형(산봉을 중심으로 산정 외곽부를 돌로 쌓은)과 포곡형(봉우리와 계곡 주위를 둘러쌓은)을 결합한 복합식 산성이다. 1971년 사적 제217호로 지정.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가기 위한 최적의 관문이었고, 그래서 삼국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이곳은 원래 마한 54개국 중 원양국에 속하였다가 마한의 소국에서 성장한 백제의 강역으로 편입되었고, 그 후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펴 백제의 한강 유역을 쳐서 빼앗은 뒤 이곳에 당성군을 설치하였다.
백제는 아신왕 때 고구려의 남방 지역을 끊임없이 공격하였으나, 396년 군사를 이끌고 온 광개토대왕에게 동생까지 볼모로 내주는 등 호되게 당하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472년 개로왕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남북으로 협공하자고 제의하였지만 북위의 반응이 좋지 않아 실패하였다. 더구나 백제의 이 계획이 장수왕의 귀에도 들어가는 바람에 백제 침공에 좋은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출처] 당항성_나무위키
당항성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한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 으로 당항성(黨項城) 또는 당성(黨城)으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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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둘째 날, 조금은 이른 아침에 곧장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포도로 유명한 송산을 지나 조금만 진행하면 되는 거리로 네비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도로가 신설되는 화성이라 가는 길에 평택시흥 고속도로를 갈아탄 뒤 송산마도IC에서 내려야 했지만 전형적인 초행길 설레발로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빠져 비봉IC로 잘못 내렸고, 뒤늦게 알곤 하는 수없이 국도로 진행한 실수가 있긴 했다.
그래도 일대 도로가 텅 비어 있어 지체 없이 당성에 무사히 도착했다.
당성에 다다르자 매끈한 주차장과 방문자센터가 있었는데 센터 내부엔 인기척이 있어 필요한 경우 이용할 수 있었다.
연휴에도 근무하시는 분이 계셨다니!
당성에서 가장 먼저 청명한 하늘이 환영했다.
방문자센터에서 당성으로 가는 길 또한 이렇게 매끈했고, 그리 어렵지 않은 길임에도 도중에 이런 이정표가 있어 길 잃거나 당황할 염려는 없었다.
그래서 당항성에서 당성으로 개명한 걸까?
당황하지 마라고.
주차장에서 당성까지 산책로와 마찬가지라 큰 무리 없이 진입했고, 가는 길 주변엔 공설묘지가 있었지만 점점 이장하는지 드물게 묘지가 있었고, 빈자리는 겨울 풀이 무성했다.
어느 정도 지나 당성의 성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성의 첫 관문에 도착하여 주변을 휘리릭 둘러봤다.
성곽 따라 좌측으로는 조금 가파른 계단길, 정면으로 진행하다 우측 성곽으로 꺾이는 길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무장애길이었다.
좌측 계단길이 가파르다면 정면 전망대 갈림길에서 무장애길을 통해 좌측으로 오를 수도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전망데크에 올라섰다.
우측 무장애길로 방향을 잡았고, 궤적을 그리며 가야 될 방향을 대충 훑어봤다.
우측 성곽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로 진행했다.
송산면 육일리의 작은 마을이 전망되었다.
길은 성곽 위로 그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하는 곳인지 잔디가 깔려 있는 노면은 비교적 단단했다.
일자 형태로 길게 늘어선 구봉산 능선으로 통하는 북문을 지났다.
나지막한 산에 기댄 성이라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겹쳤다.
한파까지는 아니었지만 추위가 몰려온 날이라 덕분에 대기는 청명한 편이었다.
북문을 지나 성곽이 남서쪽 방향으로 꺾이는 부분에 작은 쉼터가 있었고, 눈에 띄는 나무 하나 우뚝 서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동행하며 파랗게 흥겨워했다.
구봉산 정상과 이어지는 성곽은 완만한 오르막 지형으로 접어들어 멀리 구봉산 정상과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구봉산 정상이자 당성의 가장 높은 망해루지로 향하던 중 뒤돌아 보자 짧은 시간이지만 꽤 많이 왔다.
성곽의 북서쪽 방면은 토성 형태로 구봉산이 낮은 해발임에도 꽤 가팔랐다.
당성은 2개의 성이 결속되어 있다는 내용.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서해 바다가 있었다.
완만한 성곽이자 지형이 조금 가팔라지는 짧은 구간을 오르면 바로 구봉산 봉우리며, 망해루가 있던 자리.
지금은 황량한 역사의 잔해만 남아 사라진 적의 동태 대신 주변 전망을 헤아렸다.
예나 지금이나 기원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추상적인 염원의 실체 중 가장 흔하게 형상화된 돌무더기탑인데 어김없이 망해루 부근에 서서 하늘로 향했다.
구봉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북쪽을 바라봤다.
너른 평야와 함께 우음도 갈대습지, 안산, 인천, 조성 중인 송산그린시티며 서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고, 지나왔던 성곽도 보였다.
초광각 구도라 꽤 세상이 넓었다.
표준 광각으로 보면 세상이 좁아진 대신 선명하게 다가왔다.
2배 망원으로 당기면 갈대습지와 안산이 좀 더 선명하게 보였고, 대신 주변 세상을 잃었다.
3.5배 망원에선 대기의 청명함을 읽을 수 있었다.
서쪽은 당시 당나라가 있던 방향으로 서해 바다가 인척인 양 시야가 막힘없었다.
이 또한 표준 광각.
2배.
3.5배.
구봉산 정상 일대는 말끔하게 가공되었고, 망해루가 있던 자리는 거푸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정상에서 보이는 대표적인 유적들.
망해루지 너머 보이는 남쪽 방향엔 백제와 신라가 있었을 터, 선명한 첩첩 능선에 작은 움직임도 포착될 만큼 중요한 자리에서 급박한 시대의 파수 노릇을 했던 곳이었다.
오르막 뒤의 내리막, 떠남 후의 회귀처럼 가던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휑한 자리의 쓸쓸한 시간과도 작별을 서둘렀다.
살짝 솟은 곳이 잠시 머무르던 구봉산의 정상.
수풀이 우거진 초입과 달리 성 내부는 아주 말끔하게 단장되어 멋진 산책로나 말끔한 공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곽을 돌아 이제 원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구봉산 능선이 뻗은 남서쪽 또한 원래는 성터였지만 이제는 말라비틀어진 칡넝쿨만이 무성했다.
폭우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유실된 일부 구간은 파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 옆엔 유실된 성곽처럼 사라진 시간들에 대해 밝혀놓았다.
구봉산 정상이자 망해루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또한 아주 완만한 내리막이었는데 무장애길은 초입에서 좌측으로 갈라졌던 길이었고, 멀리 출발할 때 지났던 성곽이 뻗어있었다.
이 길만 내려가면 당성에 진입했던 전망 데크가 있던 자리로 진입 당시 가파른 오르막 계단길이 이제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맞이했다.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고장에 이런 역사적 흔적이 무척 반가웠고, 감회가 새로웠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성곽 따라 출발했던 자리가 고스란히 보였다.
짧은 시간도 이리 아련한데 머나먼 역사의 방점을 체득했다면 얼마나 아련했을까?
당성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선에 잡히는 당성을 바라봤다.
차량을 주차했던 방문자센터로 가는 길에 이런 초소가 있었다.
아마도 공원화되기 전 은둔하던 역사적 장소의 초라한 옛터를 지키던 초소 아니었나 싶었다.
방문자센터에서 당성으로 가던 중간 즈음에 이런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역사 고증이 되지 않던 시절에 당성 밑 일대가 시립 공설묘지로 활용되었나 보다.
당성이라는 굵직한 역사의 흔적을 뒤늦게 발견하곤 점차적으로 묘지를 이장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건조하게 나부꼈고, 당성 아래 대부분은 사유지라 당성만큼 말끔하게 개간되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뒤늦게 고증하고 발굴하여 역사적 유적으로 재조명받으며 오랜 인내를 문자처럼 되살리는 노력을 통해 언젠가 어엿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하며 당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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