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산중의 새벽_20180908

사려울 2019. 7. 17. 21:57

해가 뜨기 직전의 가을 하늘은 차갑다.

유난히 말벌이 눈에 많이 띄는데 밤새 10마리 정도 잡은 거 같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슬에 젖어 힘을 쓰지 못하고 기절한 말벌들 확인 사살 때문.

그러다 시골 깡촌의 새벽 정취에 도치되어 버렸다.




동녘 하늘에는 아직 일출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늘에 거대한 비늘이 끼어 어디론가 바삐 흘러가고 있다.



감각대를 끼우고 발치에 흐르는 여울에 장노출 했다.




풀잎과 밤새 밖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스피커에 이슬이 아롱다롱 매달려 조잘거린다.



집에서 2년 동안 자라다 올 여름부터 새로이 자리를 튼 흙이 궁합에 맞는지 소나무는 부쩍 자랐다.

섭씨 11도로 9월 초 치곤 제법 서늘한 산중 오지에 어떤 문명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밤새 지칠 줄 모르는 여울 소리만 대기에 가득하다.

밤새 분주하던 날벌레들은 새벽 이슬에 취해 몸조차 가누질 못하고, 여름의 잔해로 남은 생명들은 생각보다 기습적인 추위로 허우적댄다.

풀에 앉아 곱추처럼 웅크린 이슬이 빛을 굴절시켜 영롱한 눈동자를 초롱이고, 어디선가 뿌려 놓은지 모를 가을 아침의 새콤하고 그윽한 향은 제 시절을 만난 아이 마냥 바람이 거의 없음에도 경쾌한 질주로 대기를 송두리째 가르는 중이다.

대낮에 겁 없이 뛰어 들었던 여울의 얼음장 같은 차가움은 몸을 마비 시켰던 여름 폭염의 때를 속절 없이 물에 녹여 싣고 어디론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가을은 짧은 게 아니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떠나려 할 때 느끼는 고로 가을이 짧게 느껴지는 게다.

처음부터 주문을 걸어 도치 시켜 어느해 보다 길게 느낄 올해의 시간은 멈출 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더라도 마음만은 빼앗기지 말고 내 계절과 시절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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