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를 뚫고 오마니와 함께 투표장으로 향하던 길, 한 동안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은 정치판에 열만 내다가 과감히 참여를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투표장은 어차피 집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가벼운 옷차림에 우산을 쓰고 경쾌하게 걸어갔다.
대지를 촉촉히 적실 만큼 반가운 비가 내려 소중한 표를 행사하고 비 구경을 가겠다는 계획은 이미 눈을 뜰 때부터 했던 터라 모든 행동은 신속했다.
투표를 하고 걸어가던 중 어느 아파트 한켠의 산책로에 크로바 꽃이 빼곡하다.
집에 들어와 미리 준비해 놓은 가방을 메고 바로 출발, 우산은 놔두고 모자를 쓴 채 소강 상태로 보슬비를 맞으며 걸어 간다.
비에 맞을까 싶어 카메라는 집에 두고 아이뽕으로만 흔적을 담아 뒀는데 이럴 땐 카메라가 아쉽다.
망원렌즈를 물려서 팔이 닿지 않는 높이에 맺혀 있는 빗방울을 찍어야 되는데...
역시나 동탄복합문화센터 앞에 일렬로 늘어선 꽃들이 봄비를 머금고 싱그러운 꽃잎으로 단장했다.
다른 대부분의 꽃들은 이제 그 아름다운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들해져 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몇 송이는 생생한데다 봄비가 내리자 그 흐릿해져 가던 컬러가 선명해지기까지 했다.
반석산 둘레길로 올라가 골 따라 늘어선 나무들을 잠시 지켜 보곤 습지공원으로 내려 갔다.
얼마 만에 습지공원으로 발을 들여 놓았는지 까마득할 만큼 몇 년 동안 여기 발길이 뜸했다.
찾아 보니까 2년 남짓 지났음에도 많은 시간 흐른 것 같지?
이 길이 좋고 주위에 무성한 생명력이 좋아 뻔질나게 드나 들었던 이 공원에 비가 오면서 어떤 매력이 문득 내 발길을 끌었을까?
잎사귀 위를 구르는 물방울들이 한가로이 쉬고 있다.
흐린 날이면서도 낮의 미세한 빛을 받아 영롱한 쉼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부시다.
몇 해 전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던 습지공원은 이제 처음 모습을 많이 잃고 퇴색해져 버렸다.
자연 공원은 관심과 관리가 필요 없이 늘 꾸준히 자연 스스로가 가꾸어 나가지만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공원들은 사람의 손길이 소홀해지면 급격히 노쇠하거나 허물어져 버리는게 묘하지 않는가?
자연으로 뒤덮힌다면 다행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이런 모습은 때론 흉물스럽기도 하다.
습지공원에서 짧은 시간 머무르고 이내 동탄복합문화센터의 야외공연장으로 돌아와 우의를 벗고 비를 피하며 앉아 틀어 놓은 음악에 빠졌다.
아이들의 놀이터인 양 이 공간을 웃으며 쫓아 다니는 아이들의 풍경과 소리가 음악을 듣는 와중에 묘하게 섞여 듣기 좋다.
그 때문에 잠시 앉아 한숨을 돌린다는 게 한 시간 이상을 머무를 줄이야.
아이들이 모두 떠남과 동시에 급격히 시들어 버린 사이 일상이 저물고 어둠이 찾아 올 무렵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났다.
거리를 쉴 겨를 없이 걷는 중에 잠시 버스 정류장으로 비를 피하며 가로등에 비키는 빗방울을 쳐다 보자 내리는 비 뿐만이 아니라 이 비가 내리는 소리도 듣기 좋은, 이번 연휴의 마지막 밤이 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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