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일찍 꽁지 불 난 사람처럼 냉큼 일어나 분주히 외출 준비를 하곤 오마니께서 가고 싶으시다던 청도 한재길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청도읍 추어탕을 먹고 갑자기 든 커피 욕구에 지도를 검색, 청도휴게소에 투썸이 있어 커피 한사발 마시겠다고 고속도로를 타고 뎁따시 큰 걸루 하나 사서 밀양에 내려 국도를 타고 한재길로 접어 들었는데 온통 미나리 컨셉이다.
청도 단미나리가 유명하다고?
한재길을 타고 한참을 들어 갔는데 끝도 없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미나리 식당이며 하우스가 들어차 있어 하염 없이 올라가자 인가가 끊기고 급격한 오르막길이 나와 잽싸게 차를 돌려 다시 도로를 거슬러 내려 갔다.
그러자 자그마한 하우스에 한 어르신이 미나리 씻으시는 모습을 보곤 차를 세우자 오마니께선 하우스로 들어가시고 난 길 가장자리에 경쾌하게 물이 흐르는 개울로 걸어 가봤다.
어릴 적 많이도 봐 왔던 꽃들이 즐비한데 워째 이름이 가물하네.
노랭이꽃은 유채인가?
다시 하우스로 돌아가 흐르는 물에 쓱쓱 씻어 주시는 미나리를 통째로 먹어 보니까 제법 맛 난다.
미나리 큰 두 단을 사서 고갯마루로 다시 출발, 또 한참을 달려도 한적한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전형적인 시골마을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풍각이란다.
따가운 볕이 내리 꽂히는 도로를 한참 달려온 탓에 등판은 땀에 쩔었고 갈증은 더 커져가고 해서 전통시장 간판 부근에 차를 세워 잰걸음으로 시장에 들어갔다.
5월 초는 그야 말로 파편화 되긴 했지만 휴일이 몰려 있던 황금 연휴와도 같았다.
5/1(월)이 근로자의 날, 5/3(수) 석가탄신일, 5/5(금) 어린이날, 5/9(화) 대통령 선거로 연차 3일만 끼우면 11일이라는 꿈 같은 연휴가 주어지는데 그 타이밍을 맞춰 해외나 평소 엄두를 못내던 장거리 여행도 가능 했음에도 난 아버지 산소와 오마니 여행을 선택했다.
이럴 때 효도나 하자 싶어서리..
관광지가 아니라 그런가?
내가 밟아 왔던 곳들은 한적하기 그지 없었고 마치 평일을 이용해 드라이브 가는 느낌이었던 데다 전통시장은 장날이 아니라 대낮에 어디선가 술판을 벌이고 잔뜩 올라간 언성으로 옥신각신 하던 남자들의 언쟁 뿐이었다.
별 달리 관심도 없고 상점마다 문을 굳게 닫았던 지나친 적막으로 얼릉 자리를 뜨고 가던 길로 재촉했다.
또 다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2011년에 친구 만나러 왔던 경북 과학기술원이 있던 유가 테크노폴리스 였다.
당시 한창 조성 중이던 택지개발 현장에 아파트며 공장과 공원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곤 6년 만에 처음 오는 곳인데 포장 중이던 비포장길을 따라 친구의 권유로 찾아간 곳이 유가사라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 불자이신 오마니 뫼시고 꾸역꾸역 올라갔더랬다.
여전히 첫 대면한 게 바로 이 돌탑으로 그리 가공되지 않은 산중의 넓직한 절이 인상 깊었었는데 이번에 찾아간 유가사는 그간 많은 수술을 거쳐 매끈해진 사찰로 가꿔져 있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모습이 헛수고란 단어가 가장 먼저 연상 되더구먼.
유가사 뒷편 바위 봉우리가 바로 비슬산으로 망원렌즈를 들이 밀어 사진을 찍을 때 즈음해서 단촐한 한 무리 새가 허공을 유영 중이었다.
신록이 뒤덮인 산을 뚫고 바위가 하늘로 치솟은 비슬산은 진달래가 유명하단다.
물론 진달래 꽃은 이미 떨어진 뒤라 확인할 방법은 일 년이 지나야만 하겠지만 그 외에 비슬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인지 이번이 두 번째 째려 보는 저 늠름한 바위산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유가사 여기저기를 둘러 보는 중 관광객의 발걸음은 내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만큼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나 보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 어디론가 열심히 가던 왕파리 모습이 찍혔네.
가파른 비탈에 세워진 유가사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방을 둘러봐도 전망은 첩첩산들 뿐, 다만 오래된 사찰이라 비슬산이 챙겨 주는 억겁의 기운을 받아 여러 사람들의 소원 성취에 도움을 주나 보다.
좀처럼 꺾일 기세 없는 강렬한 햇살이 부담스러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냉큼 내려온 건 한창 여행 중 대구를 지나던 누님 가족과의 만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나 가족 또한 하룻밤 숙소로 인터불고 호텔을 예약해 놓은 상태라-우연 중에 이런 우연이 있구만-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함께 인접한 동촌유원지로 가서 막창과 술을 적절히 포식했는데 돌아 오는 길에 전날 밤 들렀던 망우당공원으로 걸어 오며 또 저 간떨리는 모습 땜시롱 간담이 서늘했다.
어릴 적 플래시를 얼굴 밑에서 얼굴로 비추곤 혓바닥을 낼름 거리며 무서운 놀이 하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데 모처럼 쳐다 보는 저 간떨어지는 모습은 술에 취해도 여전하다.
담력 테스트 하기에 조금 약하긴 해도...
2박 3일 대구 여행 중 마지막 밤은 하루 동안의 먼 길 여행으로 인해 골아 떨어져 게걸스럽게 쳐묵한 막창 외엔 별 다른 기억이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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