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봄의 절정에서 호수를 품다, 하나_20170410

사려울 2017. 7. 12. 06:11

입대를 앞둔 조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2년 동안 세속을 떠나 있는데 아이폰이나 플스를 가져봐야 개밥에 도토리고 그렇다고 생까기엔 삼촌으로써의 밑천이 다 드러나 가슴에 양아치 추억만 남길 거 같았다.

근데 유형의 상품만이 선물은 아니잖나?

특별한 선물이라면 추억도 괜춘한 방법인데다 가끔 내가 가는 여행에 이 녀석도 싫은 내색 없이 따라 나서는 경우도 있고 가고는 싶으나 또래가 없어 혼자 뻘쭘함을 감당하기 거시기해서 망설이다 포기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

때마침 철 좋은 봄날 세상 구경 같이 하자 싶어 오마니 뫼시고 바다처럼 탁 트인 느낌과 강원도 산간 오지 느낌도 낭창하게 누릴 수 있는, 충주호가 발치에 내려다 보이면서 가파른 첩첩 산들이 모여 있는 충주 계명산 휴양림으로 결정했어.



출발 전, 탐스럽게 열린 민들레 사진을 시작으로 봄의 설렘을 충전하고 출발해 봅세다.





막상 충주에 도착하자 허기가 잔뜩 촉수를 들이 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속이 든든해야 절경에 닭살이 돋는 벱이고 봄 향기에도 코가 벌렁거리는 반응을 보일테지.

충주까지 가서 추어탕이라니.

울 엄니, 조카 입맛 독특하다.

근데 충주 근교에 있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식당인데 내부엔 손님들이 가득하다.




거의 10년 만에 찾게된 계명산 휴양림 숲 속(계명산 만추_20071117), 호수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철쭉나무집에 일단 체크인하고 거추장스런 짐은 우선 풀어 놓아 홀가분하게 출발하기로 한다.

여행을 잘 다녀본 적 없는 조카는 궁뎅이가 편안해지자 졸음이 쏟아지고 절경 감상도 귀찮은 눈치다.

얌전하게 협박을 해서 데리고 나와 탁 트인 호수와 빼곡한 숲, 비탈진 산세를 보자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나 보다.

신기해서 두리번두리번~

사실 계명산 휴양림은 주말 휴일에 예나 지금이나 예약하기 쉽지 않을 만큼 인기 있는 통나무집이라 한 달 보름 전에 평일 예약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약을 했다.

잠자리가 편치 않으면 여행 중의 묘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응께로.





호수 길을 따라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쉬엄쉬엄 가는 사이 종종 눈에 띄이던 차들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인가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한, 전형적인 깡촌의 풍경이 사방으로 에워샀다.

충주만의 특징적인 지형이라면 도시 서편은 광활한 평지가 펼쳐져 있고 가끔 나즈막한 굴곡의 구릉성 산지를 볼 수 있으며 도시 동편은 일렬로 늘어선 산세가 가로막고 있는데 거기를 넘어 서면 강원도처럼 경쟁하듯 하늘로 쭉쭉 뻗은 산들이 즐비하고 그 산들이 군락을 이루어 첩첩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바다 만큼은 아니지만 그 산세를 비집고 엄청난 규모의 호수도 있으니까 지리적으로 어울리기 힘든 풍경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감상할 수 있어 멀리 가지 않고 다양한 느낌의 교차를 즐길 수 있어 충주에 자주 오게 된다.

강원도처럼 높고 깊은 산세도 아니고 바다처럼 넓고 끝 없이 트인 광활함도 아니지만 그 특징을 조금씩 가져다가 교묘히 섞어 놓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 호수 옆에 이런 특징적인 산들도 많은데 마침 차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길의 끝이라 잠시 주차를 해놓고 산과 물이 뒤섞인 내음을 들이켰다.

망원으로 당겨 가며 찍은 산은 바위 봉우리라 마치 얼굴만 드러내고 세속을 굽어 보는 것 같다.




심각할 정도로 봄가뭄이 기성이라는데 막상 식수원인 충주호를 보고 나서야 실감이 들 정도로 수위는 상당히 낮아 호숫가 수심이 얇은 곳은 바닥을 훤히 드러내 놓고 호수를 유영할 뗏목은 드러난 바닥에서 호수가 차기를 마냥 기다려야 될 상황이다.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졌던 2015년 한 해를 생각해 보면(겨울 청풍호의 매력_20150214, 봄과 함께 청풍호로 간다_20150320, 제천 가족나들이, 두 날_20150718) 비단 이 호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강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왔던 길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유일한 길은 벚꽃 구경이 한창인 충주댐 인파에 비하면 거짓말처럼 한적한 터, 오던 중 전망이 멋드러질 것만 같던 카페가 있어 꼭 들려 보겠다고 다짐했건만 휴업인지 문이 닫혀 있다.

대문 역활을 하던 철제 바리케이드를 지나 카페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문은 꼭 닫혀 있고 내부엔 인척은 있다.

하지만 영업하지 않는 것 같아 발걸음을 돌리는데 봄을 맞이한 꽃과 싹은 진행형이다.




한 데 어우러져 있는 봄의 잔치를 보면 굳게 닫혀 있는 카페의 문은 아쉽지만 하루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명색이 봄의 대표 선수 중 하나인 벚꽃이 우리가 지나 왔던 충주댐 일대에 만발하여 아니 볼 수 있겠는가!

대낮엔 충주댐에 자욱히 펴 있는 벚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가뜩이나 좁은 도로가 차와 한 데 섞여 아수라장 같았다.

왕복2차로에 갓길이 없는 도로인데 일렬로 주차를 해 놓고 주차된 차를 빼거나 다시 주차하려는 차들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간인데 이제 좀 한적하겠지 싶어 되돌아간 댐 부근은 그나마 올 때 비해 한적해진 상태긴 하나 여전히 댐 아래 고수 부지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 댐에서 상류로 가는 방향에 자그마한 공터와 주차장이 있고 거기엔 제법 나이가 들어찬 벚나무가 즐비해 굳이 댐 고수 부지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한창 무르익은 벚꽃이 쨍한 햇볕을 받아 대기를 화사한 빛으로 물들였다.

간헐적으로 부는 바람에 실려 온 봄 향기는 지금까지 이 계절을 기다려 왔던 나에게, 모처럼의 여행에 설레임과 두려움을 갖고 계신 오마니께, 입대를 앞두고 현실적인 감각이 마비된 조카에게 지금 헛되지 않은 위안과 보상이 될리란 확신을 가르쳐 주었다.

입대를 앞둔 조카는 귀찮기도 하고 노곤하기도 했던 후회막급의 출발이 점점 적응되는지 한동안 굳게 다물고 있던 입에서 간헐적인 미소와 함께 근래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들과 깨달음의 옥수수를 털기 시작했다.

어릴 때 할머니와 삼촌, 이모에 대한 경계심이 몸에 베어 있던 이 녀석은 동탄에서 가까이 지내기 시작하면서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이제는 가까이 있는 가족의 하나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쉽지 않은 표현들을 조심스레 끄집어 내는 녀석이 기특하고 마음을 열고 다가 오려는 노력과 진심이 기특해서 어찌보면 이 자리를 마련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도가 적중했는지 밤이 깊어 갈수록 녀석은 속 마음을 두르고 있던 경계를 풀어헤치고 통나무집에서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는데 핏덩이 같던 녀석이 이제 이렇게 커서 입대를 앞두고 있구나 실감과 동시에 나 보다 더 커버린 키가 괘씸하긴 해도 이제 이 녀석을 진정 성년으로 인정해 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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