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춘분이 안지났다고 밤이 빨리 찾아오는데 이틀 후면 춘분이네.
그럼 봄이구나 싶어 2월 중순에 갔던 청풍리조트를 다시 찾아갔다.
역시나 가는 길은 청량리에서 새마을호를 이용했는데 1시간 조금 더 걸리는게 엄청나게 빨라져 부렀다.
그래도 밤은 밤이여.
19일 퇴근 후, 잽싸게 도착한 제천역은 여전히 조용하다.
기차가 도착할때 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게 도심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런가보다.
포토라이프가 많이 소홀해졌음을 느끼는게 하다 못해 아이폰 카메라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카메라는 오죽하겠나?
도착해서 저녁 해결하고 커피까지 해결하는 동안에도 기록에 대해선 거의 체념 수준이라 반성에 또 반성을 해야 된다.
그냥 안했으면 안 한대로 살아도 불편을 못느끼는데 꼭 지나고 나면 `짱구야!' 그러면서 자책을 하니 그럴바엔 아이폰 카메라로도 찍어야 되는겨.
2월에 이어 3월에도 청풍리조트를 잡은 이유는 두가지.
첫째는 전망만 따졌을때 여기 끝내 준다.
둘째는 회사 복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가벼운 부담이 끝내 준다.
좋은 전망의 숙박시설을 저렴하게 이용한다니 싫어할 사람 그 누군가!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고 짐을 풀기도 전에 카메라 끄집어 내서 베란다 전망을 담아 뒀다.
여전히 호수 건너편 국민연금공단 인재원의 불빛이 도드라지게 보일 만큼 다른 곳은 암흑이라 간주해도 좋다.
우측에 찔끔 보이는 불빛은 사찰 중에서 나이로 따지면 갓난 아기 정도의 비봉사이며 좌측은 청풍문화재단지인데 좌측 하단에 희미한 불빛은 귀신? 걱정 안해도 되것다.
청풍랜드 번지점프장 밑의 무대섬 같은데 테두리의 희미한 조명이니까.
근데 2월 중순에 왔을때 가뭄 걱정을 했더랬는데 3월엔 더 처참하게 수위가 내려가 있었다.
비록 이번엔 야경 사진만 찍었지만 시야가 뚜렸하지 못한 사진을 봐도 시력 나쁜 사람아니고선 금새 알아챈다.
시력이 안 좋으면 라섹수술해야것소잉!
2월 사진은 `겨울 청풍호의 매력_20150214'
청풍리조트에 도착한 어젯밤엔 조촐한 맥주 몇 잔 박살내는 걸루 회포 풀고 일찍 자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그간의 못다한 이야기 나누는 사이 새벽3시가 되어 버렸으니 이튿날 월매나 잠에 취했을까?
그래도 일정도 지도도 없는 막무가내 여행은 해야겠지.
충주는 내가 많이 가봤으니까 지난번처럼 제천에 해당하는 청풍호 위주로 하자.
그러면 호수의 남단인데 충주와 경계하고 있는 월악산 자락의 송계계곡과 덕주사로 정하고 돌격!
덕주사에 도착하자 `고요란 이런 거시여'라고 외치듯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주사 한 켠에 자리잡은 트레이드마크가 바로 산신각이다.
돌 같이 굳은 염원이 큰 의미를 두지 않던 한낯 바위에 이런 혼을 새겨 넣었으니 그 심중이 돌 같이 굳음이 얼만큼 대단하고 영속적인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조용한 사찰이 산신각과 그 사연으로 인해 새로운 영혼이 불어 넣어져 경건하기까지 했으니 설사 종교를 갖지 않았더라도 성당에 가면 조용히 두손 합장을 잠시 하듯 이런 절에도 잠시 두손 합장을 하고 살짝 고개를 숙여야만 될 거 같았다.
넌 누규?
3마리 개녀석(?)들이 떼지어 몰려 다니다 이 친구는 지쳐서 잠시 쉬는 것처럼 한동안 여기에 퍼질러 엎어져 있다 다시 어디론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버렸다.
내가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걸 보면 자기 일 외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나보다.
근데 눈 앞에 커튼이나 좀 치고 다니지..
사찰에 오면 항상 풍경을 쳐다 보게 된다.
퍼런 녹이 끼인 구리 종이라지만 산사의 바람에 항상 응답을 해주고 절이 들어설때부터 항상 여기에 매달려 고독한 시간을 얼마나 외로이 보냈을까?
찾아간 날은 바람이 없는지 묵묵부답이다.
여전히 응달엔 얼음이 두터운데 그럼에도 개울은 봄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월악산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여기서 부터 4.9킬로라는데 나도 월악산을 싸랑하니까 머리 꼭대기에 오르지 않을련다.
덕주사 뒷편 산세가 멋지구먼.
봄을 미리 맞이하는 쑥은 성급한게 아니라 기다리고 참고 인내할 줄 안다.
늦겨울부터 땅속에서 그간 움츠렸던 기지개를 급하지 않게 서서히 피면서 한낫 들판의 풀이지만 오랫 동안 햇볕이 주는 양기를 소식하면서 성장해 간다.
그 덕분에 쑥은 우리 몸에도 좋지만 여러 한식 요리에서도 풍성한 맛과 향을 주니 약이 따로 없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어 덕주사를 벗어나 송계계곡에서 수안보로 넘어가는 길에 월악산의 진면목이 이렇게 멋진 자태로 보인다.
농부가 일궈놓은 땅은 이제 봄이 익으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중이다.
비록 주봉은 아니지만 어마무시한 규모의 바위와 흙과 나무가 만나 이런 멋진 산을 만들었으니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훈장이나 인증서를 달아 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근데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들이 험하다던데 월악산도 영락없이 오르기 힘든 산이란다.
설악산, 치악산... 그리고 또 뭐가 있지?
관악산도 맞을려나?
물이 맑은 송계계곡의 와룡대는 나름 이름난 곳인데 그 넓직한 바위에 맑디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다 너른 바위 틈으로 굽이치듯 떨어지는 그 모습이 시원하고 경쾌하다.
예전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던데 아직은 추워서 목욕도 힘들지만 요즘 사람들이 많아서 목욕하다간 SNS를 통해 급격히 번져 나가 옥황상제가 가만 안 두시겠지?
역시나 목욕하는 선녀는 한동안 찾아 봐도 안 보인다 ㅠㅠ
와룡대 바로 밑에 소는 꽤나 깊은가 보다.
접근도 막아 놓았고 경고문도 걸어 놓고 부근에 구명 튜브도 나둔걸 보니 만만한 상대는 아닌 거 같다.
그래도 떨어지는 물줄기는 힘차고 시원해 보인다.
수안보가 가까워서 찾아갔더니 딱히 내가 원하던 `꺼리'가 없는데 마침 문경새재가 가까워 매끈하게 뚫린 신설도로가 아닌 구도로를 따라 이화령 정상에 올랐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군데군데 고갯길 아래를 볼 수 있도록 테라스를 마련해 놓았던데 굿아이디어!!!
나무가 무성해서 이날조차 많이 가렸는데 잎파리와 칡넝쿨이 무성한 여름이 되면 볼 순 없을 거 같지만 일단 발상은 좋다.
다만 널려 있는 쓰레기 어떻게 안 되겠니?
버리는 사람들이 문제지만 그걸 만들어 놓고 방치해 놓는 사람도 문제여.
이화령 꼭대기에 있는 새로 생긴 기념비 같은데 2011년 가을에 방문할 당시 이건 없었다.
지난해 가을에 매봉산 갔을때 이런 백두대간 기념비가 있었더랬지.(하늘 아래 가을 나린 태백, 정선_20141019)
이런 뿌듯함은 덤이군.
난 당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있었다.
그 경계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건 없지만 단순 의미 부여차원에서 뿌듯하게 치고 나오는 감회란...
낚시하는 분들이 큰 대어를 잡고 기념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 설명이 쉬울까?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에서 존엄성 운운하더라도 막상 당사자 입장에선 관심의 객관적인 징표랄까?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내 중심적인 입장이라 상대적인 피해를 준다거나 타인이 이해 하기 힘든 나만의 몰취향은 아니라고 봐잉.
내가 떠난 길에서의 상징적인 차원이라면 이해가 쉽겠구먼.
여긴 경상북도 문경 방면인데 녹색이 거의 없이 삭막한 거 보니 충청북도 방면만큼 소나무가 별로 없나 보다.
그렇다면 가을에 낙엽이 물드는 나무들이 많다는거고 그 시기에 경관이 빼어나겠구먼.
3년 반만에 방문한 이화령에 아주 큰 변화는 없던 생태 터널이 생겼단 건데 정상에 올랐을때 탁 트이는 기분은 없고 터널로 인해 막혀 있어 갑갑하긴 하다.
허나 생태 터널이니 최소한 인간의 이기심은 좀 버렸단 거라 반대할 이유는 없지.
이화령에서 유명한 조령산의 시작 코스이기도 한데 마침 터널도 올라갈 겸 조령산 등산로 어귀도 올라가 봤더니 터널 위엔 역시나 키 작은 식물외엔 대부분 바람이 많다.
여기 올적마다 그 세찬 바람-물론 매봉산 만큼은 아니다-이 기억에 단단히 뿌리를 틀고 있는 것 보면 사람들만이 지나는 길이 아니라 바람의 길이기도 한가보다.
잠시 서 있다가 조령산 방향의 가파른 오르막길로 접어 들었더니 이내 숨이 가빠 잠시 쉬고 내려 가자는 심산으로 주위를 둘러 보니 어김 없이 봄이 태동하기 시작한다.
바로 봄의 전령사 중 생명력이 강하면서 식용도 가능하고 지천 어디서든 흔하면서도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외면하는 쑥!
그리고 달래처럼 생겼는데 달래는 아니고.
이렇게 두터운 낙엽을 뚫고 나올려면 얼마나 강인하고 또한 다가오는 봄이 반가워서 그럴까 싶기도 하다.
좋은 구경거리 만큼이나 이런 소소한 볼거리도 한편으론 흐뭇한 일이니 그걸 마음 속으로만 두기 아까워 블로깅을 하는데 이걸 여름이 떠날려는 마당에 올린다냐!
다시 청풍리조트로 돌아와서 저녁과 커피를 박살낸 후 수위가 부쩍 낮아진 청풍호 가까이 내려와 봤다.
시커먼 호수 표면이 좀 무섭긴 하지만 큰 호수에서 발산하는 안개가 음산하기도 하고 자연 속의 정적에 양념 역할을 해 주는 거 같아 궁금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가뭄이 아니었다면 호수의 일부였겠지만 지금은 보드라운 흙이 자욱히 쌓인 호숫가일 뿐.
마침 청풍리조트 쪽에서 호숫가로의 둘레길이 있으니 무리해서 내려 온 건 아니고 날 밝을때 미리 알아챘었다.
바로 앞에 청풍랜드 무대섬 같은게 수면 위로 떠 있고 호수 너머엔 국민연금공단 인재원이 여전히 밤을 밝히고 있다.
그 자리에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둥근 청풍리조트가 보이고 그 아래 호수 가까이 깔려 있는 둘레길이 있는데 가로등을 밝혀 놓아서 가끔 투숙객이 지나기도 한다.
근데 9시 좀 넘어서 불을 꺼버리니 여기 완죤 암흑이라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아주 넓고 깊은 호숫가라 누구나 나 같은 기분 들거야. 아님 말구~
다음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린 제천한방엑스포 공원.
뛰어 놀기 너무 좋아서 아이들이 참 많아서 의외다 싶더라.
아무래도 제천 도심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곳인데다 부근이 거대하게 조성 중인 산업 단지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파수대는 위험 문제인지 출입 금지 상태.
강렬한 햇볕을 피해 그늘에 앉아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잠깐의 시간을 보내곤 이번 여행을 파했다.
한 달여 만에 방문했던 청풍호는 겨울 이불을 걷고 서서히 봄 단장 준비를 서둘렀던 만큼 절절히 드러난 봄 기운을 배낭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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