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노란 향기가 파도치는 구례 산수유 사랑공원_20200319

사려울 2021. 8. 19. 22:32

듬성듬성 자란 노란 점들이 모여 세찬 바람을 타고 하나의 파도 마냥 출렁이던 산수유 마을의 정취가 함축된 사랑공원은 호텔에서 인척 거리에 작은 언덕을 꾸며 놓은 공원이다.

봄철이면 불청객처럼 불시에 찾아오는 미세 먼지도, 태풍을 방불케 하는 강한 바람도, 한창 분주한 평일 오전도 아닌 코로나19 여파로 예년 북적이던 마을은 그랬던 날이 있었나 싶을 만큼 무척 한산했다.

이른 아침에 숙소에서 바로 이곳을 찾은 뒤 곡성으로 넘어가기 전, 호텔 바로 앞 봄의 전령사 중 하나인 산수유꽃의 노란 손짓에 이끌려 잠시 찾은 세상은 그림에서나 볼 법한 무릉도원과도 같은 전경이었고, 바람결에 코끝을 스치는 봄 내음은 잠에 취한 듯 몽롱한 유혹이었다.

구례는 봄꽃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으로 산수유꽃, 매화, 벚꽃의 향연을 누릴 수 있는 알찬 곳인데 조금 이를 거라는 소식과 달리 아직 벚꽃은 수줍은 봉오리가 견고한 망울로 자태를 가리고 있었다.

산 언저리를 십자수 마냥 촘촘히 수놓은 곳, 매캐하고 빼곡하지 않지만 무심한 듯 뿌려진 봄으로 인해 포근한 행복이 여민 시간이다.

매화와 달리 공간을 가득 채우기엔 조금 빈약할 것만 같은 산수유가 그 못지않게 자욱하게 언덕을 뒤덮었다.

산수유 문화관 맞은편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얼마 걷지 않아 샛노란 언덕에 다다를 수 있는데 언덕에 오르기 전부터 뭐가 그리 설레던지.

숙소로 지정한 호텔이 멀리 보인다.

가급적이면 언덕에 이어진 모든 길을 걷고 싶어지는 이 경관이란... 때마침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들은 있어도 인파는 전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산수유 언덕에서 언제 이런 여유를 누려 보겠는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날 코로나19 확진자가 이곳을 다녀갔다고!

1년 내내 피어있는 산수유꽃 조형물은 길에서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이 꽃의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한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방호정에 도착, 마을엔 사람들이, 방호정엔 역사가 있다.

방호정 뜰에 들면 지극히 일상적인 마을 조차 평화의 의미를 덧씌운다.

1930년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설립하였다고 하니 이미 시간이 증명한 이 자리의 남다른 의미 아니겠나.

봄의 첨병, 산수유꽃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노란 자태를 유지한다.

이 작은 한 송이는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하겠지만 산수유 마을에선 미약한 존재가 모여 거대하고 웅장한 세상을 만들었다.

지리산 노고단이 품은 이 고장은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수유 가로수와 격이 달라 나무가 무척 굵어 꽤 연세가 깊다.

그런 특별한 산수유가 마을을 뒤덮고 있는데 봄이라면 꼭 한 번은 찾아서 평면적인 사진과 지식의 틀을 깰 만하다.

언덕을 한 바퀴 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 노력에 비하면 절정의 노란 봄소식은 충만한 가슴을 어루만져준다.

근데 이게 다가 아니여!

지금까지 산수유 언덕을 거닐었다면 이번엔 산수유 문화관 건너편에 벌판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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