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벌판에 솟구친 칼바위 능선, 순창 채계산_20210120

사려울 2023. 1. 14. 20:14

칼바위 능선으로 정평난 채계산은 세상이 온통 설원으로 뒤바뀐 평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줄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에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이다.
동강 절벽길 이후 칼끝과도 같은 위태한 길을 걷는 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찔한 관문 뒤엔 늘 그렇듯 베일에 싸인 절경을 보여주는 답례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순창을 찾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바로 채계산이 꾸며 놓은 세상이야기를 듣고자함 인데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그 계절 아래 버티고 있는 자연은 같은 관용의 미덕으로 지나는 시간들을 쉴 수 있도록 큰 가슴 한 켠을 비워 놓는다.
이제는 칼끝과도 같은 바위 능선에 문명의 도구를 덮어 절경 이면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과대한 위선을 배제하고 살짝 그 위에 배려만 덫대어 놓은 덕분으로 종이 한 장 차이의 묘한 경험을 선사한다.
짧고 낮은 수고만 지불한다면 이런 절경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사뭇 지칠 줄 모르는 섬진강의 역동이 경이롭다.

일자 형태로 길게 능선이 이어진 채계산은 책암에서 오르는 온전한 길을 버리고, 중간 지점부터 합류하는 무량사에 화산옹 바위가 지키고 있다.

평탄한 길에서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 드는 지점은 쉼터가 있어 고갯길을 넘어가는 사람도, 채계산으로 오르는 사람도 잠시 쉬어 가란다.

책암마을에서 온다면 저 봉우리 능선을 거치게 된다.

채계산 능선 북서쪽은 절벽, 반대로 남동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지형이다.

아래에서 보면 산세도 제법 멋지다.

송대봉 정상으로 여기서부터 칼바위 능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능선 대부분이 데크로 되어 있어 자연 훼손도 막으면서 위험하지 않다.

채계산의 명물, 칼바위 능선은 과거의 위태로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길이 나기 전에는 동아줄을 잡고 위태로운 길을 걸었으니까

마치 분재용으로 정성스럽게 가꾼 듯한 키 작은 소나무가 바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채계산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저 칼바위능선을 따라 마치 허공에 떠서 걸어가는 착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칼바위 능선은 북서쪽으로 나아가려는 바위의 연속.

이런 지세가 멋지지 않은가.

칼바위 능선의 북서쪽은 섬진강이 지나는 벌판과 맞닿아 있는 절벽이다.

근래 채계산의 명물로 급부상한 출렁다리는 마지막 봉우리와 연결된다.

북동쪽과 남서쪽으로 길게 늘어선 채계산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섬진강과 멀리 곡성까지 보이는 들판 한 가운데를 바위칼로 찢어 지상으로 거대 바위를 드러낸 산이다.

100대 명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그 모습에서 아우라가 느껴지는 채계산은 특히나 칼바위 능선이 있어 직접 밟고 서 있노라면 근두운에 서있는 착각에 빠질 수 있어 종종 이 자리에 설 계획이다.

칼바위 능선에서 오다 보면 이런 위용을 자랑한다.

낮은 산이지만 두 개의 우뚝 솟은 산 언저리를 연결하는 다리.

국내 최장 흔들다리란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칼바위 능선만큼 매력이 있는 건 아니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채계산에 들른 길에 출렁다리까지 들렀다.
근래 들렀던 아찔한 구조물치고 이토록 한산한 적이 전무후무 해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18년초에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가 기억난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빼곡히 서 있어 걸어간다기보다 휩쓸려 다녔었는데 여긴 그와 정반대로 낮잠을 자도 될 만큼 한적하다.

지상에서 보면 길이와 높이가 실감되는데 막상 다리에 몸을 맡기면 크게 실감 나지는 않는다.

다만 한적해서 씹는 맛이 달달한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바로 곡성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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