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머나먼 삼척 원덕_20151225

사려울 2016. 1. 24. 23:59

가족 여행이라고 찾아간 삼척은 사실 대가족이 이동하기에 거리상으로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자유로운 시간은 성탄절 당일 뿐이라 여행에 익숙치 않은 가족, 특히나 아이들이나 오마니께선 녹록치 않은 고행길과도 같을 수 있겠다.

성탄전야에 서둘러 퇴근한 뒤 일행들을 재촉하여 출발할 무렵엔 이미 9시가 넘어 암흑이 잔뜩 끼인 오지를 둘러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부지런히 고고씽 했지만 도착은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 1시가 막 지나서 였다.

그나마 흥림산 휴양림의 넓직한 숙소를 이 몸이 애시당초 예약한 덕에 말끔히 피로를 풀고 이튿날 오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삼척 원덕으로 출발~

영양 흥림산 휴양림은 첩첩산을 넘어 비교적 오지에 있는 자그마한 휴양림이라 힐링하기엔 제격이었다.

이미 올해 세번째 방문이라 내게 제법 친하고 익숙한 휴양지라 가족 여행의 쉼 터로 강추를 할 수 있었지.

반딧불이를 만나러 갑니다_20150627, 영양에서 가을을 만나다_20151024



영양이 접근하기 쉬운 장소가 아니었던 만큼 삼척으로 가는 길 역시 쉽지가 않았던 걸 난 간과했다.

한창 싱싱한(?) 내 체력으로는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고 단정지었던 착각으로 인해 나만큼 여행에 익숙한 가족이 별로 없어 그 구불정한 산길과 이동 거리, 소요 시간이 힘들었나 보다.

차량 3대에 빼곡히 채운 자리도 산길을 넘으며 요동치는 움직임으로 더 불편했었기에 삼척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지친 기색이었으니까.

막힌 공간에서 오랫 동안 앉아 있었던 뻐근함을 훌훌 날려버리기 위해 들렀던 이곳은 울진 망양휴게소.

그나마 탁 트인 시야가 날씨의 도움에 힘입어 전망이 지대로라 연신 날리는 감탄사에 피로를 어느 정도 털어 내면서 평소에 더럽게 맛 없다고 여겼던 엔제리너스 커피 한 사발 때리고.



점심 시간 무렵 도착한 삼척 원덕의 수로부인헌화공원은 이미 만추에도 들렀던 곳이다.(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여전히 별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등대는 이날도 동해의 망망대해를 째려 보고 계신다.



동해를 등지고 내륙을 바라 보고 있는 수로부인(맞나?)의 자태 또한 그 간 변함 없다.

삼척 원덕에 도착해서 푸짐한 회를 쳐묵하셨는데 역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라 싱싱하면서도 저렴한 횟감으로 먼저 배를 채우는 사이 시간은 꽤 흘러 버렸다.

당췌 대가족을 수용할 만한 자리가 없어 불친절한 응대를 받아가며 한창을 돌아 다녔고 그나마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테이블 몇 개를 합쳐 겨우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려야 되는 음식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공간이 될 줄이야.

그러면서 소중한 시간이 훌쩍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수로부인헌화공원엔 느즈막한 시각에 올라갔다.

그마저도 공원 관문인 엘리베이터에 있던 한 분이 지나는 사람들한테 5시반에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지된다며 일일이 친절하게 협박하는 통에 아직 넉넉하게 남은 시간에 왠 협박이람?

가만 생각해 보면 `내 퇴근을 너희가 방해하지 마라!'는 의미였음을 알아 챘다.

역쉬~



바다를 배후에 두고 있는 공원을 바라 보며 먼 곳까지 온 노력에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앞서 첫 방문때 느낀 거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이 넓직한 공간에 비해 방문객은 별로 없는 건 여전하다.

사진을 찍을때도, 공원을 두루두루 둘러 볼때도 편안하게 감상이 가능했으니까.



성격이 급한 가족 몇 분은 다른 가족들은 내팽개치고(?) 벌써 여그꺼정 와서 열심히 폰으로 세상을 담고 있다.



나도 그 자리에 얼릉 디딛고 서서 헌화부인과 동해를 향해 한 컷.

전에 없던 저 노란색 박스는 커피를 비롯하여 간단한 음료를 판매하는 스낵카로 도중에 지체된 시간 없이 처음의 그 느긋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라면 한 번 이용해 봄직했을 터인데.



수로부인의 그 전망좋은 공원과 주위 풍광에 얼마나 빠져 있었던지 꽤 시간이 지나 협박하던 그 시각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서둘러 공원을 빠져 나가야만 했다.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멈추면 영락없이 계단을 이용해야만 하는데 다리가 불편한 어른이 있어 그 자체로 낭패일 수 있었다.

인정 머리 없는 거시기 같은 경우라니.

삼척 원덕을 출발하여 울진 부근에 당도하기 전 이미 해는 완전 서산을 넘어가 버렸고 오지의 전형적인 깊은 암흑이 찾아와 또다시 부랴부랴 산길을 넘어 오는데, 아주 오래전에 한번 지나쳤던 88번 국도를 타며 아주 진땀을 흘렸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고갯길에 차가 거의 없는 어두껌껌한 밤길이 왜이캐 험하고 먼겨!

혼자나 트레킹 멤버와의 이동었다면 심적인 부담을 덜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느긋하게 넘었을 테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가족들은 그런 여유가 없었기에 앞만 보며 빠듯하게 넘어 늦은 밤에 숙소인 흥림산 휴양림으로 도착했다.

허나 다음 나만의 여행에선 이 멋진 길을 다시 가보고 싶다규.




엄청난 폭풍 흡입으로 저녁을 쳐묵하고 혼자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막상 찍을 만한 게 없었다.

언덕에 오르고 목재 박물관 테라스에 올라 이것저것 사진을 찍었다지만 제대로 나온 사진은 없었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나마 가장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이 사진만 올린다.

이번 여행은 너무 야심찼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의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어 다음부턴 가족 여행을 내 방식대로 무조건 못 밀어부치겠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삼척 원덕에서 만난 상인들은 왜 웃음과 미소에 인색한지...

이래저래 참 힘들었던 여행이었다.

가족들의 힘들어 하는 부담감에 힘들었고 이동하는 동안의 맞지 않는 호흡으로 고단했고 익숙치 않은 여행에 관대하지 않는 푸념에 짜증이 났던, 그래서 지금까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안한 여행들이 다시금 감사했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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