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사려울 2015. 11. 14. 02:34

여전히 산골에 남아 서성이는 만추의 풍경이 그리운 가을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운 발로일까?

바다와 산을 아우를 수 있는 통고산으로 가는 길은 늦은 밤,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행군과도 같았다.

영주를 거쳐 봉화를 지나는 36번 국도는 가뜩이나 인가가 드문데 밤이 되면 나 혼자 암흑을 방황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자정이 넘어 잠시 쉬어간답시고 춘양을 들렀더니 온전히 잠든 마을이었는데 외롭게 불을 밝히는 등대처럼 편의점 하나만이 움직이는 불빛의 흔적을 발산 중이라 극단의 반가움이 울컥 치솟았다.

춘양하면 일교차가 원캉 커서 해가 진 한밤과 새벽에 거짓말처럼 추운데 아니나 다를까 편의점 여주인은 겨울 무장을 하고 쓸쓸히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따스한 두유 두 병을 사서 하나는 완샷! 하나는 품 안에 넣어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해서 움직이는 것들이 전혀 없는 공간을 뚫고 통고산 휴양림에 도착.

먼저 도착한 일행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미리 뎁혀 놓은 온기가 다정했다.




보는 위치와 햇빛이 비치는 시간대에 따라 멀리서 보면 조합된 컬러가 다르게 보이는데 바람결에 휘날리는 눈부심이 부서지듯 땅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많다.

나무의 발치엔 이미 만추가 펼쳐져 있구만.

만지면 높은 필파워의 거위털 마냥 보드랍고 손가락 사이사이가 간지러질 듯.



이 벌겋게 타오르는 단풍의 고운 빛깔이 활활 타오르다 금새 재가 될 거처럼 강렬하고 보는 눈의 망막조차 후끈 달아 오르는구먼.



가을의 끝자락이라 이미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나뭇잎은 못내 아쉬운 듯 멀리 가지 못하고 바닥을 헤메고 있다.

직접 봤을때 이 조합들도 한 운치 했었는데 광각렌즈가 있었다면 좀 더 스펙타클 했을 터.




여긴 작년 요맘 때 와서 해질녘에 멋진 사진의 모델이 되어 준 미스 단풍양들이다.(불영 가을 습격 사건_20141101)

날짜가 좀 더 지났다고 머리숱이 엉성해져 아쉽기는 해도 역시 인물이 좋은 녀석들이라 대충 찍어도, 조명빨이 거시기해도 멋진 원본은 숨길 수가 없다요.




통고산에서 나와 불영계곡을 따라 삼척의 원덕으로 다음 목적지를 잡고 지나가는데 불영사를 조금 못 간 지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가을 풍경 포착!

좁은 길이라 다른 차가 올새라 괄약근에 잔뜩 힘을 주고 유턴해서 다시 찾아 갔다.

왠쥐 그냥 지나치면 후회하게 될 거 같고 만추의 시기라 일 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생각도 들어 손에 땀이 나도록 신속한 유턴을 해서 찾아 갔더니 다행스럽게도 지나는 차들이 적어 간 크게 도로 한가운데 서서 몇 장면을 포착했다.

근데 여기 부근엔 마을도 없는 거 같던데 이렇게 견고히 지은 버스정류장이 있을 줄이야.

바닥에 카펫처럼 깔려 있는 자욱한 낙엽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 저 곳에 앉아서 행여나 정차하게 될 시골버스를 기다려 보고 싶다....지만 시간이 없응께로 패쑤~

사실 여기는 작년 불영계곡 왔을때 불영사에서 통고산 가는 길에 지나치면서 참 가을스럽다고 표현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시 삼척을 바라고 7번 국도에서 옆길로 나와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찾아간 곳은 도화공원.

처음 섰을때 홀로 우두커니 솟아 사방이 뻥 뚫린 절벽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은 마츄피츄를 가기 위해 거치게 되는 와이나피츄 같았다.

규모가 협소하지만 그만큼 도드라지게 솟은 지형의 꼭대기를 매끈하게 다듬어 홀로 우뚝 솟은 기분을 느껴 보라는 배려겠지?

특히나 이 의자에 앉아 정면을 째려 보면 동해 바다가 삐쭉 보일 정도라 울진에서 삼척 가는 길이 있다면 꼭 다시 들러 보고 싶은 자리였다.



의자 바로 옆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여기와 연결되는데 삼척 원덕에 가야 된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사진 몇 장만 찍곤 자리를 뜨면서 후회막급이었다.

원래 이 공원 일대가 과거 큰 산불로 벌거숭이가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 산불로 인한 황량한 산이 그나마 옷을 입어 묘목 수준의 나무들이 진행형이다.

저 길을 걸어서 내려가면 마치 세상에 나 혼자만 있을 거 같지 않을까?





오늘 목적지로 잡았던 삼척 원덕의 수로부인 헌화공원 초입에 다다랐다.

이 매끈야릇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허리에 올라 거기서  둘레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사방이 트인 전망을 가진 아주 넓직한 공원이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만만한 높이가 아니라 마치 남산타워 전망대?까지는 아니고 그와 슷비슷비한 몰입감을 갖기엔 흡사할 만큼 완죤 통유리로 도배해 놓아 바로 앞 바닷가부터 원덕의 포구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완다뿔 삼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이렇게 다리 힘이 풀릴만한 높이 정도 되는데 그런 만큼 전망 굿!



둘레길로 걷다 보면 드문드문 키 작은 나무 너머 바다가 보이고 전망대 엘리베이터 타워도 보인다.

사진에 담긴 방향이 남쪽이라 역광으로 인해 우중충하게 나왔지만 실제 보고 있자면 머릿속꺼정 얼얼할만큼 시원해진다.

통고산에서 단풍을 보며 뜨거워진 눈망울이 여기서 차가워졌으니 내 눈은 곤혹스러울 법도 하지만 실상 호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여쁜 꽃봉오리에 나비 하나가 앉아 있는데 사진 찍을땐 날개를 좀 펴주면 안되것소잉?

날이 추워 오그라든 건가?



공원에 초입에 다다라 왔던 길을 되돌아 본다.

아직은 조화롭지 못하다 해도 차라리 무분별하게 발자국이 찍히는 것보단 이 편이 미래를 위해 낫겠다.



드뎌 공원 한 가운데 서서 하늘 아래 놓인 세상을 바라본다.

큰 언덕 위에 이런 세상이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이런 세상에서 거대한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경이로웠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아 구경 나온 사람들이 규모에 비하면 무쟈게 썰렁했지만 오늘 보고 간 사람들이 전이시키고 그 전이된 사람들이 이 매력에 흠뻑 빠지면 유명해지고 북적대는 건 시간 문제겠지.

활짝 펼쳐진 시각적인 시원함과 동시에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보면 많은 비용과 시간과 함께 숙고의 노력도 보인다.

그럼 이 먼 곳까지 왔응께 싸돌아댕겨 볼까나?



육지를 째려 보시는 수로부인과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용.

아이뽕으로 이렇게 찍어 놓으니까 비장하고 늠름해 보인다.



수로부인 동상 뒷편에 이런 멋진 바다뷰를 전망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원덕이 언덕에 살짝 가려져 있어 베일에 쌓인 마을 같다.



싸가지 바가지 같이 수로부인 앞에서 바다의 반대편인 공원 내부로 살펴 봤는데 선이 짙은 공원의 메인길을 따라 구석구석을 다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둘레길이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다.

정면의 가장 높은 언덕엔 잠시 쉬면서 사방을 편하게 훑어 보라고 정자를 만들고 있다.



공원 아래의 북쪽 해안 언덕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는 위성지도에서도 볼 수 있다.

높게 떠 있는 해안 언덕의 지형 덕분에 바다 아주 먼 곳까지, 특히나 날이 좋고 대기가 맑아 시계가 넓을땐 울릉도까지도 육안으로 보인단다.



수로부인상은 이렇게 용과 함께 바닷가에 서서 대륙을 향해 째려 보시고 계신다.

그 뒷편엔 망망대해 동해를 두눈 뜨고 똑바로 쳐다 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어 말그대로 산과 바다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곳이며, 특히나 동해 하면 해돋이가 유명한데 높직한 지형에 서서 새벽 일출을 본다면 거리낌 없이 생생한 태양의 뜨거운 모습도 집중해서 볼 수 있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새로운 해돋이 명소에 대한 삼척시의 야심을 읽을 수 있다.

망원으로 찍은 터라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거리가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정자 아래에서 바다를 보고 파노라마로 촬영했는데 도시 생활에 찌들었다고 자가 진단이 된다면 여기서 찌든때를 홀라당 벗겨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중 하나다.



거의 텅빈 공원을 찍는 행운도 누려 보고.

두 어른의 나란히 걷는 동행이 참 아름답다.



장대한 가을 바다와 거대한 언덕을 구경했으니 이제 슬슬 다른 자리로 옮겨야 될 시간이다.

한 자리에 계속 머무르며 각종 뻐근한 종합 세트에 인고의 고통을 지고 계신 수로부인께 인사를 드린다.

인도산 히말라야 멘톨 크림을 하나 선물하고 싶은 동정을 접고 이제 하산!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중에 나무 타일보단 이 길이 더 마음에 든다.

특유의 폭신함과 산길처럼 이질적인 컬러도 아니고 길의 굴곡을 따라 밀착되어 길의 사연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다.

탁 트인 바다와 내륙을 두루두루 둘러 볼 수 있는 수로부인 헌화공원을 내려와 급격히 방전된 체력을 충전하기 위한 방법... 바로 풍부한 해산물을 어찌 지나칠 수 있으리오.

원래는 홍게를 먹기로 했었는데 수산시장을 둘러 보면서 한껏 섹시한 몸짓으로 유혹하는 문어의 그 갸륵한 정성을 아니 들어 줄 수 없어 홍게와 같이 적절하게 포식할 수 있는 양을 주문해 엄청나게 몰입하여 초전박살을 내어 버렸다.

투박하지만 서울에서 접하기 힘든 싱싱함과 더불어 부담 없는 가격,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덕에 흔히 먹는 해산물과 클래스가 다른 이 친구들을 배부르게 먹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먼길의 수고스러움에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음이여.

거대해진 충전 용량을 채우는 사이 늦은 가을 답게 금새 해는 서산 너머로 달아나 버려 특히나 낮이 짧은 시골의 특성상 통고산으로 다시 출발했을때 7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칠흑 같은 어둠이 만연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오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 고로, 또한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린다는 희소식이 있었지만 활동하기엔 아무래도 불편하기 때문에 이 여행의 편안함이 허용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서늘해진 밤바람에 한기가 자욱해 숙소로 돌아와 무장을 한 채 이왕 보낼 마지막 밤에 불빛도 없는 통고산 깊은 곳으로 가 보자.

잠시 올라갔을 뿐인데 금새 암흑천지다.

갑자기 아주 작은 불빛이라도 그리워져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중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 개닭살이 돋을 만큼 깨알 같은 불빛들이 금새 쏟아질 듯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근래 본 밤하늘 중 이다지도 선명한 하늘은 처음인데 서울 밤하늘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심지어 어릴 적 보곤 한 번도 못 본 은하수가 있지 않은가!

육안으로도 은하수가 미세하게 보일 만큼 하늘이 맑은가 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바닥에 매트를 깔고 무작정 사진을 찍었는데 노출과 초점이 맞지 않는 시행착오를 몇 장 겪고는 드뎌 어설픈 은하수가 보인다.

단색과 단조로운 밤하늘이 마치 선명한 입체감이 느껴져 추위도 잊은 채 누운 자세로 재미난 영화를 보며 하늘에 빨려 들 듯 한참 동안 감탄사가 탄식처럼 끊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누운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키는데 그 때!!!!

더 암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푸른 눈빛과 마주쳤다. 두 번째 개닭살!!!

샤오미 스탠드를 켜서 거기를 비췄지만 비교적 거리가 있어 우리 불빛이 미치지 못하고 다만 그 푸른 눈빛은 더 선명하게 보여 입에서 금새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개거품을 꾹꾹 눌러 참고 빛의 속도로 달려 몸을 던지듯 차에 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를 돌려 뭔가 확인해 볼만도 했건만 당시엔 공포가 온 이성을 경직시켜 오로지 숙소를 바라고 돌아와 버렸다.

무얼까?

늦은 가을의 찬바람살로 더 떨렸는데 지금 그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해 나 지금 떨고 있니?

통고산의 마지막 밤에 이런 추억도 쌓는다.

숙소 옆 가로등 아래 매트 사이즈 보다 좀 더 넓직하고 편평한 자리가 있었는데 가을이 떠날 무렵이라 무쟈게 많은 낙엽이 깔려 있어 그 위에 자리를 폈더니 침대의 폭신한 매트리스 같았다.

맥주 한 잔을 하며 불어 대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저무는 여행과 가을에 소담스런 추억의 물결을 휘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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