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기습적인 눈꽃_20150118

밤이 되자 급작스럽게 대기를 가르던 눈송이가 금새 소복히 쌓여 탐스런 눈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내릴 때만 부드러운 층을 겹겹이 쌓아 풍성하게 피는 눈꽃은 눈이 그치고 나면 점점 사그라 들면서 품고 있던 겨울 바람들을 떠나 보내버리고 이내 시들어 버린다. 새하얗게 얼린 우유를 곱게 갈아서 만든 눈꽃 빙수처럼 잡다디한 스펙트럼을 흡수해 버린다. 눈꽃은 차별이란 걸 모른다.어디에 나려서 만개하든 겨울의 움츠러든 빛깔들을 눈꽃의 화사함을 입혀서 풍성하고 눈부시게 복돋아 준다.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일지라도 눈꽃의 그 미세한 꽃잎들은 부드럽게 찬 겨울 바람들을 감싸 품고는 목화솜처럼 풍성하고 떠다니는 구름처럼 보드랍고 벚꽃보다 더 화사해서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겨울을 잊게 만들어 추위에 지친 세상을 위로해..

사북 떠나는 날, 11월도 떠난다_20141130

이제 오길 바라지 않았던, 떠나는 약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등을 떠밀려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며 첩첩산중에 구름솜을 뿌려 놓은 장관이 차라리 없었더라면...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미련 없이 훌훌 떠나버릴 수 있도록 유혹하지 않았더라면...그저 일상처럼 쨍한 햇살을 뿌리며 고독한듯 건조한 바람에 발길 자욱한 낙엽만 굴렀더라면... 피부에 닿으면 겨울 답지 않게 부드러운 입맞춤처럼 사각이던 보슬비가 이내 굵은 빗방울이 되어 가려는 길을 추적추적 적셔 놓는다.그저 평이했다면 기억에 산만히 흩어져 있을 터이지만 가는 길, 11월 마지막 날은 기억에 집착하는 그 모든 것들로 인해 고스란히 남아서 구름 조각을 덮어 놓았다.

이젠 겨울이려나?_20141123

아침 출근 전, 그리 이른 시각이 아님에도 여명은 뒤늦게 기지개를 편다.이젠 주위를 둘러 봐도 가을의 흔적은 사그라 들었다. 저녁 무렵에도 땅거미는 찾아든 겨울의 싸늘함을 피해 서둘러 자리를 피해 버렸다.가을의 화려했던 시간들이 지나 겨울의 웅크린 기세는 기실 세상의 시간들을 정적으로 짓누르는 것만 같다. 허나 겨울도 과정의 필연이다.설사 세상 만물을 얼려 버릴 것 같지만 그 계절 속에서도 내겐 어김없이 추억이 있고, 그 고스란히 남은 기억은 겨울 덕분에 따스해져 버렸으니 찾아온 밤의 암흑을 떨치듯 바뀐 계절에 맞물린 내 삶의 희열을 위해 집요하게도 기억을 채우려 할 것이다.난 겨울을 기다리고 겨울은 시절을 기다린다.

황혼의 간이역_20141102

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이 정체라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영주 방면으로 선택했다.가던 길에 옛추억을 곱씹기 위해 분천역으로 빠졌더니 예전 간이역의 풍경은 많이 퇴색되었다.너무 매끈하게 다듬어 놓아서 그런가? 말 없는 기차 선로는 여전히 말이 없다.역사길로 사라져 가는 철도의 눈물 없는 슬픔이 침묵으로 들려 온다. 환상열차와 협곡열차라는 상품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려 순식간에 사라지자 다시 적막 뿐.환호는 잠시, 좀전과 상반된 적막이 선로를 무겁게 누른다. 철도에 옛추억을 간직했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삶과 같..

20141025_갈대 나부끼는 ...

내가 사는 곳에서의 가을은 비슷한 장소를 담게 된다, 약속처럼.매년마다 기대를 하면서 맞이할때마다 만족하는 내가 사는 곳의 가을.작년과 비슷할까? (참조-갈대와 어울리는 가을_20141018) 남단 인공하천.갈대가 많은 곳으로 그 사이 뻗은 자그마한 길에 가을 정취를 느끼려는 사람들이 종종 목격된다.부는 바람이 갈대를 흔들어 대면 그 정취는 배가 되어 갈대가 간지럽히듯 사람들의 미소는 더 환해지는 건 어디를 가더라도 보기 어려운 광경은 아니다. 흔들리는 갈대에 부서지는 햇살이 잘게 쪼개어져 대기에 매캐하게 흩날린다. 공원 한 켠에 지나는 이들의 그루터기 같은 쉼터가 갈대와 녹색과 다른 옷을 갈아 입는 나무가지로 인해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녹색 푸르렀던 갈대 줄기조차도 잠시 잊..

강변의 가을_20141011

여행을 떠났으니 흔적은 남겨야 겠는데 급격하게 식어버린 사진 찍기 놀이가 지금 보면 참 아쉽다. 지금이라고 충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는 건 역쉬 사진이고 그 사진을 보면 당시 기억이 놀랄만큼 생생하게 기억에 살아 나니까 나에겐 딱 맞는 기록이다. 그래도 어딜 가나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챙기는 기특한 모습을 보면 열정이 완전 식어 버린건 아닌가 보다. 작년 가을의 한가운데 떠난 여행에서도 몇 장 찍어 놓은게 있는걸 보면 난 여전히 사진에 관심이 있다는 반증인게로... 어떤 기억을 되살리나 함 볼까나~ 10월의 전형적인 가을인데도 들판은 여름 잔해가 많이 남아 있는 반면 대기는 완죤 가을 같다, 아니 영락 없는 가을이다. 명상교를 덮고 있는 하늘엔 하나의 티끌도 보이지 않을만큼 구름 한 점 없으니 이런 날..

흔적, 그 해 가을

급하지 않아서 급하게 재촉하고많지 않아서 많길 바라고화려하지 않아서 화사하길 바라고작지 않아서 작은 걸 보고만 있다어느새 가을은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숙연하게 하지만 깨닫지 않고 즐기기만 하게 된다.가을은 세상에 오더라도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나뭇잎이 변하고 풀들이 변하고 바람이 변해야만 알 수 있다.그래서 가을은 우리가 항상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의 잠자고 있던 색과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