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황혼의 간이역_20141102

사려울 2015. 8. 11. 02:53

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이 정체라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영주 방면으로 선택했다.

가던 길에 옛추억을 곱씹기 위해 분천역으로 빠졌더니 예전 간이역의 풍경은 많이 퇴색되었다.

너무 매끈하게 다듬어 놓아서 그런가?



말 없는 기차 선로는 여전히 말이 없다.

역사길로 사라져 가는 철도의 눈물 없는 슬픔이 침묵으로 들려 온다.




환상열차와 협곡열차라는 상품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려 순식간에 사라지자 다시 적막 뿐.

환호는 잠시, 좀전과 상반된 적막이 선로를 무겁게 누른다.




철도에 옛추억을 간직했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삶과 같이 했던 철도와 사람들은 이제 서로 등을 돌린채 휑하니 모른척 지나쳐 더이상 애환에 대한 대화를 삼켜 버렸다.



분천역에서 바라 본 마을은 철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라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갈증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이다.



다시 협곡열차가 들어와 일련의 분주함이 연출되지만 삶의 흔적들은 이미 떠나 보낸 뒤라 가을만이 남아 간이역을 위로해 준다.



석양이 비치고 이제 열차도 떠날 채비를 하고 곧 가을도 떠날 것이다.

그 뭍혀진 사연들을 뒤로 하고 나도 떠나야만 한다.




분천역에서 떠나 앞을 보고 달리다 다시 춘양역을 만났다.

김치에 막걸리 판을 벌였던 관광객들이 열차를 타고 감쪽 같이 사라져 버리자 이곳도 적막만 남아 지루한 기다림을 시작했다.



이렇게 마을은 고스란히 남아 있건만 이제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 없이 몸을 웅크리고 앞을 바라보며 급하디 급한 잰걸음이 느린 철도를 외면한다.

시골 마을은 시간도 떠나 보낼 일만 남았나 보다.




좁쌀처럼 작던 칸과 그 칸을 빼곡하게 채우던 삶의 기약들도 이제는 점점 설자리가 위태로워지더니 결국 칸들도 떠나보내고 아무런 감정도 온기도 없는 하얀 여백이 늘어만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기약들이 소진되어 버리면 그 하얀 여백들도 결국 누렇게 바래고 외면 받겠지?

무궁화가 점점 사라져 가는 간이역에 잠시 머물며 떠나는 가을의 길목에 담배 연기만 향그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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