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27

노란 가을의 종착역, 원주 간현역_20241105

소금산 잔도를 한 바퀴 돌아 주차장에 돌아왔을 땐 많던 차량들이 부쩍 떠나 빈 구역이 꽤 많을 즈음이었다.행님과 헤어지기 전에 식사라도 대접해 드려야 될 거 같아 주변을 둘러봤는데 문득 주차장 너머 노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대략 위치가 간현역 부근이라 우선 거기로 모셨다.간현역에 도착하자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간현역 앞에 비교적 오래된 수령의 나무가 노란 가을 열매를 가득 맺어 오후 햇살을 탐스럽게 굴절시켰다.간현역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로 163 소재한 중앙선의 폐역이다.중앙선 청량리~만종 간 복선화 공사가 완료된 2011년 12월 21일을 기해 폐역되었다. 이후 이 역이 맡았던 여객 업무는 2021년 1월 4일까지는 동화역에서, 2021년 1월 5일 이후에는 서원주역으로..

가을의 노란 포효,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_20241105

땅과 하늘을 단단히 이고 지고 얼마나 긴 세월 희열과 그리움에 견고한 가지와 이파리를 떨궜을까?인간의 잣대로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존재란 걸 알기에 사방으로 뻗은 가지엔 어느새 가을 결실이 주렁주렁 열려 전염병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을 찾게 했다.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800∼1,000년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되며, 높이 32m, 둘레 16.27m로 논밭 중앙에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전체가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일부 가지는 부러질 염려가 있어서 받침대로 받쳐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의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관리하다가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큰스님이 이곳을 지나는 길에 물을 마시고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 ..

한가위 노을 아래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40916

올여름만큼 '기록', '역대'라는 말을 남발한 적이 있었을까?완연한 가을로의 길목인 한가위 연휴조차 폭염의 맹위에 가을이 올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연일 한여름과 같은 후덥지근한 폭염도 모자라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 도저히 참지 못해 9월 초 며칠을 빼곤 에어컨이 열일하는 여름이자 초가을이었고, 때마침 한가위 연휴를 맞아 큰누님이 홀로 친정집에 행차하시어 큰 마음먹고 동탄과 가까운 명소인 아산 곡교천으로 출발했다.내 신조가 더울수록 땀을 흘려야 더위에 둔감해지며, 겨울 또한 추울수록 활동을 해야 몸이 움츠러들지 않을 뿐더러 그런 가운데 겨울의 신선하고 순도 높은 추억이 쌓이는 벱이라 아산 곡교천 나들이를 제안하자 모두 덥석 물었다.[이전 관련글] 멋진 겨울 작품,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00211사실 아산은..

아산을 만날 결심,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40614

바람이 많은 날에 문득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걷고 싶었다.곡교천에는 강물이 흐르고, 거리엔 바람이 꿈틀거리고, 허공엔 하늘이 흐르는 곳.덩달아 사람들도 은행의 녹음 제방 사이로 흘러흘러 삶의 단맛을 머금었다.버스를 타고, 다시 1호선 전철을 타고, 그러곤 온양온천역에 내려 버스를 타면 충분히 닿을 수 있어 가끔 차가 짐이라 여겨질 때 부담 없이 올만했다.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생명이라 같은 존재를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아산은 단순히 온천을 넘어 여행의 기분을 배부르게 채워주는 곳이었으며, 거룩한 현충사가 있는 의미심장한 곳이기도 했다.그래서 아산에 와서 덤덤히 걸으며 멋진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낭만을 배웠다.아산을 가로질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곡교천은 천안천, 온양천 등 모..

위대한 믿음의 각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_20231107

믿음은 단편적이거나 열정적이지도, 달콤하거나 아름답지도 않다.오래 거듭된 귀로에서 식상함의 유혹을 물리치고 내 사념 마냥 친근한 타자, 그게 어느 순간 믿음이 되고 부지불식간에 교감의 견고한 가교가 연결되며 의심의 슬러지가 생기지 않는다.때가 되면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서리란 믿음, 그 믿음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반계리에 깊디깊은 뿌리를 내려 하늘 향해 모세혈관으로 뻗었다.가을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도 믿음의 편견은 실망이 파고들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낙엽 자욱한 이곳에서 또 한 번 위대한 믿음의 희열을 느꼈다.미세 먼지도 물러난 청명한 가을 하늘에 홀린 듯 이 자리에서 서서 여지없이 감탄사를 공양하고, 감동을 주섬주섬 챙겼다.앙상한 가지만 남았음에도 간헐적으로 찾는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하리..

가을의 노란 함박눈이 아름다운 순창 채계산 일광사_20221104

칼바위능선의 매력을 향유하기 위해 가을 체계산으로 향하던 길에 노란 은행 물결이 살랑이는 길의 정취를 애피타이저처럼 즐겼다.산 능선과 연결된 길이라 작은 사찰로 지나면서 그 길이 막혀 다시 돌아나오던 중 사찰 귀퉁이에 얌전히 있던 백구가 어느새 따라와 몸을 쉴 새 없이 비비는 통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참 스담을 하다 돌아 나오는데 녀석이 쫓아와 가던 길을 용케 알아채고 함께 동행하는 모습에서 마치 헷갈리는 길을 제대로 짚어 주는 것만 같았다.때마침 출렁다리를 찾아 길 잃은 차량 한 대가 다가오자 제 임무를 다하고 서둘러 숲길로 돌아가 버린 녀석에게 인사도 못한 채 진입로에서 녀석이 사라진 숲길을 쳐다보며 짧은 반가움에 씁쓸히 작별했다.여정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인연과 추억은 작은 원동력이자 스스로에..

유독 고운 은행 치맛자락, 순창 동계고등학교_20221104

교정에 쌓인 아름다운 추억만큼 진득한 가을.만추의 정취는 허무가 아닌 결 다른 낭만임을 항변하듯 지나는 바람에도 낙엽은 우수수 떨어져 곱게 써서 접은 편지 마냥 노란 마음으로 채색시켰다.한걸음 물러서 아쉬운 소설은 한걸음 다가서 눈부신 시가 된다.세심에서 채계산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먼 편으로 언제나 한적한 745 도로를 타고 후천마을에서 13번 국도에 합류한 뒤 연산마을 로터리를 지나던 중 전주 방향 15번 국도로 우회전하는 방향 멀리 가을로 물든 교정이 보여 잠시 곁길로 새듯 15번 국도 방향 관전마을로 향했다.도로는 줄곧 한적한 데다 너른 대지에 길게 뻗은 도로라 천천히 달리기엔 그만이었는데 곁길 가을이 물든 비교적 오래된 시골 교정의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원래는 학교 밖에서 담장 너머 고개를..

가을에 대한 노란 편지, 괴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_20221027

그리움의 모양이 점을 찍어 노란 물결 흩날렸다.이렇게 가을은 끝끝내 낙엽으로 키스의 여운만 남겼지만 또한 계절은 어느새 숨결처럼 다가왔다.충북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에는 아름다운 문광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작은 농촌마을인 양곡리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들과 괴산을 찾은 사람들에게 산책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문광저수지는 호수 위로 드리워진 산그림자와 아침 물안개 그리고 저수지 옆으로 은행나무길이 조성되어 있어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문광저수지는 깨끗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1978년에 만든 400미터 길이의 저수지이다.준계곡형의 저수지로 주변에 숲이 우거져 있고, 고목이 많아 사계절 내내 ..

가을 젖는 반계리 은행나무_20221011

시대의 순응과 시간에 대한 평온이 800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일 수 있겠다.나무의 껍질을 빌려 세상을 유유자적하는 신선 같은 존재,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와 함께 생명의 그늘이라 불러도 그 표현이 모자를 숭고한 존재 앞에서 가을 향연에 물들었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meta-roid.tistory.com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기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