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14

부쩍 다가온 겨울 바람, 풍기역_20211224

부석사에 들렀던 날은 매서운 기습 한파가 들이닥치던 날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허기진 배를 달랠 장소를 고민하긴 했다. 일대에 추천받았던 곳 중 유일하게 괜찮고 정갈하고 깔끔했던 청국장집인데 약간 젊은 입맛에, 주방은 다른 곳에 격리되어 있는지 맛보기 전 청국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는 별로 없었다. 청국장 조리할 때 냄새는 기겁하는데 일단 입안에 털어 넣으면 손바닥 뒤집듯 느낌이 달라지는 음식 중 다섯 손꾸락 안에 드는 음식이니까. 오픈 시간이 조금 늦어져 기다리는 동안 한창 공사중인 풍기역을 혼자 톺아보는데 근래 여느 역들처럼 현대를 추종하려 대대적인 성형수술 중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새로운 세대와 시대를 맞이하려는 모습에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렇다고 과거만 고집할 수 없고, 인정머리 없이 과거..

역사의 배흘림 기둥, 부석사_20211224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은 무거운 역사를 떠받든 나무의 곡선으로 유명하다. 매서운 삭풍마저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선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때 천년 사찰의 나부끼는 시간은 진중한 나뭇결 따라 파란만장한 인류의 애닮은 애환을 속삭인다. 세상 모든 사물에 사연은 있겠지만 역사와 동고동락한 나무 기둥엔 사연이 더해진 생명이 움터 마치 고행의 업을 지고 사는 수도승의 땀방울처럼 온통 갈라진 틈 사이로 휘몰아치는 번뇌의 눈동자가 초롱하다. 세속에서 부석사로 가는 길에 늘어선 나무조차 사욕을 간파한 시선이 돌아오는 길엔 온화한 동행의 미소로 승화된다.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 한 화엄..

봉화를 떠나며_20211004

전날 숙취를 간신히 잠재우고 봉화읍에서 거나한 점심을 챙겨 먹은 뒤 커피 한 잔을 끝으로 각자 흩어졌다. 점심으로 낙점된 송이전골을 먹은 뒤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이디아 커피로 향하며, 오래된 건물과 정갈한 간판이 절묘하게 조합된 상가를 지나게 되는데 약국보다 고풍스러운 약방에 시선이 멈췄다. 아직은 완전히 여물지 않은 가을 벌판 한가운데 힘겹게 자리를 지키는 허수아비도 조만간 춤사위를 펼칠 수 있겠다. 멀리 백두대간의 숭고한 바람을 타고 황금 물결이 출렁이면 지난한 고독의 병마도 성숙한 가을의 포용 앞에선 잠잠해지겠지? 먼 길 나서기 전, 가을 벌판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이 무겁던 마음에도 가을 바람이 일렁인다.

만천하를 그리는 곳, 스카이워크_20210616

죽령 죽령은 높이 689m. 일명 죽령재·대재라고도 한다.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5년(158)에 길을 열었다. 소백산맥의 도솔봉(兜率峰, 1,314m)과 북쪽의 연화봉(蓮花峰, 1,394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동쪽 사면은 내성강(乃城江)의 지류인 서천(西川)의 상류 계곡으로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죽령천(竹嶺川)의 상류 하곡과 이어진다. 도로도 이들 하곡을 따라 개통이 되나, 동쪽은 사면의 경사가 급하고 많은 침식곡이 발달하여 희방사(喜方寺) 계곡 입구부터 고갯마루까지는 굴곡이 심한 길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서쪽의 보국사(輔國寺)까지는 비교적 완사면으로 내려가나 곡저(谷底)의 당동리까지는 다소 굴곡이 심한 내리막길이다. 이와 같이 비록 험한 고갯길이었으나 예로부터 영남 지방..

지형의 아름다움이 용해된 용마루공원_20210614

둥지에 웅크린 자연이 수줍은 듯 날개를 서서히 펼치며 작은 잠에서 깨어난다. 이리저리 굽이치는 아스팔트는 산허리를 타고 돌아 인적 드문 지도의 공백지대로 걸음을 옮겨 주고, 한낯 기대의 봇짐만 무겁게 이고진 나그네는 무거운 어깨를 털어 신록이 흐르는 여울의 풋풋한 생명의 위로를 보답 받는다. 위성지도에 찍은 호기심만 믿고 지엽적인 이정표를 따라 몇 번 헤맨 끝에 도착한 호수공원은 매끈하게 단장한 공원이 무색할 만큼 인적이 증발해 버려 몇 안 되는 가족의 여유로운 산책에 있어 든든한 동반자 같았다. 비록 갈 길이 한참 먼 곳임에도 잠깐의 여유가 어찌 그리 달콤하던지. 한국관광공사 발췌 영주호 용마루 공원은 경북 영주시 평은면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은 용마루 공원 1과 용마루 공원 2로 구분된다. 용마루 ..

푸짐하고 질긴 육회 비빔밥_20210614

영주에서는 정평이 나있는 비빔밥 전문점인가 보다. 15,000원에 이 정도 푸짐한 상차림이라면 그야말로 가성비 킹왕짱이다. 육회비빔밥에 육회양도 제법 넉넉한데 다만 질긴 고기를 연신 씹다 보면 어느새 귀찮아진다. 육회양이 이 정도라면 여타 육회비빔밥 식당에 비하면 넉넉하다. 다만 육질이 질겨 왠만큼 이빨을 숫돌에 연마시키지 않으면 여간해서 끊어내기 힘들다. 15,000원 비빔밥 상차림이 이 정도. 푸짐함은 꽤나 신선한 느낌에 야채 튀김은 바로 튀겨서 바싹바싹하다. 고기가 무척 질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없었다면 맛집으로 손색이 없었을 건데, 그래도 점심 시간대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짧은 웨이팅은 감안해야 된다.

산에 걸린 구름_20191018

영주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풍기로 넘어가는 5번 국도 안정을 지날 무렵 좌측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려 있다. 5번 국도가 거의 고속도로 수준의 자동차 전용도로라 함부로 차를 세울 수 없어 조금 지나 신전교차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데 역광으로 인해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흔치 않은 광경인데 도로를 내려 멀찌감치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아서 사진으로 담을 껄 그랬다. 후회 되는 걸! 앞만 보고 먼길을 가야 되는 부담감에 잠시 풍기IC를 지날 무렵까지 잊고 있다 바로 고속도로 옆에 큰 산이라 이내 이 특이한 광경과 함께 아쉬움까지 몰려 왔다. 때마침 아이폰과 샤오미 셀카봉 리모컨이 페어링 된 상태라 거치대만 돌리고 리모컨 키를 눌러 댔는데 제대로 포커싱되지 않아 건질 사진은 거의 없었고, 다만 이런 특..

추억 팔이_20191018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출출한 허기를 달래고자 맛집을 서칭했다.영주에 돈까스 맛집이라고?마침 영주 시내 비교적 번화가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 빠듯한 공영주차장에 자리가 생긴 틈을 타 얼른 주차하고 지도를 켠 채 걸어 갔다. 응답하라 삘나는 고전적인 분위기에 조명과 음악까지 8,90년대 돈까스집 분위기 그대로다.반갑기도 하고, 어차피 추억 팔이라면 한 번 정도 속아도 괜찮을성 싶어 자리에 앉자 그냥 편한 사복 차림의 웨이러~가 무뚝뚝하게 주문을 받는다.돈까스 9천원?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프가 나오고 고전적인 방법대로 후추를 사알짝~근데 주루룩 나와서 덩어리 떡지게 쏟아졌다.좌측에 잘렸지만 빌도 고전적인 방법이다. 막상 돈까스가 나왔는데 맛집 맞나?돈까스클럽이 왕돈까스라는 미명하에 큼지막하게 보이지만 ..

시골 장터_20180907

세속을 떠나 봉화로 가는 길.길 곳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계절과 혁명은 길을 따라 전이 된다고 했던가!이왕 콘크리트 가득한 회색 도시를 벗어난 김에 시골 장터에 들러 뿌듯한 눈요기 거리도 한봇짐 챙겨야겠다. 봉화로 가던 길에 필연의 코스인 영주에서 앞만 보며 달리던 시선에 긴장을 풀자 덩달아 가을 하늘이 반긴다. 터미널 고가를 지나며. 찾아간 날이 봉화장날이라던데 역시 시골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장날이지만 이미 마무리 되는 분위기라 한적하다. 장터 갔으니까 시골 국밥 한사발 땡겨야지.국밥을 비우는 사이 장터 지붕 너머 붉은 노을이 하늘을 장식한다. 시골 하늘에 노을은 더 뜨겁다. 해가 저물자 이내 밤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