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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11월의 비처럼 찰진 오송 김가네 한정식_20241101

오송 출장길에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짧은 일정을 끝내고 점심까지 준비된 자리라 네비를 찍고 찾아간 곳은 작은 언덕 넘어 한적한 가을 전경이 짙게 서린 철길 옆이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정갈해서 대부분 빈 그릇으로 만들었고, 식사가 끝난 후 간단한 취지를 발표한 뒤 빗길을 헤쳐 회사로 도착했다.최근에 갔던 집 부근 한정식당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뛰어난 가성비에 가짓수보다 대체적으로 음식이 푸짐한 데다 단맛이 조금 강하긴 해도 컨디션이 괜춘했다.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회사 짬밥이 꽤 괜춘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갓 지은 밥과 같아 쌀알이 혓바닥에 그대로 굴러 다녔고, 특유의 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회사 짬밥이 아무리 좋아도 단체 급식의 태생적 한계가 밥이 쪄서 떡밥 아니더냐.

일상_20241015

가을은 여러 존재들이 감동을 표현하는 계절이다.전날 퇴근 무렵 하늘엔 손 뻗으면 닿을 듯한 하늘이 서쪽에서 연이은 영상을 펼치며,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결을 만들어 장관을 연출했다.물론 비소식과 함께.이튿날 어김없이 비는 내렸고, 지나칠 법한 빗방울이 심약한 빛을 굴절시켜 영롱한 보석을 만들었다.빗방울도, 가을을 관통한 파란 이파리도 하나씩 뜯어보면 별달리 특별할 게 없건만 계절의 후원으로 두 존재가 만나 뜻하지 않게 감동을 연출했다.그러고 보면 감동을 표현하는 방법도 제각기 다르지만, 감동으로 귀결되었다.들판과 공원에 핀 꽃에 빗방울이 알알이 박혀 걸음은 번번이 끊어지기 일쑤.무심히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가을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표현했고, 빗방울이 내려 그 꿈에 반짝이는 희망을 달았다...

냥이_20241003

가족들을 초대하기 위해 전날 집에 도착한 뒤 아침에 일어나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 쇼파에 앉아 있노라니 녀석이 티비 앞에 냉큼 자리를 잡았다.연신 눈을 맞히는 녀석.내가 없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방에 들어가 냥냥거렸다던데 모처럼 집사를 보자 계속 따라붙었다.그래도 사진 찍으려면 절묘한 타이밍으로 고개를 휙휙 돌려버리는 녀석.한 번 놀아주고 쇼파에 쉬고 있는 녀석을 캐리어에 집어 넣어야 되는데 얼마나 진땀을 뺄 지 안봐도 뻔했다.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녀석을 겨우 캐리어에 넣고 진천으로 궈궈!진천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타고 안성을 지나면서 빗방울은 굵어졌는데 창문을 열어놔서 비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걱정도 잠시, 여기까지 온 김에 진천에서 유명한 막국수는 먹어야지.어차피 비가 들어왔으면 닦아내면 그..

가을 단잠으로의 초대, 진천 만뢰산 자연생태공원_20241001

느지막한 오전 시각에 도착해서인지 주차장엔 차량이 거의 없었고, 가벼운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장대 같던 가을 장맛비가 그치긴 했으나 금세 쏟아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라 우산을 챙겨 공원 입구부터 천천히 살피며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올여름 폭염에 심신이 지쳤는지 뺨에 느껴질 듯 말 듯 휘날리던 보슬비조차 전형적인 가을 기온과 맞닿아 제대로 된 휴일을 만끽하기 위해 늦잠을 자거나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는 것보다 이렇게 가을 내음과 바람을 만끽하는 게 더욱 본능의 이끌림이 강해 자연생태공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잠시 앉아 있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져 쉴 새 없이 걸었다.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에 일대에 조성된 자연생태공원.만뢰산은 생태환경의 안정성과 희..

진천혁신도시의 한적한 전망 맛집, 선옥보리밥_20240910

한 때는 회사 사우에서 이제는 사회 형제로 반년 정도만에 만나 식사를 나누기로 했던 날, 그 친구가 둥지를 튼 혁신도시로 향했다.하루 종일 가을을 예고하는 빗방울이 이어지다 퇴근 무렵엔 만남을 응원해 주는지 빗방울이 가늘어져 길을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인간관계에서 꽤나 신중하고 성의를 다하는 동상이라 약속 장소에 꽤나 만전을 기했을 터, 아니나 다를까 혁신도시 남단 길게 늘어선 산무리 사이 한적한 장소를 섭외했었는데 지도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막상 그 자리에 서자 혁신도시와 일련의 산무리 사이에 우뚝 선 지형이라 일대 전망은 꽤나 좋았다.물론 그런 전망을 감상하느라 사진은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식당에 도착했을 무렵 소강상태던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까잇꺼 몇 방울 비 맞는 것 쯤이야.조선..

구름의 강이 흐르는 충주 수주팔봉_20240515

때마침 수도권은 대낮부터 장대비가 내려 야외 스포츠도 우천으로 중단되었던데 반해 충주는 거짓말처럼 대낮엔 화창하다 16시를 넘겨서부터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17시 전후부터 장대비가 내렸고, 이른 저녁식사 뒤에도 부쩍 길어진 낮이 아직은 건재하여 비교적 가까운 수주팔봉으로 향했다.역시나 장대비로 일찌감치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어차피 고속도로 상행선은 정체구간이 길어 천천히 둘러보며 남은 공휴일을 누렸다.바람과 비, 그리고 구름이 함께 머물다 떠나는 자리, 충주에서 큰 골짜기만큼 진폭이 큰 휴일이었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

냥이와 제비의 열렬한 환영, 충주 홍두깨칼국수보쌈_20240515

내 이름은 만두.난 우측 뒷다리 하나가 없어.그래서 급할 때 다른 닝겐들처럼 민첩하게 뛰거나 피하지 못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아.집사, 동네 사람들, 그리고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내게 미소를 날려주고, 따스한 손길로 나를 대해줘.나도 사람들이 좋아.그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도 어느 하나 큰 소리를 내거나 위협하지 않거든.난 늘 부족한 게 없어.밥도 적당히 채워져 있어 배고플 때 먹으면 되고, 심심할 때엔 뒤뜰에 벌레며 가끔 사람들이 함께 놀아줘.그래서 난 누군가 맛 좋은 걸 주는 것보다 관심과 애정, 그리고 나에 대한 삐딱한 편견만 없었으면 좋겠어.기생과 공생을 모르는 닝겐들이 아직 많더라구.집사는 내게 있어 세상이며, 나 또한 그들의 희열이거든.그럼 다음에 나를 보러 오게 된다면 나지막이 내 이름을 ..

비 내리는 날, 아까시 향 가득한 산책_20240506

올해 마지막 향기 불꽃을 태우는 아카시는 강한 빗줄기에 진화되고, 그렇게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다.유난히 짙은 향을 명징한 기억으로 남겼지만, 유별나게 강한 봄비 속에 사라져가는 많은 봄의 흔적들은 그렇게 말끔히 잊혀져 버렸다.동탄에서 오산까지, 다시 오산에서 동탄으로 빗속을 걸으며, 아카시 향수를 맞는 행복, 괜히 청승이 아닌 삶에서 결핍에 대한 고찰이라 하겠다.봄비치곤 꽤 많은 양이 지속적으로 내렸지만 큰 우산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와 오산천변을 따라 오산으로 걸어갔다.자전거를 이용해 뻔질나게 다니긴 했어도 걸어서 오산까지는 처음이었는데 지난번처럼 아까시 향에 취해 처음으로 도전해봤다.특히 사랑밭 재활원 부근 수변엔 아까시나무가 많아 곧장 거기로 향했는데 굵은 빗줄기에 꽤 많은 꽃이 떨어졌다.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