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13

비 그친 오지를 떠나며_20210826

어여쁜 호랑나비의 날갯짓에 넋 잃고 그 뒤를 총총히 따라 밟는다. 어릴 적엔 곤충 표본으로 메탄올 주사를 놓아 즉사시켰다면 이제서야 그 생명의 고귀함을 알게 되었고, 그러기까지 무척 많은 시간이 걸렸다. 너도 나처럼 고결한 존재임을, 그래서 요즘 보기 힘든 곤충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깨닫는다. 내가 미행하는 것을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제 할 일과 제 몸짓에 충실하다. 가을 장마를 피해 구름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소백산 연화봉과 지날 때마다 신기한 산능선나무숲. 백두대간을 지날 무렵 끝없이 펼쳐진 장벽 위에 망루처럼 솟아난 구조물이 소백산 천문대로 고교 졸업 후 친구들과 오르면서 개고생한 추억을 묻은 곳이다.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백두대간을 지나기 전, 무겁던 하늘이 가벼워지려 한다. 백두대간..

일상_20191020

휴일이라 센트럴파크 일대 공원은 가을 나들이 시민들로 꽤나 북적거렸다.아마도 동탄 신도시 내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산책 중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대부분 가족, 연인, 친구들 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벤치에서 쉬거나 나처럼 산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었는데 계절이 주는 시기 적절한 나들이 타이밍에 맞춰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해 있었고, 며칠 전 방문했던 분수대 부근 꽃밭을 다시 찾았다. 이런 화사한 것! 작지만 핑크뮬리가 제 색깔을 발산하고 있다. 카메라를 챙겼음에도 가방에서 꺼내기 귀찮아 아이폰으로 찍었다. 카메라를 끄집어 내어 깨알같은 꽃을 찍는데 가을 바람에 맞춰 요 앙증맞은 꽃들도 살랑이느라 제대로 사진 찍기 쉽지 않다.때마침 나비 한 마리가 꽃에 앉아 가을볕을 쐬고 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살랑..

유유자적한 시간_20190713

그리 이른 아침에 일어난 건 아니지만 새벽 공기 내음이 남아 있어 물가에 다슬기를 잡으며 잠시 음악과 함께 앉아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의자를 하나 두고 앉아 있자니 금새 다리가 시려 오지만, 버텨 내면 어느 정도 참을만 하다.다슬기를 잡을 요량으로 여울에 발을 담근 건데 햇살이 강한 편이라 래쉬가드를 입고 자리를 잡았다. 보란 듯이 발치에 앉아 화려한 자태를 펼쳐 보여주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주변에 날아다니며 시선을 끈다.가까이 다가가면 살짝 날아 올랐다 다시 주위를 맴도는 걸 보면 두려움이 별로 없나 보다. 다른 가족의 집에서 키우던 분재가 시들하여 여기 가져다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애매해서 행여나 하는 미련에 땅을 파서 심어 보았다.다시 생명을 틔우면 좋으련만. 언제부턴가 말벌의 출현이 잦아 주..

여주 온천_20190523

이틀 일정으로 비교적 가까운 여행지인 여주로 출발하여 해질 무렵 도착, 주저 없이 여주 온천으로 갔지만 1시간 후 클로징 한다며 5천원에 입욕 했다.한 쪽에선 마무리 청소에 들어가고 난 탕에 들어가 얼굴만 내민채 서서히 해가 지는 창 너머 풍경에 젖었다.청소하시는 분이 시간까지 편하게 있으라는데 후다닥 청소하는 환경이 그리 편할 수 있겠나. 여주 온천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 했지만 이미 석양은 붉게 타올라 잠시 후 밤이 찾아올 기미가 보인다.주차된 차들이 많아 손님이 꽤나 있겠거니 했는데 온천 내부에 들어서자 혼자 뿐이다.그럼 다른 차들은 뭐지? 창포 꽃인가?나방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꽃잎에 앉아 쉬길래 폰카를 들이대자 슬슬 꽃잎에 몸을 묻으며 숨는다.사진으로 보면 나방의 대롱이 꽃 안으로..

금단의 영역, 관창폭포_20190516

정글처럼 깊고 눅눅한 습기 내음까마득한 산 속처럼 칼로 도려낸 듯한 수직의 바위만년설로 뒤덮혀 메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물길더불어 언뜻 보게 되면 소리만 공명시킬 뿐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런 폭포가 있다.조물주가 거대한 바위를 이 자리에 두고 예리한 칼로 수직의 평면을 완성시켰고, 자연은 그 견고한 그릇에 물줄기를 그어 영속적인 징표를 약속 했다.변함 없는 관심을 두겠노라고, 그래서 늘 생명이 외면하지 않게 하겠노라고.깊디 깊은 비밀의 방에 그들만의 세상인 양 날벌레와 꽃 내음이 진동을 한다. 관창폭포를 찾은 건 온전히 지도의 힘이다.종종 가는 봉화 인근에 뭐가 있을까?산과 계곡이 깊다는 특징 외에 디테일과 지식이 없어 자근히 찾던 중 눈에 띄는 몇 군데를 발견하고 후기를 찾아 보는데 정보가 ..

청정의 봄을 찾아_20190516

많은 봄의 물결이 출렁이던 하루, 산 속에 숨어 수줍은 듯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화려한 빛과 향긋한 내음을 서로 나누는 봄을 마주한다.오감을 매혹적으로 반긴 장본인들은 문명의 세계와 조금 거리를 두고 관심과 상관 없이 숙명적으로 계절을 보낸다.이름도 모를 수 많은 봄들은 오로지 다른 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며 그렇다고 이기심은 전혀 없이 공존공생한다. 봄꽃 치고 매혹적이지 않은 게 무어냐 마는 녹색 바다 위에 유독 이 녀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품을 뿜어 보호막으로 삼는 벌레는 평창 두타산에서 이 녀석을 처음 알게 되었다.(용평 산중에서 정선까지_20150530) 좁쌀 만한 하얀 작은 꽃들이 모여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요 녀석은 산미나리라 불리며 미나리 대용으..

가파른 산에 의지한 고찰, 청량사_20180815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자 햇살이 거침 없이 눈 부시다.더불어 집 앞에 있던 개울은 여전히 맑고 폭염에 아랑곳 하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갑다.올 여름 폭염과 함께 가뭄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반해 여긴 무심한 듯 일정 수량을 유지하며 밤새 이 공간을 물소리로 가득채우고 지칠 줄도 모른다.아침은 대충 때우고 마음으로만 다짐하고 있던 청량사 가는 다짐을 실행 시킨다. 아침에 일어나 여울에 다리를 담그자 이내 찬 고통이 발끝에서 부터 신경을 따라 심장으로 전달된다.워낙 폭염에 찌든 여름이라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이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발을 빼게 된다.아침은 간편하게 해결하고 모두 집을 나서 청량사로 향한다. 청량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청량사를 향해 올라 가는데 워낙 길이 가팔라 오마니는 ..

봉화_20180814

한 달 정도만에 평일 다시 찾는 봉화는 오마니 모시고 가는 동안 한적한 여느 시골처럼 뻥 뚫린 도로를 질주하다 시피 이동했다. 고속도로처럼 매끈하게 깔려 있는 36번 국도를 따라 영주에서 봉화읍을 지나 춘양에 도달하기 전 작은 지방도로 빠져야 되건만 익숙치 않은 길이라 지나쳐 다시 국도에 올려 영주 방면으로 진행하다 그제서야 지방도로 빠졌다.영주 방면으로 다시 거슬러 오던 중 시간은 저녁을 바라고 석양의 노을은 벌써 서녘에 물들었다. 도착하여 칠흑 같던 암흑 속에 등불을 켜자 뎁따시 큰 나방이 빛을 따라 유리문에 붙어 있다.물론 깊은 산중과도 같은 곳이라 불빛이 도드라져 온갖 곤충들이 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달려 들지만 모기 한 마리 없는 게 신기하다.만약 있었다면 갈 때마다 모기와의 전쟁으로 홍역..

일상_20180609

개망초가 지천에 피기 시작할 시기다.아니나 다를까 들판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이고, 향도 매캐하다. 내가 좋아하는 반석산과 오산천 사이 산책로는 나무 터널이 꽤나 멋지다.신도시 나이 만큼 자란 나무들이 제법 가지를 많이 드리우고 뻗어 대낮에도 햇살이 가려져 유독 시원한데다 공기 또한 솔향이 가미된 은은한 향이 걷는 내내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공간을 가득 매운 개망초에 나비들이 하염 없이 날개짓을 하며, 불어대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비 한 마리와 그 주위를 끊임 없는 날개짓으로 맴도는 또 다른 나비 한 마리. 바람에 풀들이 누웠다가 금새 일어난다.바람이 많던 날이라 풀들이 바람결을 따라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찾아온 여름에 한층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일상_20170820

우연히 가던 길에서 총총 걸음으로 따라 오던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 다시 날았다를 반복하며 계속 따라 온다.우리 언제 만난 적 있었던가?사진 한 장 찍으려고 주머니 아이폰을 꺼내 찍으려면 연신 비상했다 앉고 그러다 아이폰을 넣으면 다시 앉고 해서 살며시 다가가서 쪼그리고 앉아 아이폰으로 몇 장을 찍었다.렌즈가 가까이 가면 앉은 자리에서 시계 방향으로 뱅글뱅글 도는 통에 제대로 찍게 내버려 두지 않두마 잠깐 요 포즈로 있을 때 찰칵~몇 장 찍은 것들은 하나 같이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려 가장 잘 나온걸루 선택 했고 인도 블럭 사이에서 자라난 잡초와 같이 있는 모습이 휴일의 나른함과 여유의 단면 같아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