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불영 가을 습격 사건_20141101

사려울 2015. 8. 10. 22:37

이제 희귀해져 버린 가을을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기로 한 프로젝트 1탄, 이름하야 불영 계곡 가을 습격 사건 개봉 박두~ 두둥!!

10월의 마지막 밤에 급작스런 회사 일정으로 늦게 끝나 버렸어 ㅠㅠ

이용이 30년 이상을 변함 없이 불러대던 잊혀진 계절을 인상 팍팍 써 가며 들어야 했었지만 11월 첫째날 불영 계곡 일정으로 위안 삼아 참을 수 밖에.

이미 자정을 훌쩍 넘는 시간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덕분에 영동고속도로는 참으로 한산해서 날아갈 듯한 기분을 억지로 추스렸지.

덕구온천호텔에 도착하기를 새벽 5시경.

다음날 비록 늦잠을 잤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불영계곡 일대를 싸돌아 댕기며 가을 싸랑을 키웠다요.



덕구온천호텔에서 나와 구수곡을 지날 무렵 일행의 몇 년 전 이야기를 들려 준다.

원래 이 개울에 풀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무성해진 게 상류에 축사가 있어 분뇨가 개울물에 섞여 잡초가 필요한 양분이 넘치는 고로 이렇게 되었단다.

이런 청정 지역에도 인간은 가만히 두질 못하나 보네.



가을이 될 무렵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다고 추천을 받아 이 길을 지나게 되었다.

어차피 구수곡을 지나 울진읍으로 진행하다 보면 이 길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그래도 마음은 조급해 진다.

막상 직접 가서 보니 기대 이상 띵호와~

위험 간판이 옥에 티구먼.

무성하던 나뭇잎이 방문 당시엔 많이 떨어져서 가을 절정기의 아름다움에 못미친다고는 하나 그래도 명함 좀 내민다는 길보다 훠~얼씬 느낌이 좋다.

자로 잰 듯한 비슷한 나무와 비슷한 간격에 특히나 거의 차가 다니지 않아 한껏 부릴 수 있는 여유가 과하다 못해 마치 내가 이 도로를 전세낸 거 같은 착각까지 느낄 정도.

청정지역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인지 낙엽에 물든 가을 색감조차 화려해서 눈 부실 지경이다.

여기서 이쁜 낙엽을 줍는 다는 건 해변에서 모래알 고르기 만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일단 울진 시내에 당도해서 심호흡을 가다듬는 심정으로 카페인 한 사발~

근데 더럽게 맛 없는 커피맛에 비하면 가격은 비싸!

이유는 경쟁 상대가 적어서.

차라리 서울에서 갈 때 맛난 원두를 미리 준비해 드립 커피 마시는 편이 명줄 늘어나겠스!

로컬 브랜드의 한계가 여지 없이 드러나는 부분이 당췌 입맛이 업그레이드 되는 소비자를 따라가지 않고 그저 원가 절감해서 당장 이익 많이 남겨 쳐 드시겠단 심보다.

흥분하지 말고 갈 길이나 재촉하자, 휴~




드뎌 불영계곡 초입에 당도했는데 이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들이 사람을 너무 괴롭힌다.

좀 가다 보면 뜨악! 거리다가 사진 찍고 구경하고 다시 좀 올라가면 또 뜨악! 거리면서 사진 찍고 구경하고...

계속 이런 행복한 상황이 반복되니 당연히 갈 길이 뎌디고 시간도 줄줄 샌다.

큰 맘 먹고 일단 더 깊숙히 들어가 봐도 이내 사람 마음 약해져.

어떻게 이런 절묘하고 감각적이고 곱단한 풍경이 끊이질 않는거지?



그러다 이내 이런 은행 자욱한 곳도 만나 `나 잡아 봐아라~'도 하고 싶어진다.

발밑에 거시기한 은행도 떨어져 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은행밭을 걸어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풀리지 않는 숙제를 지고 가는 터라 찝찝해서 밥맛도 똑! 떨어지긋어.



은행나무 가까이에 이건 어떤 족속 분들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또 심취.

무심코 떨어져 있는 낙엽조차 심사숙고해서 배치시켜 놓은 거 같다.



그런 상황에서 덩그러니 달려 있는 외로운 모과도 낭만적이여.



불영계곡을 경유해서 올라가다 보면 도로가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절벽 위 정자가 몇 개 있다.

오르면 나도 모르게 올레! 그러면서 서로 턱관절 무리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입을 딱 벌리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없다.



여기 처음 왔던 게 십 년 훨씬 전이었는데 볼 때마다 턱관절 무리가 제법 온다.

밑을 보면 아찔한 낭떠러지라 개거품 물고 앞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내가 하늘을 떠다니는 신선이 된다.

그 거대한 규모가 사진으로 옮겨 놓으면 왜이리 초라해 지누?



망원으로 한 번 당겨 보면 바위와 나무와 그 색상의 절묘한 조합을 알 수 있으려나?



상류 방면 계곡이 협곡 같다.

고도차가 더 심한 곳도 많은데 그걸 담지 못했던 아쉬움도 생긴다.



우리가 더 절묘했던 건 버스 몇 대와 계속 같이 이동 중이란 거.

그래서 차에 내리는 순간 언니 옵빠들이 같이 빼곡히 공간을 매우는 바람에 제대로 느긋하게 감상하기 힘들다.

하는 수 없이 일행을 협박(?)해서 한 템포 빨랑 진일보하자고 했는데 이럴땐 기가막히게 눈치가 9단이여.



느림과 여유의 상징이 바로 이 곡선 도로 아니던가!

상류 방면인데 물론 우린 급한 마음에 이 곡선을 가볍게 개무시하고 직선으로 내달았다.

이 자릴 빌어 준법 정신을 말아 드셨기에 사과의 말씀 찍~



갑자기 밀려드는 두터운 구름의 행렬.

뭔가 불안하다.

오는 길에 평창에서 굵은 비를 계속 맞았는데 대관령을 넘어설 무렵 보슬해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근데 새벽에 세찬 빗방울 소리가 비몽사몽간에 들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다니...



불영사 초입에 도착.

주차 후 주위를 둘러 보니 친근한 장면이 있었다.

어르신 장사 좀 잘 되셨으면...



불영사엔 제법 관광객이 많았었는데 좀 삐즘한 틈을 타서 사진을 찍으려니 쉽지 않다.

이미 불영사 구경을 끝내고 돌아오는 한 가족이 피곤에 지쳐 있는지 따로국밥이다.



불영사 가는 길에 있던 다리.



그 다리 위에 서 상류를 바라 봤더니 어느 한 곳 허술한 게 없다.

전부 절경 인증~



헉.. 몇 대의 버스 관광객들을 피해 먼저 달아나듯 도착했건만 우리가 사진 찍으며 늑장 부리는 사이 밀려 왔다.

하는 수 없이 유료 아이템을 써서라도 축지법 사용!




서 있는 소나무 옆에 한 중년분이 계시는 모습이 닮았다.

도플갱어?



이분들 한곳을 보고 전부 웃으시던데 뭐 있었지?

기억이 가물가물.

길이 아름다워서 이 사진은 뺄 수 없다.

부득이 얼굴에 스마일표 다 붙여 드리고...



새벽에 내리던 비로 낙엽이 떨어져 바위에 딱! 달라 붙어버렸다.



드뎌 불영사 도착했다.

저 빛 고운 은행나무.

어렴풋이 산능선에 부처 형상의 바위가 보인다.



여그가 불영사여.

지금은 그나마 사람이 적지?

쬐까 기다려 보더라고...



불영사 한 가운데 기구한 역사를 담아 놓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가 연못을 통해 바위 부처가 투영된다던 곳이다.

연못에 부처 반사되는 거 보이남?

못 보면 공부해야지, 공부!



자, 이게 바로 불영.

망원으로 최대한 당겨서 저 바위를 찍었는데 환상이 깨질까 그냥 보관으로 만족.



대규모의 언니 옵빠들이 도착했고 순식간에 적막하던 불영사가 시끌벅적해 진다.

불영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이구동성으로 주머니 폰카를 꺼내 쉴 새 없이 눌러 댄다.

여기 꿋꿋하게 셀카 찍는 언니 주목!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목 축이라고 샘물이 콸콸 흐른다.

가을 다운 사진으로 샘물과 낙엽 클로즈업.



여긴 어딘지 중요하지 않을만큼 이쁜 색들에 둘러 쌓인 사랑채(?)



이 언니 셀카 수백장은 찍으셨을 듯.

다른 분들은 풍경 감상에 바쁜데 이 언니는 오로지 자기 사진에 집중하길래 먼데서 도촬.



그 언니 호수 건너편에서도 셀카에 여전한 집중력 발휘.

불상이 보이던 곳 반대쪽인데 솔까 여기 풍경이 훨 낫다.

해가 많이 짧아 졌기 때문에 금새 어둑해지려 하고 게다가 사진에서 처럼 산이 점점 비구름으로 잠기길래 서둘러 불영사를 빠져 나왔다.

근데 이때부터 약한 빗방울이 느껴졌었지.

주차해 놓은 불영사 초입으로 갔을땐 빗방울이 굵어져 우산 없이는 안 될 정도였다.

서둘러 차에 타려는데 또 다른 유혹이 기어코 비에 옷을 젖게 만든다.



주차장 아랫편에 이런 민가가 보이고 저녁 짓는 연기가 솔솔하게 피어 오른다.

이런 목가적인 분위기하곤...

괜히 포근해 보이고 한가득 상다리 휠 정도로 푸짐한 밥상도 생각난다.



이렇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길래 다시 출발해서 더 깊은 계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불영사를 지나고 소광리 초입을 지나 봉화, 영주로 넘어가는 36번 국도를 경유하다 보니 금강송면 통고산이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땅거미를 붙들고 통고산으로 접어들자 한층 업그레이드된 빗줄기가 퍼붓는데 휴일을 쉬러 왔던 관광객들이 서둘러 빠져나가면서 거짓말처럼 적막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까잇꺼! 하는 생각으로 비를 맞았는데 이런 산중에서 과하지만 않다면 비 맞는 기분도 괜찮어.

근데 나무 터널이 눈앞에 펼쳐지길래 다행히 비가 드문드문 떨어져 가방 속에 넣어둔 카메라를 급히 꺼내 찰깍!

이번 가을에 찍은 사진 중에 가장 가을 다운 사진이 나왔다!!!

형형색색 물들어 아직은 풍성한 나무와 적당히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의 적절한 조화, 거기다가 높은 산중에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해가 지고 어렴풋이 남아 있는 땅거미가 상징적인 가을을 농축시켜 그려 놓았다.

아주 극소수의 사진사들은 하나를 찍기 위해 경관을 가리는 나무를 벤다거나 멋진 꽃을 찍곤 남들이 같은 작품을 못 찍게 꺾어 버린다는데 그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이기심을 반추해 보면 이런 자연 앞에 많이 부끄러워야 될 거시여.



이제 완연히 빛이 싸그라들고 빗방울도 더욱 굵어져서 하루 동안의 가을 습격을 마무리하고 퇴각해야 겠지.

불영계곡의 그 거대한 가을 잔치에 초대 받아 풍성하고 화려한 육감의 충족은 몇 장의 사진만으로도 퇴색되는 낙엽과는 달리 생생한 기억의 파노라마가 펼쳐 진다.

매년마다 오리라는 약속은 할 수 없는 건 어디 이곳의 가을만 제대로 된 가을이겠나!

허나 이런 다채로운 기억을 보듬을수록 난 살아가는 행복을 하나씩 더 돈독히 엮을 수 있다.

이번 가을, 너 참 맘에 들었스~

갈 때 조심해서 가고 다음에 올 때는 싸게싸게 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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