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하늘 아래 가을 나린 태백, 정선_20141019

사려울 2015. 8. 6. 23:16

첫째날이 정선행이었다면 이튿날은 태백으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 매봉산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갈 목적이었으나 매봉산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에 검룡소는 다음으로 기약하기로 하자.



태백에 오면 늘 들리는 통과의례는 바로 정선에서 넘어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내려다 보고 있는 울나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추전역이다.

지금은 폐역으로 분류되어 정식으로 열차가 정차하지는 않지만 관광지로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라 내가 찾아간 그 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렀다.

어떤 이들은 옛추억에 서린 간이역을 회상하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가장 높은 역이라는 나름 상징성이 주는 호기심에서, 또 어떤 이들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좀 더 해맑은 가을 산중을 구경하기 위함 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관광지로 뜨고 있음을 반증하듯 이렇게 카페가 들어설 채비에 여념 없다.

지금 쯤이면 아마 사람들을 만나고 있겠지?



추전역에서 매봉산 풍력발전소를 바라 보니 가을 옷을 입은 매봉산과 솜사탕을 먹기 좋게 찢어 놓은 구름과 어울린 푸른 하늘이 시선을 계속 잡아 놓는다.

손을 뻗으면 이내 닿을 거 같은 착각도 드는데 마치 하얀 초를 꽂아 놓은 브라우니 같다.

식욕이 급 상한가를 치는 구먼.




철길이 한 점으로 모이면서 그 끝이 출렁이는 장면을 보면 왠지 설렌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거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떠나는 그 길의 출발 같은 건 나만의 몽상은 아닐게다.

유난히 철길에 그리움들이 많은 건 많은 이들이 오래 전부터 그 길 위에서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왔기 때문이겠지?



망원으로 홀라당 당겨 버리니까 처음의 그런 환상은 좀 깨지긴 한다.

그래도 가을 산은 꽃보다 더 이뻐부러.



직장 생활하면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혼자서도 아주 가끔 찾아 왔던 추전역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구먼.

추전역 쉼터라고 되어 있는 곳은 사실 대합실이었는데 한 쪽에 방명록을 만들어 놓아서 방문하는 이들의 손길을 지독히도 반기던 곳이었건만 지금은 박물관 비스므리하게 변모시켜 놓았다.

난 예전의 대합실 느낌이 좋았다규!

낙서장이라도 좀 갖다 놓으심 안되것소잉?




그 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눈에 띄이는 빛깔들이 있다.

단풍나무 중에서도 철길 옆에 꼽사리 끼어 있던 이 단풍은 특히나 빛깔이 군계일학과도 같은데 드래곤볼을 모아서 이루어 낼 수 있는 소원이 있다면 얼릉 이 단풍을 내 가슴에 품고 싶다.

그러곤 얼릉 또 모아서 또 다른 소원들을 계속 이뤄야 되는데... 내 꿈이 참 복잡하기도 해분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은 태백시내 한 가운데 가장 번화가에 둘러 쌓여 있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로 아기자기한 공원을 만들어 놓았던 터라 때마침 젊은이들의 댄스 파티가 한바탕 흥겨운 갈채를 모으는 중이었다.

근데 이게 도시 한 가운데 있어서 물은 영남 젖줄이자 남한에서 두번째로 긴 강이라는 의미를 무색하게 할 만큼 깨끗하지가 못하다.

차라리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처럼 산속에 좀 숨겨 놓고 싶을 정도다.



요따구로 물이 잔잔허니 그냥 뛰어 들고 싶어.

제법 깊은 곳도 있는데 난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서 가슴까지는 참을 수 있으니 가을 하늘을 담은 에메럴드빛 연못에 들어가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올려다 보면 가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겠지.

연못 주위의 나무들은 이미 가을 옷을 갈아 입곤 다소곳이 서 있다.




황지연못에서 넘친 물이 저 다리를 건너 낙동강이 되어 바다로 쉴새 없이 달려 가겠지.

이따금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다리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 없이 산책하는 이들을 도랑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모셔 준다.

기특도 하셔라..



황지연못 공원에 음용수는 사시사철 철철 넘칠 거 같다.

물을 한아름 떠서 원샷 했더니... 영락 없이 물 맛이구먼.



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이라 서둘러 매봉산으로 고고씽했는데 이미 10월 중턱을 넘어선 시기라 배추를 홀라당 다 뽑아서 땅을 벌러덩 갈아 놓았더라.

덕분에 먼데서 봐도 길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그 길이 마치 미로 같기도 하다.



그 날 웃긴건 우리가 길을 잘못 들어서 이 풍력발전기 밑의 막다른 길로 왔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차들이 줄줄이 우리를 따라 와서 전부 돌아 나가야 했단 거~ 그래서 조금은 위안이 됐단 거~

내 심보 참 고약해 ㅋㅋ

그래도 실제 보면 이 풍력발전기가 추전역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워낙 거대해서 길을 잘 못 든 모든 사람들이 그 거대한 의외의 풍채에 감탄했단다.

내가 이쑤시개 같다고 놀렸던 거 미안해, 아그들아~



이렇게 매봉산은 거대한 고랭지 배추밭이다.

실제 보면 그 규모가 어마무시한데 용평에 있는 안반덕보단 좀 작은듯.



우리 일행을 필두로 줄줄이 사탕처럼 길을 잘못 들어서 만났던 풍력발전기가 바로 요거시여.

매봉산 끝까지 오르면 소위 바람의 언덕이 있는데 그 길로 가던 중 문제의 장소를 포착해 놓았지.



드뎌 끝까지 다다른 매봉산 바람의 언덕.

멀리 함백산과 오투리조트가 나를 째려 본다.

그날 약간 대기가 흐려서 아쉽지만 가을이라 내가 참는다.

그러고 보니 매봉산 오기 전, 추전역에서 본 하늘은 새털구름만 아주 찔끔 보이는 전형적인 가을 하늘인데 매봉산에서 보이는 하늘은 높은 구름이 잔뜩 서린 하늘이다.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떻겠냐, 가을인데...



꼬부랑 길이 정선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오는 길이구먼.

그 옆엔 아마도 철길과 추전역이 있겠다.



하늘 다음 택배? 태백! 바람의 언덕 푯말과 그 너머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력발전기들.

사실 태백에서 보면 매봉산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해발 1300미터가 넘는다.

그 이유는 태백의 고도가 높기 때문인데 언뜻 매봉산 밑 태백시내로 진입하는 곳도 700미터가 넘는단다.

그래서 하늘 다음 태백이라고 했겠지?

그 높은 지역의 언덕이라 그럴까? 바람이 더 맑고 새차게 빰을 스다듬는다.



아이뽕으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 중 이 사진 왜캐 잘 찍었지? 누가? 나!

화밸도 넘 잘 맞고 노출도 딱 맘에 들거든.

내가 찍은 사진 치곤 구도도 딱! 조타.



낭만의 가을이란게 이런 거지.



때마침 앉아서 아래를 훑어 보던 연인이 한쌍이 있어 내가 사진을 찍으려니 얼릉 자리를 비켜 주시길래 양해를 구하고 앉아 계신 뒷모습을 찍어 봤다.

그러니 영락 없이 좋은 풍경이 연출 되구먼.

혹시 이 사진 모델이 되어 주신 분이 보신다면 메시지 주세요.

제가 사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게 뭔지 아는공?

난 이날 처음 알게 되었는데... 궁금하면 오백냥.

글 끝에 써놔야지.




때마침 호박벌?이 꽃에서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계신다.

데이트겸 먹이 사냥인데 넘사스럽구로 궁뎅이를 보이네.

난 벌을 무서버 하므로 망원으로 멀리 떨어져서 찍었는데 무심한 듯 쉴새 없이 꽃을 기어 다닌다.

꽃은 참 이쁘고 워낙 강한 가을 바람이라 꽃이 추는 브레이크 댄스에도 벌들은 잘 붙어 있어 신기혀.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오르면 봉우리가 두개로 나눠져 있는데 바람의 언덕이란 푯말은 동편 봉우리고 서쪽 봉우리는 몇 장 아래 사진처럼 큰 돌에 백두대간 매봉산을 새겨 놓은 큰 바위가 있다.

처음에 동편 봉우리에서 가을 구경을 충분히 하고 서편 봉우리로 이동 중에 몇 장.



가는 길은 이렇게 갈대의 군락지가 곳곳에 있다.




이정표에 바람의 언덕 뒤에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매봉산 정상이 있고 서편 봉우리 쪽은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비단봉이 있단다.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서편 봉우리는 비단봉이 아니다. 확신!!



드뎌 넓직하고 편평한 서편 봉우리에 도착해서 고한으로 가는 크게 휘어진 길을 담았다.



눈물나게 벅찬 백두대간이란 단어!

그저 피가 육신의 곳곳으로 흐르는 느낌이 전달될 만큼 난 벅차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많을까?에 대한 반증이랄까?

그래도 자연은 환경에 적응한다.

바람이 오는 방향은 촉수를 움츠리고 대신 지나가는 바람을 부여 잡듯 가지를 길게 늘어 뜨렸다.



서편 봉우리에서 보니 매봉산 정상과 그 아래에 바람의 언덕이 보인다.

푯말조차 풍력발전기 아래 까만 점처럼 있구먼.

내 카메라 너무 좋은 거 아녀?!




이제 돌아갈 시간이라 내려가는 길에 방문객들을 배려하는 뜻으로 고랭지 배추밭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를 마련해 놓았길래 거기에 서서 하산의 아쉬움을 달래 봤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무 가족들을 망원으로 한 번 당겨 봤다.

군데군데 나무 가족들이 보이는데 잠시 쉬어가는 길손의 그늘이자 휴식처이며 동무가 되어 줄 것만 같다.



자작나무 일가친척인가?

가을 풍경을 저해하는 작자들..



부쩍 짧아진 해를 감안하면 이 정도는 서산에 기운 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무심하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처럼 가을도 무심하게 왔다 가 버리겠지?

매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붙잡으려 집착할수록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 가을, 그 가을은 낡은 교실에서 삐걱대는 책상에 앉아 아둥바둥 지내던 옛시절 동무처럼 정겨움이자 아득한 추억이 될 뿐이다.


주) 사진에 나왔던 꽃은 곤드레란다.

일행이 정확하게 알고 귀띔을 해 주던데 그럴 줄 알았으면 지천에 널려 있던 곤드레를 좀 뜯어 올걸.

내가 좋아하는 곤드레 만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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