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고요, 적막, 평온한 우포_20211025

사려울 2023. 2. 6. 02:50

석양이 남은 하루 시간을 태우는 시간에 맞춰 우포출렁다리에 다다라 쉴 틈 없던 여정에 잠시 쉼표를 찍는다.
간헐적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간소한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적막강산의 정체된 공허 속에서 희열과 여독으로 점철된 존재를 조용히 되짚어 본다.
가끔 낯선 사람들의 사소한 지나침이 반가울 때가 바로 이런 경우 아닐까?
상대 또한 그런 그리움의 만연으로 무심한 듯 주고 받는 목례에서도 감출 수 없는 반가운 미소와 함께 지나친 뒤에 그 행적을 돌아보며, 다시 마주친 시선의 매듭을 차마 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좀 전까지 밭을 한가득 메우던 농부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여행자의 발자국 소리만 굴절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정이라 걷는 동선을 줄일 목적으로 꾸역꾸역 차를 몰고 출렁다리로 접근했다.

하루 해가 꽤 많이 기울어 낮과의 작별이 임박한 터라 천천히 감상하기보단 출렁다리를 한 번 건너갔다 오며 희미해진 기억을 회생했다.

거울 표면처럼 잔잔한 수면에 기어이 남은 세상이 반영된다.

출렁다리를 건너왔던 길을 되돌아보자 석양이 지며 땅거미가 하늘 가득 지는 하루의 춤사위를 벌였다.

복원된 습지인 산밖벌에도 바람의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다만 땅거미에 채색되기 시작할 뿐이었다.

지나친 낯선 사람들이 반가운 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결국 뒷모습도 되돌아봤다.

바람도 잠잠해진 저녁녘에 호수는 거울이 되어 밤잠에 돌입했고, 생태촌으로 돌아와 하루의 긴장을 내려놓았다.

생태촌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남은 하루의 미련을 챙겨 우포로 향했고, 길 한가운데 달팽이 녀석이 느릿느릿 움직이며 어디론가 향했다.

생태촌에서 출발하여 우포에 다다르면 처음 맞이하는 맵에 산책로가 그려져 있었다.

이 넓은 곳을 한 바퀴 돌 수 없어 부근만 걷는 걸로 하고 걸음을 떼었다.

제방 산책로는 불빛이 없어 제대로 걷기 힘들지만 랜턴만 있다면 산책하기 안성맞춤이었다.

하나둘 세상 불빛이 잠들 무렵 호수를 유영하는 암흑 속에서 꿈틀대는 세상은 차라리 절경보다 도시와 다른 원초적인 자연의 심호흡에 가까웠다.
수줍음 많은 물안개가 어디선가 세상을 향해 비집고 나오며 서로 낯선 모습에 호기심 어린 교감을 읽는 사이 걷는 걸음에 피로는 사라지고 도시에서 묻어온 잡념이 새까만 공백 속으로 흩어져 그 쾌감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포의 큰 4개 호수 중 가장 큰 우포를 걷다 보면 호수에 서린 암흑만큼이나 견고한 평온을 체감할 수 있었다.

호수가 암흑 속에 환한 빛을 밝히자 정겨운 모습의 나루터가 나타났고, 나루터로 내려가 암흑 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자연과 생명의 소리가 연신 공명했다.

보이지 않던 달이 어느새 산을 넘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왔던 길을 그대로 밟아 생태촌으로 출발했고, 간헐적으로 마을 주민들인지 암흑을 뚫고 차량이 날 선 엔진 배기음과 쨍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지난 뒤 이내 정적을 되찾았다.

우포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우주의 진공 상태와 같이 적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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