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평범한 존재들의 아름다움, 이끼계곡_20210910

사려울 2023. 2. 4. 00:06

초록의 천국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마치 세상과 격리되어 숨겨진 천년숲처럼 온통 이끼가 자생하고 있는 곳을 5년 만에 들러 폐부에 정체된 공기를 계곡의 텁텁한 내음으로 환기시킨다.
모든 식물이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심지어 외부의 이질적인 습격에도 그들은 첨예한 배척보다 밀도 높은 습도로 접촉되는 모든 세포로 포근히 환영의 양팔을 편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 이끼는 힘겹게 뻗은 뿌리의 위태로운 생에 진정한 공존공생을 노래하며, 잊혀진 어미의 품과 입맞춤이 모든 생명에게 그리운 향기와 온기였음을 반추시킨다.
화려하지 않아도, 향긋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끼의 세상이 추억으로 바래지 않길. 

만항재에서 어평재로 내려와 짧은 휴식 후 집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가장 궁금하던 이끼계곡에 들렀다.

때마침 트렁크에 늘 싣고 다니던 장화를 신고 혼자서 카메라만 동여 맨 채 이끼계곡으로 진입했는데 예전과 달리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걷기는 수월했지만 문명을 피해 만든 그들만의 세상에 인간이 또다시 불청객이 되어 훼손하고 방해하는 것만 같아 전적으로 환영할만한 노력은 아닌 것 같았다.-이렇게 글을 올려 노출하는 것도 마찬가지-

 

첩첩한 이끼 계곡과 만항재_20161015

늑장과 지나친 여유의 원흉은 바로 '나'요 일행들이 전혀 가 보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안내 했던 루키도 바로 '나'였다. 당시에 갑자기 생각 난 이끼 계곡은 사실 평소 잊고 지내던 장소 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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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계곡에 발을 들여 천천히 걷기 시작할 초입에서 몇 가지 야생화가 가장 먼저 환영했다.

묏미나리와 투구꽃을 비롯하여 몇 가지가 있는데 앞서 만항재처럼 종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격리된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며 자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종종 밥반찬으로 즐기는 묏미나리는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눈에 띄어 꽃마저 풍성하고 매혹적이다.

평소 거의 볼 수 없었던 투구꽃이 만항재 일대에선 가장 흔한 꽃 중 하나였는데 꽃 형태가 참으로 특이했다.

평범한 걸 거부하면서도 벌의 쉼터이자 은신처가 되어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공생 관계의 극명한 배려가 엿보였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오르며 하나씩 담는데 이끼와 어울린 생명과 그를 가르는 물줄기가 무척 아름다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한참 감상에 젖었다.

세상에 흔한 생명들이 모여 특별한 정취의 울타리를 만든 이끼계곡에서 깊디깊은 감상에 젖는 사이 이번 여정의 말미는 포근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언제 다시 이 자리를 밟게 되더라도 그 모습과 이들이 상호작용으로 만든 포근한 위안과 위로가 존속되길 바라는 마음에 뒤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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