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바다를 메우던 그 숱한 아픔을 위로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간구한 모든 마음과 함께 합니다.
폭격 소리 사라진 마을에 매화 향기 퍼져나가고
두런두런 다시 풍요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평화와 인권이 생동하는 매향리에
역사를 기억하는 화성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화성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꽃과 나무를 뒤섞은 작은 정원들을 떠나 광활한 잔디밭에 한반도 형상을 새겨놓은 한반도정원으로 향했다.
여전히 폭염은 지칠 줄 몰랐고, 서해 바다가 인척임에도 바람은 폭염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 더위를 피했다.
평화의 나래를 합창하듯 새떼가 하늘로 힘차게 비상했다 나무 위에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막상 직접 걸어서 한반도정원에 접근하자 예상했던 것보다 훠어어얼씬 넓었다.
위성지도에 한반도 형상의 잔디광장을 포함하여 그 주변 일대도 편평한 잔디 광장이었는데 한반도 형상만 놓고 비교해 본다면 지난해 초가을 방문했던 양구 파로호의 한반도섬에 비해서 작았지만 일대의 잔디 광장을 포함한다면 장난 1도 없이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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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벌판, 한반도정원으로 가는 길에 강렬한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쉼터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종종 쉼터가 있었고, 그 너머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애기숲에도 벤치가 있어 땡볕을 피하며 쉬기 위해선 저기로 가야만 했다.
아직은 한반도정원에 대한 호기심이 폭염을 짓누른 상태라 휴식 없이 곧장 향했고, 한반도정원에서 볼록 솟아 오른 백두대간에 외로이 선 평화의 소녀상이 눈에 띄었다.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덫에 구천을 떠도는 소녀여.
한반도정원의 백두대간은 다른 곳에 비해 볼록 솟아 있었고, 그 위에 평화의 소녀상과 포토 스팟이 있었다.
멀리 망망대해 서해가 펼쳐져 있었고, 하루 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저녁이 다가왔음을 고했다.
때마침 액자 속에 새 한 마리 마중 나왔다.
사진에 폭염이 빠져 있는 대로 하늘은 망망대해 이상으로 광활한 바다처럼 아름다웠다.
백두대간에 서서 한반도정원의 북녘을 바라봤다.
지나왔던 길과 행적들, 그리고 서해를 향한 벤치
백두대간 고지 바로 아래 내려오면.
백두대간 한가운데 우뚝 선 평화의 소녀상.
지지리나게도 못난 역사가 만든 상흔, 그리고 그걸 애써 부정하는 일부로 인해 평화의 소녀상은 언제나 슬픈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매향리 평화의 소녀상은 좀 더 각별했고, 그래서 좀 더 많은 의미가 새겨졌다.
할머니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 속 하얀나비.
일본정부의 사과와 반성 한 번 없이 지나온 시절에 대한 할머니들의 원망과 한이 서려있는 시간의 그림자며, 원망과 서러움을 풀지 못하고 떠나신 할머니들이 부디 나비로라도 환생하여 일본 정부의 사죄를 꼭 받으시길 바란다는 의미였다.
맨발로 한복을 입고 손 위 매화꽃, 그리고 빈 의자.
맨발은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도 편히 정착하지 못하셨고, 아직도 우리 할머니들의 가슴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불편함을 맨발로 나타낸 것이며, 한복을 입은 건 어린 소녀들에게 일본정부가 조직적인 성폭력과 폭력을 자행하였다는 것을 되새기고, 끌려갔을 당시의 한복 입은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손 위의 매화꽃은 바다를 메우던 그 숱한 아픔을 위로하고 인간다운 삶을 간구한 모든 마을과 함께 폭력소리 사라진 마을의 매화 향기 퍼져 나가고, 두런두런 다시 풍요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매화를 새겼다.
빈 의자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빈자리이자, 소녀 옆에 앉아 그 당시 소녀의 마음을 공감하고 현재 할머니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보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과 아이의 인권을 위해 싸워오신 할머님의 염원을 이어 미래세대가 끝까지 함께하는 약속의 자리이다.
뜯겨진 머리카락과 어깨 위의 작은 새.
당시 소녀들은 댕기머리였는데 이렇게 거칠게 뜯겨진 모습은 낳아주신 부모와 내가 자란 고향이 일본 제국주의로 인해 강제로 단절되었음을 상징하며,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새는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긴 했지만 마음만은 현실에 있는 할머니와 이를 지켜보는 현재의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못난 역사에, 돌아온 고향에서 그릇된 사상에 희생되신 분들.
사상과 권력에 2번이나 희생당하신 할머니들의 넋을 기립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떠나 북쪽 방향으로 백두대간 위를 걸었다.
폭염 아래에서 그래도 까치들을 만나는 게 즐거운 일이긴 했다.
멀리 메모리얼파크와 기념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새 백두대간의 끝에 다다라 지나왔던 남쪽을 바라봤다.
백두대간의 끝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한반도정원의 백두산 위치.
여기에 백두산을 형상화한 무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북에 백두산, 남에 지리산.
한반도정원의 한반도 형상을 만든 건 길이었다.
백두산 위치에 잔디들은 더욱 짙은 녹음이었다.
한반도정원의 서해안을 걷던 중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봤다.
참으로 평온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반도정원의 서해안을 따라 걷다 바다로 향하던 길에 홀로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에서 묘한 고독이 느껴졌다.
망망대해 서해에 다다르자 어느덧 평화의 화음에 석양이 불쑥 끼어들었다.
방파제 위에서 감회와 폭염이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한반도정원으로 다시 걷다 앞서 애기숲으로 향했다.
한반도정원과 작가정원 사이에 아직은 작은 묘목 수준의 나무들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이 황량한 애기숲도 울창해지겠지?
한반도정원과 애기숲 사잇길로 걷다 보면 드문드문 벤치가 놓여져 있어 간이쉼터 역할은 했지만 워낙 햇살이 뜨겁던 날이라 도저히 앉아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자 쉼터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휴식을 취하며 켜켜이 쌓인 갈증을 풀었고, 멀찍이 외롭게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보였다.
떠나기 전 소녀에게 기도 드리나니 평화의 이불속에서 깊고 달콤한 영면을 취하시길.
매향리 고온항을 연결하는 길가에 장실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척 깨끗했고, 심지어 핸드 워시에 드라이어까지 있었다.
세면대 냉수를 틀자 잠시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냈고, 비록 손에 찬물이 닿았지만 몸 전체 끈적하던 더위가 조금이나마 씻겨졌다.
출발지점인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이런 덩쿨 터널도 있어 지나갈 요량으로 들어섰지만 한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거미줄이 몇 겹에 걸쳐 지나길 거부했다.
앞서 방문했던 작가정원을 스치며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한 매력에 또 한 번 부러운 시선을 던졌다.
황토담장이 있던 정원도 마찬가지.
출발점이던 주차장 옆에 공예문화관이 있어 방문했지만 아쉽게 시간이 늦어 작품 감상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고, 이내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더위를 벗어버리기 위해 해수 온천으로 향했다.
화성에서 유명한 해수온천에 가서 온천욕을 즐겼으나, 마감 시간이 임박하여 진득하게 머무르지 못했고, 나오는 길에 음용이 가능한 해수로 갈증을 식혔다.
6월 24일부터 리뉴얼로 한동안 이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뒤로하고 이번 여정, 그리고 2주에 걸친 기나긴 여행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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