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토속적이고 인정 넘치는 중독성, 정태춘의 '섬진강 박 시인'

사려울 2024. 7. 22. 20:15

섬진강 박 시인
                          - 정태춘 곡, 박남준 시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 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 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 비는 오고 지랄 
십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 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 바람이 화개 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 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 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 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 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그 누가 날 부릅디까 적멸 대숲에 묻고 
양지녘 도랑 다리 위 순정 편지만 쓰더라 
순정 편지만 쓰더라

토속적인 음색에 노래 자체를 시처럼 부르는 음유 시인 정태춘의 <섬진강 박 시인>은 10여 년부터 잊을만하면 듣는 곡 중 하나로 앨범 재킷에서부터 멋드러지게 뽑아내는 가락과 저음에서 숨을 밀어내는 소리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건 없다.
그러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모아 장독대 안에 메주처럼 하나의 친숙한 덩어리는 예나 지금이나 묘한 정태춘만의 정취는 변함 없었고, 때론 변하지 않아서 반가운 것처럼 이 또한 반가웠고, 든든했다.
자주 다니는 여정에서 장르를 정해서 듣는 건 없지만 한 곡에 꽂히면 주구장창 듣는 습성이 변하지 않는 걸 보면 여정을 떠나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존재들이 모든 게 아닌 때에 따라서 음악이나 향기가 버무려지면 그 전체의 조합이 기억에 깊숙이 각인되었고, 추억을 상기할 때 묘하게 조합된 기억들이 명징하게 떠올랐다.
섬진강 구례~하동~광양, 그리고 그 인근이나 아니면 그와 상관없는 장소일지라도 지나다 언뜻 흘려 듣게되면 도저히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노래 또한 이 곡으로 이참에 잊기 전 또 한 번 테잎이 늘어지도록 들어봐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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