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출발은 했지만 생각보다 오마니께서 피곤한 기색이 있으셔서 마음이 무거웠다.
젊은 시절 여행은 사치라고 여기실 만큼 평생을 자식에게 헌신한 분이라 익숙지 않은 먼 길 이었던데다 오시기 전 컨디션도 그리 좋지 못하셨다.
가급적이면 가시고 싶으신대로 모셔 드리려고 했음에도 정선 장터만 알고 계신 터라 증산에서 화암약수와 소금강을 지나는 산길을 통해 정선 장터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 들릴 예정은 아니었지만 지나는 길에 늦봄의 뜨거운 햇살이 가져다 준 갈증으로 인해 화암약수를 들리기로 했다.
조용했던 초입과 달리 약수터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약수를 뜰 만큼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서 순간 조용해졌다.
뒤이어 관광버스와 몇몇 커플들이 오자 다시 떠들썩해 졌지만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마침 얼마 전에 장만한 물통을 들고 갔던 덕분에 12리터 짜리 물통을 채웠고 탄산수와 철분이 가득한 걸 표내는지 물통이 빵빵해지고 내부는 벌겋게 변색되어 버리더구만.
이 물을 아껴 먹는 답시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작은 물병 여러 개에 나눠 넣으시는 모습을 보곤 사실 귀여웠었다.
장터에 방문했던 때가 장날이 아니라 썰렁하긴 했어도 오마니 입장에선 무척 친숙 하면서도 반가운 표정이 역력했다.
하긴 사람 구경 하러 온 게 아니라 말로만 듣던 정선장이 궁금 하셨을 테니 그럴 법도 했겠지만 이런 산 넘어 고장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시는 것도 이색적 이었을 텐데 아!숩!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출출한 속을 채워야 되는데 그래도 정선 하면 곤드레나물 아니겠나 싶어 예전부터 정선 오면 들렀던 동박골식당으로 모셨다.
여기 10여년 전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정선장이 리모델링 되면서 부터 조용해진 거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 안에서 해결하기 때문이겠지?
가장 최근에 갔었던게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니 시간은 소리 소문 없이 잘도 지나간다.(용평 산중에서 정선까지_20150530)
이미 폐역이 되어 버린, 이름이 이쁜 별어곡역은 2004년 정선 꼬마열차를 타고 왔을 당시엔 기차가 정차 했었지만 2007년? 2008년? 방문했을 때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고 역사 내부엔 두꺼운 골판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내부에 들어 갈 수 없었지만 통유리 너머로 봤을 때엔 말끔히 새단장을 해 놓은 후 였고 기차역을 돌아가면 별 다른 장애물 없이 플랫폼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과거 회상할 겸 잠시 머물렀다.
조악 했었지만 내 눈엔 더 이뻐 보였던 플랫폼의 역명판이 깔끔하게 바뀌었구나.
허나 이름이 이쁜 별어곡역엔 이 역명판이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보여 어울리지가 않았다.
다시 예전의 흰색 나무판에 사람이 직접 그려 놓은 걸루 바꿀 수 없나?
민둥산은 증산역이었는데 언젠가 부터 역명이 바뀌어 버렸군.
내 과거 사진첩에 그 사진이 남아 있는지 문득 궁금해 졌는 걸.
매끈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플랫폼도 과거의 모습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플랫폼에서 역사로 가는 곳.
새벽에 일출을 찍으면서 화밸 조정을 했는데 그 화밸을 다시 돌려 놓지 않았단 걸 깜빡했네.
도리어 이 느낌이 어울려 난 이 사진이 더 좋다.
다시 돌려 놓은 사진은 요따구로 싱싱해 보여 간이역의 느낌 표현에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근데 선로에서 높게 자라기 시작하는 각종 들풀이 쓸쓸한 간이역의 현실을 보여 준다.
우측에 빛 바랜 정지 마크는 언젠가 교체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차!
뜨거운 햇살 아래 세워 둔 차에 혼자 계실 오마니 생각이 나서 퍼뜩 가출한 정신을 끌고 와 별어곡역을 빠져 나간다.
평생 인내와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신 울 오마니 분들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음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마냥 기다리고 계신다.
별어곡역을 떠나기 전, 등 뒤의 서산으로 기우는 햇님이 보인다.
마치 별어곡이라는 의미를 재현 하려는 것인 양 나도 떠나고 햇님도 떠나고 시간도 떠나는 이별의 골짜기에 홀로 남겨지는 간이역 같다.
이제 하루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가 보고 싶은 곳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인지 태백으로 넘어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
2014년 가을 이후 처음 찾은 곳이라 만만하게 찾아갈 줄 알았건만 밭길에서 좀 헤맸다.(하늘 아래 가을 나린 태백, 정선_20141019)
옆에 계신 오마니께선 밭길을 꾸역꾸역 헤매는게 불안 했었는지 다시 돌려 가시잖다.
밭 주인들이 몰려 와서 나가라고 하실까봐, 그리고 밤이 되면 가뜩이나 헤깔리는데 길까지 잃으실까봐.
아들 믿고 편안하게 계시라고 했는데 사실 나도 좀 흔들리긴 했어.
그러던 찰나 바람의 언덕이 눈에 들어와 안심하고 길을 따라 덜거덕 거리며 도착했다.
마침 딱 한 대의 차량과 그 차를 타고 온 3대 가족이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 가려던 참이었는데 우리가 일행이 되어 같이 올라 갔다.
일요일 이었던 만큼 여행객들은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터라 이런 날이 있나 싶을 만큼 썰렁했는데 워낙 바람이 세차다 보니 그 분들마저 바람의 언덕에 잠시 머물다 이내 돌아가 버려 오마니와 나만 남은, 무인도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쉽게 올 수 없는 곳이라 이왕 온 거 사진은 몇 장 남기자 싶어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돌아 다녔는데 태풍이 올 때 빼곤 난생 처음 이런 세찬 바람을 본 적 없었던지 오마니께선 무섭다시며 차로 내려 가셨다.
하긴 제 한 몸 겨우 의지하기도 힘든 세찬 바람인데 연약한 사람이라면 오죽 하겠나.
바람의 언덕에 오르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차는 풍경이 바로 오투리조트와 함백산 전망이다.
세상이 한눈에, 가슴에 들어올 것처럼 펼쳐져 있는데 망원으로 당기며 찍었지만 그 날 맑지만 대기가 좀 뿌옇게 흐려 사진은 선명하지 못하다.
바람이 결국 나무의 유전자도 변형 시켰나 보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바람에게 몸을 맡겨 미친 듯이 흔들어 대는 들꽃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위대한 생명력 만큼이나 가볍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세상을 삼길 듯한 바람과 그 바람이 움직이는 풍력 발전기의 굉음, 게다가 점점 꺼져가는 낮의 태양과 어느 누구도 없는 홀연한 고독을 헤치며 음악을 크게 틀고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찍어 댔건만 더 이상 완강한 저항이 쉽지 않아 언덕을 떠날 무렵 중년의 남성 두 분이 도착해서 언덕으로 쉬엄쉬엄 올라가는 뒷모습을 잔상으로 남았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와 합류하는 곳에 삼수령 휴게소가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팔각정에 올라 보는데 밑이 시끌벅적하다.
묘한 반가움에 내려가 보니 두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다니듯 세세히 주위를 설명 중이다.
진지함과 장난스러움이 교차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두 엄마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들과 함께 함을 안다는 눈치다.
그 적막을 깨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난 오마니 뫼시고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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