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천고마비라~_20190915

사려울 2019. 9. 27. 23:25

가을이면 여주는 결실로 풍성해진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햇살이 무척 따사롭던 휴일, 여주 지인께 찾아가 농사일 도와 드린 답시고 어설프게 거들다 줄무늬 산모기의 소리소문 없는 공격으로 순식간에 4방이나 물려 방탱이가 되도록 퉁퉁 붓자 올리브영에서 구입한 백화유를 바르고 가려움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사이 작은 텃밭 하나를 후딱 해치우셨다.

대낮에 밭에서 산모기가 출현해서 맘 잡고 일해보려는데 방해를 하다니.



잠시 쉬다 함께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 보기로 하고 집을 나서자 너른 생강밭 위로 뜨거운 가을 햇살이 듬뿍 쏟아진다.

여기는 여주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한 구릉지대라 지금까지 홍수 피해가 전혀 없었고, 그러면서도 모래와 점토가 섞인 기름진 토양이라 밭농사가 잘 된단다.

가까이 청미천과 남한강이 있지만 고도 차이가 있어 어떤 홍수가 있어도 마을까지 수위가 올라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큰 강들이 실어다준 상류의 비옥한 점토와 모래로 각종 야채와 곡식이 잘 되는데 그래서 여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이 쌀, 고구마, 땅콩, 참외로 실제 수확량도 좋지만 품질 또한 우수해서 밤고구마 같은 경우 울 엄니께서 아직도 고구마 그러면 여주 고구마로 붙여서 고유 대명사처럼 사용하신다.




집에서 출발하여 마을로 걷는데 이웃집 백구 두 마리 중 성격 좋은 하나가 반긴다.

옆에 녀석은 언제나 앙칼지고 이 녀석은 처음 볼 때부터 헬리콥터 꼬리를 달았는지 사정 없이 흔들어 대며 반긴다.

그래서 인물도 좋아 보이고.

반기는 녀석을 지나쳐 마을 회관에 도착하여 고프로로 사진을 찍었는데 광각이라 디테일은 떨어져도 담는 면적이 확실히 넓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지나며 아이폰과 고프로로 사진을 번갈아 가며 찍어 봤는데 사진 품질로만 따진다면 역시 아이폰이 낫다.

고프로는 액션캠에 특화된 단말기라지만 큼지막한 이미지센서가 아깝다.



마을을 한바퀴 도는 동안 끝도 없이 펼쳐진 높고 너른 하늘이 인상적이다.

가을을 즐기기에 하늘 또한 지대한 역할을 해서 그런지 세상 모든게 타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햇살도 청명한 가을 정취로 인해 금새 잊고 세상을 두리번 거리며 걸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인적이 전혀 없는 들판 한 가운데 큰 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고, 그 나무 아래 운동 도구와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 간다.

마을과 가깝지 않은 거리에 뜬금 없이 운동 기구라니... 아무리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해도 고령화된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쉽게 운동할 수 있는 마을 회관 부근에 있는게 차라리 나을텐데 왠지 조금 젊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듯하여 씁쓸하다.




인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과 달리 여긴 마을 한길을 중심으로 대부분 인가는 길가에 일렬로 늘어서 있어 가구수에 비해 마을은 대단히 넓다.

게다가 강과 인접한 지역은 적당히 높은 산과 들판이 함께 어우러져 살기에 무척 적합하여 근래 들어 서울에서 이주해 온 외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추석이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이 오자 산과 들판, 하늘이 그 어느 때보다 넓고, 그 색은 일 년 동안 간직했던 선물 보따리를 풀듯 색감이 무척 풍부한 가을, 여주의 작은 마을이 세상처럼 넓게 보이던 날에 걷는 동안 피로를 잊고 생활에 쌓였던 고충들마저 말끔히 지워졌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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