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8일에 갔던 가평 대성리.
일행들 무리를 이탈해 잠시 일탈의 여유를 즐기며 가져간 엑백스로 시절의 기록을 남겨 본다.
대성리 교육원 앞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차지하며 세상일에 무심한 것처럼 유유히 흐르는 구운천.
강가에 자태가 빼어난 구경꾼들이 많다.
저마다 가을 옷으로 단장한 품새가 소박한 듯 하면서도 결코 도시의 어떤 유형물보다 세련미가 넘치는데다 서로를 응원하듯 지나는 바람을 부여 잡곤 하늘하늘 손세례를 해댄다.
이에 잔뜩 고무된 강물은 그들의 팔랑이는 응원에 정중히 답례하듯 거울 같은 투명한 표면을 통해 그 모습을 여과 없이 비춘다.
식당으로 비유하자면 푸짐한 먹거리가 있는 패밀리레스토랑보단 맛깔스런 먹거리만 갖춰진 한식당 같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소품이 연기가 소담스레 피워 오르는 굴뚝이겠다.
때마침 초저녁을 준비 중인 한 민가의 굴뚝이 잠시의 소홀함 없이 하얀 연기를 허공에 연신 풀어 헤침에 여념이 없다.
그 모습, 그 향기의 조합이 잠시 잊고 지내던 익숙한 것들 중 잊을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이다.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들지 않고 그저 옆 개울의 잔잔한 시냇물처럼 원래 있어야 될 `것'들이 그 자리에 있을 뿐, 무엇하나 억지스럽진 않다.
하나하나 놓고 본다면 잊혀짐에 익숙한 주위의 사물이지만 그 익숙하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 다음 계절의 기다림과 설레임을 암시해 준다.
은행 잎사귀의 곱단한 색감이 팔랑이는 바람을 만나 주변 허공에 번져 막연한 시선을 유혹시킨다.
강렬한 선홍색 빛깔에 가미된 노랑의 불규칙 파동이 서로 한데 어울려 꿈틀거리며 잠시 묶여진 눈망울에 뜨거운 불길의 착각을 일으킨다.
전형적인 가을 풍경.
카멜레온처럼 노랗게 단장한 은행나무와 그 나무 아래엔 언제나처럼 나뭇잎이 자욱하게 깔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상락향 절의 적막에 땅거미를 붙들어 두려 한다.
꺼져가는 태양 불빛의 잔해가 이들 덕분에 늑장을 부려 더 늦게 사그라 든다.
산 언저리에서 아래의 굽이치는 개울과 골짜기를 내려다 보는 상락향.
은행잎보다 더 노랗고 단풍잎보다 더 붉은 색상이 여기저기 제 자리를 꿰차고 있음에도 결국 인위적인 배열의 한계가 보인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조소인 듯 뒷편 언덕이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상락향에서 한 눈에 보이는 풍경들.
산 바로 밑이 장충단성결교회 수양관이란다.
그 아래엔 구운천을 따라 펜션과 숙박시설들이 즐비하다.
인공의 조형물들이 애처로워 보다 못한 가을 산천은 가련한 문명을 따돌리거 무시하지 않고 측은과 동정의 조경물을 배치하여 지친 등을 다독여 준다.
이 건물들이 허허벌판에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찬탄의 시선을 보낼 수 있었을까?
본관인가? 앞 마당에 서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초승달이 걸렸다.
그 날 본 풍경 중 가장 인상 깊은 나무로 앙상한 가지에 얼마 남지 않은 잎사귀가 다가 올 겨울을 암시해 주는 듯도 하고 공포 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 같기도 하다.
이미 해는 서산에 완전히 기운 후라 드 높은 가을 하늘엔 빛이 대부분 소멸해 버렸고 그 꺼져가는 빛이 마지막 안간힘을 내며 하늘이 수놓은 결들을 휘젖고 있다.
이 사진이 참 멋지다.
떠오르는 달과 지는 나무.
다가오는 겨울과 물러 나는 가을.
껴지기 시작한 별과 거의 꺼져 버린 태양.
극단적인 대조의 조화로움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도 묘하게 태극 문양처럼 운치의 또 다른 멋을 뽐낸다.
세상 모든 대조도 이렇듯 겸허하고 공손하게 설득시킨다면 그 어느 누가 반문을 제기할까 싶다.
카메라는 내가 표현하지 않은 기대를 용케 알아차리고는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가느다란 빛의 계조를 기가 막히게 배열시켜 `네가 생각해 낸 바램은 바로 이것이렸다'하고 자신만만해 한다.
그 모습과 그걸 표현해 내는, 그리고 그걸 볼 수 있는 시간들이 그래서 아름답고 숭고한가 보다.
펜션에서의 밤이 깊어질수록 늦가을 바람살이 차갑다.
흔하지 않은 일상의 감명은 미약한 추위를 등에 품곤 오싹한 낭만으로 바꾼다.
바로 그것이 계절, 특히 가을의 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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