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After the rain

사려울 2014. 1. 31. 17:08


연휴 첫 날.

아침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후로 접어들 무렵 그치더니 이내 이런 이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비나 눈이 내릴땐 렌즈에 물이 고일새라 소심하게 사진을 찍게 되거나 아예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친 바로 직후엔 사람들이 눈치 챌 겨를 없이 잠깐 사이에 꽃이나 가지 끝에 망울을 만들어 내리쬐는 희미한 빛을 굴절 시킨다.

카메라가 없어 급한 대로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비교적 만족스런 사진이 나오고 색감도 괜찮다.



가지에 초점이 잡히지 않아 정적 하이라이트 부분은 초점이 흐려져 버렸다.

하지만 보는 순간은 그런 걱정은 전혀 들지 않을만큼, 아니 도리어 이런 순간을 못 보고 지나쳐 왔던 순간들이 아쉽기만 하다.



솔잎 끝에 이런 물방울이 맺히다 이내 사라진다는 걸 일상에 널려 있는 흔하디 흔한 상식으로 치부해 버렸지만 그 작던 세계를 크게 바라보는 순간 상식이 아닌 꼭꼭 숨겨져왔던 비밀 같았다.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그 빛의 굴절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면 다음 비 내리는 나날들을 기약할 것 같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려 봤더니 처음엔 지저분하게 보였는데 거듭 볼 수록 그 당시 광경이 오버랩 되는지 이런 사진 조차 화사하고 눈부시게 보인다.



차라리 이렇게 의도적으로 초점을 맞추면 영 어색해지는 순간의 시간.



앙상한 가지 끝에 맺힌 빗방울이 다가올 봄에 눈을 비집고 이런 앙증맞은 싹을 틔울 예견을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어린 시절의 그 흔하디 흔한 장난 중 하나가 비 내린 후 지나던 친구가 나무 밑을 지날 때 그 나무를 흔들어 머금고 있던 빗방울 세례를 퍼붓는 건데 마치 가지 끝에 맺힌 빗방울이 어릴 적의 아름다운 회상을 망각의 우물에서 건져내 주는 듯 하다.

연휴의 여유로움이 빗방울을 만나 이런 아름다운 일상의 시간으로 만들어 줄지 누가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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