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일상_20240901

사려울 2024. 9. 5. 00:05

주말엔 모처럼 학교 가는 날이라 하루 동안 피로에 찌들어 있다 늦잠을 잔 뒤 결혼식과 학교를 제끼곤 집안 일만 집중했다.

사람들이 미어 터지기 전에 하나로마트로 가서 식료품 찔끔 사고, 뜨거운 대낮엔 집구석에 틀어 박혀 숨만 쉬다 시원해질 무렵 반석산으로 가서 뒤늦게 재미 들인 맨발 걷기를 즐겼다.

올여름만큼 더위가 강력하고 지루한 여름이 있었던가!

1994년엔 7월 1일부터 보름 동안 섭씨 39도를 계속 넘겼었고, 내 생애 마지막으로 땀띠란 걸 앓아 봤었지만 지금만큼 지루한 건 아니었다.

또한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탓에 인내심도 줄었던 만큼 정량적인 판단보다 정성적인 잣대를 더 체감하게 된 바, 올여름은 그냥 길고 지루하고 강력했다.

그래서 9월이면 가을 분위기가 나야 되는데 여전히 낮더위가 무시무시한 걸 보면 아직 여름은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

12년을 사용했던 에어컨이 맛탱이가 가는 바람에 참다 참다 구입, 8월 1일부터 잠시도 숨 돌릴 틈 없이 달렸고, 9월 1일에 드뎌 에어컨한테 휴식을 줬지만 대낮 더위는 부는 바람조차 훈풍이었다.

그래도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 아래만 가도 한층 시원한 온도차를 느끼긴 했다.

그래서 반석산에 올라 맨발로 허벌나게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진흙 하우스에서 마무리한 뒤 수돗가에서 발을 씻었다.

사정없이 흐르던 땀이 찬물에 발을 씻으며 동시에 떨어져 나가는 기분, 역시 여름에 움츠리기보단 이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면 묘하게 개운함이 남았다.

벤치에 앉아 눅눅해진 발과 셔츠를 말리는 사이 그때부터 시야는 가을로 급히 변했다.

아직 여름색이 짙은 바탕 위에 이따금 가을색이 불쑥 튀어나와 돋보였다.

벤치 등 뒤에 밤송이는 어느새 녹색을 부풀려 영글어갔다.

이렇게 가을은 불쑥 곁으로 다가와 있었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여름에 너무 신경 쓴 게 아니었나.

나무 밑 자욱한 낙엽을 보면 비록 대낮 더위는 여름이라고 해도 점점 습도가 물러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능소화의 붉은 빛.

가을이 곁에 왔음을 느끼는 순간 벌판과 하늘에 숨어 있던 가을도 눈에 들어찼다.

높이 솟은 밤송이들도 조만간 가을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 열심히 꿈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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