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형님이자 어르신 만나러 가는 길에 어설프지만 엷은 바람 옷가지 입고 찾아온 봄의 향기를 만났다.
땅밑 동토는 깊이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봄이 데리고 온 대낮은 부쩍 길어진 자취를 남겼는데 거기에 맞춰 어딘가 숨어버렸던 길 위 작은 생명은 한둘 모습 드러내며 극적으로 봄을 마중 나왔다.
아직은 황량한 겨울 잔해 속에서 조심스레 봄을 맞이할 또 다른 생명은 그 누굴까?
휴일에 정갈한 공원의 정취는 그 어느 곳보다 친숙해져 버렸다.
걸음 수를 채우려 한참을 걷다 여울공원까지 넘어왔는데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거리감도 무뎌졌다.
여울공원의 정중앙이자 화목원 한가운데 그리스식 조형물과 더불어 비정형적이면서도 나름 원칙이 있는 계단의 기하학적 배치가 정형적인 길을 연장시켰다.
여울공원에 온 김에 꼭 찾아봬야 할 왕형님.
400여 년 느티나무를 4방향에서 둘러봤는데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은 달리했고, 자태는 변함없었다.
석우교를 넘어 반석산으로 향하던 중 서녘으로 기운 해가 빛내림 커튼을 늘어뜨렸다.
2신도시에서 다시 1신도시로 넘어와 부쩍 길어진 낮을 실감 했다.
겨우내 그 짧던 낮이 어느새인가 부쩍 길어져 봄을 기다렸다.
명절 연휴의 묘한 질감이 용해된 텅 빈 호수공원은 연휴 말미로 치닫으면 사람들로 부쩍 붐빌 터.
오랜만에 반석산 습지공원에 와서 어느 곳보다 겨울의 공허한 정취를 제대로 즐겼다.
도로를 피해 산과 들로 닦여진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찾지 않는 자리도 찾아 나섰다.
습지공원 쉼터 지붕에 두터운 낙엽이 그 사실을 말해줬다.
혈관과 흡사한 형상의 겨울나무.
동네 흔하디 흔한 바위로 여기다 뒤늦게 발굴된 석불상은 제작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말에서 조선초 만들어진 듯 하단다.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은 원래 동탄면 오산리에 있었다. 언뜻 무덤 앞에 세워지는 석인상처럼 보이지만, 석인상의 관모와 달리 머리카락이 물결무늬처럼 희미하게 새겨진 불룩 솟은 머리를 하고 있고, 목에는 부처를 상징하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가 표현되어 있어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갓을 쓰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야외에 노출시켜 봉안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나 미소 띤 호방한 얼굴의 흔적이 남아있다. 양 손가락을 깍지 낀 듯이 세밀하게 표현한 것은 이 불상의 독특한 특징이다. 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아마도 연꽃 봉오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와 같은 석인상 형식은 인근의 용인 가창리와 마북리의 비해 석불입상, 넓게는 화순 운주사의 석불상에서도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불상들에 비해 오산리 석불입상은 옷자락의 양감이 비교적 자연스러우면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두 손도 옷자락으로 덮은 것이 아니라, 깍지 낀 모습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더 오래된 불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고려말 공민왕릉의 석인상이나 벽화, 혹은 서울 광통교 기초석에 보이는 무덤 박석에 새겨진 인물상의 표현과 유사한 부분도 보이므로 아마도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불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야외음악당을 지나 냥마을에 우연히 들렀다 작은 꼬물이를 만났다.
그러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녀석을 둘레길에서 만났다.
오늘 하루 동안 인연이 닿은 녀석으로 찜~!
하루 인연이 맞는지 둘레길 따라 냥마을에서 노작마을로 넘어와 다시 만났다.
땅을 뚫고 나오는 생명뿐만 아니라 길 생명들도 봄이 반가운 건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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