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공수해 온 어묵은 일전에 지인의 선물로 가족들과 함께 탱글탱글한 식감과 감칠맛 나는 풍미로 각인된 기억이 있다.
묵직한 백팩을 내려두고, 편한 차림으로 변신하는 사이 풀지도 않은 어묵 박스 위에 흑미식빵이 바싹하게 굽혀져 있는데 난 어묵 살 때 받은 사은품이 전혀 없었건만.
호기심의 제왕, 일단 모든 물품 통관은 녀석의 몫이다.
가장 푸짐한 세트라 박스 자체도 무척 커 녀석이 위에 올라 신중하게 검수한다.
이렇게 웃으며 여독을 푸는 사이 낮은 저물고 어둑어둑 밤이 찾아왔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평소 얌전하고 다소곳한 개냥이 얼굴에 속으면 안된다.
수컷 냥이지만 다소곳하면서 재롱도 부리고, 그러면서 재주도 부리는 순둥이 저리 가라다.
그러다 한 번 삘 받아서 놀이에 심취하면 묘한 소리를 내며, 집안을 종횡무진 쫓아다니고, 심지어 탁자에 자리 잡으면 모든 움직이는 것들을 간섭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탁자에 허락받지 않은 잡것들이 움직이면 다른 얼굴과 성격이 나온다.
그렇다고 음식에 집착하는 건 아니고, 탁자 위를 움직이는 만만한 '싹'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집요하게 팔을 뻗어 만져 보고, 완전 만만한 인증을 받는 순간 발톱과 이빨도 한 번씩 날려 준다.
만만한 물건이 포착되면 우선 뚫어져라 관찰 모드.
가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냥이 특유의 본능도 나오지만 이내 다시 돌아온다.
어마 무시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품을 한껏 하는데 여기에 물린 키친타월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참을 응시하며 일갈을 날릴 기회만 잡던 중 가끔 하품도 하고 입맛도 쩝쩝 다신다.
집중해야 될 상황이면 녀석은 거의 몰입 수준이다.
그러다 기회 포착되면 숨겨둔 손톱을 소환하여 손을 날린다.
'딱 걸렸다옹! 어디 움직이냥!'
한참 이렇게 놀다 키친타월이 꽁무니를 감추자 녀석도 그제서야 경계를 멈추고 돌아선다.
모든 놀이가 끝나고 어둑한 밤이 찾아올 때까지 늘어지게 잠자던 모습을 포착하여 그 익살스러운 모습을 찍던 중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 눈이 마주치자 자세를 고쳐 눕는다.
마치 꿈속에서 재미있는 걸 보곤 입을 막고 웃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쇼파에서 같이 자자고 보채는 경우가 있어 함께 잠을 자면서 내 팔에 고개를 파묻고 골골거리며 자는데 그러다가도 벌떡 일어나 구레나룻이나 팔을 그루밍할 때가 있지만 워낙 혓바닥이 까칠해서 나도 모르게 깬다.
또한 벌떡 일어나 한참 내려다볼 때도 있고, 내 몸을 매트리스처럼 올라타 다시 자기도 한다.
그게 기분 나쁘지 않고, 도리어 동질감과 애정이 느껴지는데 이러다 나도 냥이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미야옹~
이런 자세를 보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마치 수다를 떠는 것만 같다.
그러다 잠이 깨어 눈이 마주치면 머쓱했는지 고개를 못 들고, 눈도 못 마주친다.
나쁜 짓하다 들킨 표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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