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냥이_20200501

사려울 2021. 12. 27. 21:54

가족이 무척 그리웠나 보다.

접촉의 희열을 알며 어떻게든 직접 닿아서 관심도 얻고 사랑도 축척하는 영특하면서 애교 넘치는 냥이, 수컷인데 이리도 애교가 많다니, 의외다.

식사 자리에 앉는다는 걸 미리 간파하고 먼저 자리를 잡았다.

집사 나부랭이가 어떻게든 접촉할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졌다.

잠깐 무시하면 서 있는 발등에 다리나 몸을 걸쳐서 집사가 개무시하지 않게 낚는 법도 배웠다.

이러니 정이 안 들 수 있겠나!

손녀가 미리 챙겨준 할머니 꽃선물.

매년 빼놓지 않고 실용적인 화분을 꼭 챙겨 준다.

코로나 19로 학교를 가지 않아 초조할 텐데 제 할 일은 꼭 하는 애교쟁이며, 야무진 아이다.

늘 어리다고 여겼던 녀석이 벌써 고3?!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꽃 너머에 너구리 같은 녀석이 앉아 있다.

잠들기 전 녀석과 함께 앉아 있다 처음 와서 가족이 되던 때를 떠올려본다.

호박색 눈빛에 너구리처럼 흐릿한 태비, 몸에 비해 얼굴은 조약돌처럼 작고, 성격은 호쾌하면서 애교가 많다.

태어나자마자 사람이 생이별시켜 놓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이기심에서 발로한 사랑이 그렇듯 오래 지속되지 못한 채 자잘한 잔병과 경제적 궁핍, 폭력적 성향을 버티지 못하고 녀석은 버려져 사회성도, 어미도 잊어 생이별을 또 한 번 겪었다.

이 녀석을 키운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그 자리에 남겨 뒀을 거라는데...

냥이는 주인이 버린 걸 모르고, 언젠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착각한단다.

그래서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며 주인을 기다리는데 맘 착한 이웃들이 녀석을 챙기다 보호소로 연락을 취해 제2의 삶을 도와줬고, 결국 여주 보호소에서 나와 인연이 닿았다.

원래 이 녀석이 아닌 다른 녀석을 데리러 갔었으나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고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끼어들어 녀석을 낚아채 버렸고, 하는 수 없이 이 녀석을 만나게 되었는데 불쌍한 모습에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녀석을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엔 보호소 철장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고, 케이지 안에서 몸부림을 쳤으며, 오는 길엔 익숙하지 않은 장거리 여행에 멀미로 인한 구토와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의 거부와 혐오도 있었지만 이내 가련한 생명에, 게다가 특유의 넋살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재촉하는 병원 진료를 받아 그 결과 녀석을 괴롭히던 온갖 해충을 박멸하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은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히 가족이 되었다.

외상은 없는데 고관절과 왼쪽 다리 골절이 발견된 걸 보면 사고라기보다 폭행의 증거 같은데 지금은 아물었지만 고관절의 경우 완전 치유되기 전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통증도 유발될 수 있단다.

이렇게 힘없고 해악을 끼치지 않는 생명에게 누가 무슨 짓을 했을까?

이젠 시간의 약으로 다른 모든 가족들도 예전에 키우던 댕이 콜라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렸고, 남은 건 오래 함께 희로애락을 누리는 일만 남았다.

생명이기에, 쉽지 않은 인연이었기에 더 가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가족들과 비교하거나 지나친 감정이입 없이 딱 하나만, 한결같은 심정으로 숟가락이 하나 늘어난 것뿐, 가족은 늘 산처럼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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