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언제나 흐림, 조령산 고갯길_20170613

사려울 2017. 8. 6. 02:14


아주 가끔 혼자서 여행을 하긴 했어도 나만의 몰취향 인가 싶어 지은 죄 없이도 친분이 두텁지 않고선 떳떳하게 밝히거나 권장 하지는 않았다.

허나 근래 들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혼행.

혼자 여행이라는 줄임말로 가끔 여행 중에 혼행을 즐기는 분을 뵙긴 했었지만 주위 사람들 대부분은 혼행에 대해 긍정이나 부정을 떠나 공감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좀 있어 굳이 나서서 이해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기록을 위한 사진에 관심이 생기면서 기회가 생긴다면 가끔 혼행을 나섰는데 언젠가부터 이게 너무 편해졌다.

나를 위한, 나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나의 내면과 진지한 관계가 형성된 계기랄까?

익숙해지기까지 내가 사는 동탄을 자전거나 도보로 여행하면서 점점 거리를 넓혀 오산이나 용인 정도 간을 키워 갔고 흔히 사람들이 혼행에 대한 첫 고민 중 하나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경계를 넘어 도의 경계를 넘나 들게 되었다.

하루의 짧은 휴일이 주어진 이 날도 이동 시간을 줄이면서 지나쳐 왔던 괴산 조령산이었다.

때마침 넷서핑 중 조령산 휴양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과 낯선 두려움을 물리치고 휴양림 통나무집을 예약, 대략적인 출발 계획을 세운 일을 저질렀다.



전날 길을 잘못 접어 들어 제천까지 가버린 결과 밤10시에 겨우 도착해서 부랴부랴 체크인 후 배정된 통나무 집으로 들어가 배낭을 풀었다.

9시 경 제천에서 빠져 다시 고속도로를 타기 전, 문의 전화를 드렸고 10시까지 해야 된다는 말씀에 1시간 정도면 널널하겠다 싶었건만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괴산 구간 도로 공사로 그 늦은 시간에도 차량이 특정 구간에선 꼼짝달싹 할 수 없었고 연풍이 아닌 괴산나들목에서 빠져 수안보를 거쳐 가면 되겠거니 했는데 칠흑 같은 밤의 초행길이다 보니 수안보가 아닌 괴산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다시 차를 돌려 수안보를 거쳐 휴양림에는 간신히 10시에 도착해서 주변이 암흑천지라 둘러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어 그냥 음악을 듣다가 자고 이튿날 일찍 기상했다.



기상 했을 당시 주위가 어둑해서 잔뜩 흐리고 비가 오구나 싶었는데 체크아웃을 위해 밖을 나가자 햇볕은 쨍쨍 자갈들은 반짝이다.

숲이 워낙 우거지고 나무가 빼곡하다 보니 통나무집에서는 흐릴거란 착각을 했을 뿐.

간소한 차림으로 문경새재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에 내가 하루 묵었던 통나무집이 보인다.



휴양림 초입에 이렇게 걷기 좋도록 포장된 길도 있지만 통나무집을 지나는 비포장의 산길도 있어 후자를 선택,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이렇게 두 길이 만난다.

만나지 않는 숲 속길을 따라 계속 진행해 나갈 수도 있지만 여기서부턴 속전속결로 목적지로 잡은 새재까지 가는 걸루~



문경 방면에서 올라오는 길은 사람들이 많은데 여긴 같은 장소를 공유하나 싶을 정도로 지나친 사람들이 열손가락 꼽을 정도 였다.

그만큼 여유를 갖고 걷기엔 안성맞춤이라 가방 사이드 포켓에 끼워논 스피커 볼륨을 뿌듯하게 올렸고 숲속에서 공명되는 소리가 제법 현장감이 곁들여 들린다.



잠깐만 걷게 되면 마주치는 문경새재는 산중의 넓직한 공원처럼 만들어 놓았다.

걸어 오는 내내 우거진 나무숲이 햇살을 차단시켜 줘서 그리 덥다거나 햇살이 따갑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건만 이날 햇살은 장난 아니게 강했다.







도착해서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우회길로 돌아서 문경으로 넘어 왔는데 중간중간 지루하지 마라는 뜻에서 다람쥐들이 출현, 적당히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신기한 동물 쳐다 보듯이 멀뚱 거리며 구경한다.

구경 당하는 입장도 나쁘지 않더구만.






문경 쪽에선 평일의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괴산과는 달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아마 내가 택했던 괴산 루트에 비해 몇 배는 길고 힘들 거다.

여행객들은 화려한 아웃도어 브랜드로 치장한 등산 차림이었는데 색상과 종류가 참 많기도 하다.

괴산 쪽 공원은 아기자기한 테마라면 문경 쪽은 넓직하게 트여 있는 테마라 역시 같은 문경새재라도 지자체마다 표현 방식이 틀리구나 싶다.

난 갠적으로 문경 방면의 공원보단 훠얼씬 여유 있고 조용하고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괴산 쪽이 좋아 부러~



갈증을 축이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며 포장되지 않은 주위를 세세히 훑어 보며 걸어 왔다.




넓게 트여 있는 문경 쪽과는 달리 괴산 쪽은 이렇게 산성과 관문 느낌이 그대로 드러난다.



백두대간!

2015년 초봄에 이화령 고갯길도 이런 백두대간 브랜드의 기념비가 버티고 있었더랬지?

(봄과 함께 청풍호로 간다_20150320)

근데 분명 찍어 놓은 것 같던 공원 전경 사진은 왜 없는 거지?



괴산 방면 문경새재엔 옛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응시하러 다니던 옛길이 복원되어 있는데 오를 때와 달리 내려갈 때엔 이 옛길, 일명 조령 옛 과거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산중의 넓직한 오솔길에 가까운 이 옛길은 가뜩이나 조용한 휴양림인데 더 조용해서 이 길을 걷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질 않았다.

어떤 의미가 부여 되어서 일까?

왠지 중요한 역사적인 사연들이 오랜 시간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 지나는 이들에게 봄의 새싹처럼 발아하여 사연을 들려 줄 것만 같은 이 옛길은 길 초입에 뱀과 벌을 조심하라는 문구에 잔뜩 쫀 나에게 걸을 수록 긴장을 이완시킬 만큼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걷던 중 지도에서 본 오를 때 이용했던 도보길이 보인다.






앞만 보고 쉬엄쉬엄 걸었을 때 길가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보인다.





이 옛길은 사방댐을 지나 물레방아가 맞이하는 임산물 판매장에서 한길과 합류한다.

그리 길지 않은 옛길을 걸어 오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범벅된 길에 익숙해져 있던 나였기에 부엽토가 깔린 이 폭신한 길이 오랜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가공 되어져 늘 같은 모습의 길만 한동안 봐 왔던 내게 일체 가공 없이 관심과 시간으로만 닦아 놓은 길은 잠에서 깰줄 모르던 정겨움에 기지개를 피게 했다.



시종일관 날이 흐린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조령산 휴양림은 숲이 깊고 빼곡했고 더불어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꽤나 많은 낙엽들을 쓸어 올리는 소리도 인상적이었다.

휴양림을 거쳐 문경새재를 다녀온 뒤 문경 온천에 들러 온천욕을 즐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또 다른 하나의 모험 뒤 성취감에 도치된 뿌듯함으로 경쾌했고 여름이 세상을 화로로 만들기 전 다시 올 기약을 했다.

근데 문경 방면의 새재 초입에 스타벅스 커피가 들어선 걸 보곤 반갑두만.

많은 사람들이 들린다는 반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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