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세교신도시 가을 갈대밭

사려울 2014. 3. 22. 17:03

세교신도시의 가을.

맥북에서 깊은 겨울 잠 후에 뒤늦게 깨어나 기지개를 펴며 지금 찾아 온 봄을 반기려 한다.



작년에 담아 놓은 세교신도시의 가을 풍경들 중 세교 남부지역에 비교적 큼지막하면서 잘 가꿔 놓은 고인돌공원 개봉박두~!!!

오산금암리 지석묘군이라고 지도에 뜨는데 아마도 청동기시대 고인돌 9기가 발견된 유적지라 고인돌공원으로 명명한 듯 싶다.

자그마한 산과 어우러진 너른 들판을 보아하니 세교에서 가장 큰 근린공원이자 대부분 신도시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중앙공원 격이다.

주위에 아파트와 주택지가 정갈히 꾸며진 걸 보니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찾는 휴식공간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은 자연 녹지를 거의 가공하지 않은 그냥 산!

곳곳에 가을 옷으로 갈아 입어 운치 작렬하신다.



정상 즈음에 있는 정자와 가을 정취의 대명사인 떨어진 나뭇잎들과 그 파수꾼 격인 싸리 빗자루.

이 정도라면 지나는 길에 잠시 쉬어 땀을 발산시킬 만한 여유가 떠오르지 않을까?



떨어진 낙엽이 자욱한 오솔길에 강렬한 햇빛을 충분히 막을 만큼 나무가 우거져 있다.

나무 터널을 지나 뻗어 있는 길로 곧장 걷게 되면 생태 터널 너머 세교 서편의 외곽에 자리를 트고 있는 여계산이 나온다.

허나 거기까지는 가지 않고 생태 터널과 인접한 문시초등학교에서 유턴~



오산금암리 지석묘군이라는 청동기시대 유적과 더불어 그 시대를 재현해 놓은 선사시대식 움막집.

실제 사람들이 이곳을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덕분에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한 꼬마 손님들이 제 집 마냥 신나게 들락날락 거린다.

나무로 견고한 틀을 만들어 놓고 볏집을 올려 놓은 덕에 왠만한 겨울에도 왠쥐~ 아늑하고 포근할 것만 같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너른 공원 가운데 이런 조형물은 꽤나 특색있고 흥미롭다.



드뎌 오늘의 주인공인 갈대가 좌우지장지간에 많다.

공원에서 동쪽 편에 해당되는, 도로 인접한 방면에 지천으로 갈대가 널려 있는데 그 너른 평지 곳곳에 자그마한 습지를 둘러싸고 산책로와 갈대가 적절하게 널려 있으니 그 운치는 그야말로 가을에 먹는 향긋한 도토리묵 무침을 비유해도 손색이 없다.

때마침 세찬 바람의 손길이 갈대에 손을 뻗어 스치듯 지나가는데 그 갈대의 향연은 내리 쏟는 햇빛을 산산히 부쑤고 쪼개어 지나는 이들을 몽환의 유혹에 발목을 마취시켜 버렸다.

삼삼오오 목에, 손에 카메라를 들고 그네들의 시간을 담으려는 모습, 가히 계절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갈대밭 사이사이로 난 산책로엔 갈대가 삼켜 버린 사람들이 많다.

갈대밭이 삼켰다 밷어낸 사람들은 어떤 마력에 취한 듯 기대와 설렘과 행복의 표정을 주체할 수 없다.



갈대의 파도는 아파트마저 집어 삼킬 기세.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갈대의 파도는 매섭고 거대하기만 하다.

갈대 밑에서 응원하는 가을 색깔들도 만만찮다.



잠시 갈대밭을 벗어나 움막처럼 청동기시대를 재현한 듯한 고인돌정자.

양옆에 갈대의 춤을 더불어 지나는 이들을 쳐다보게 유혹한다.



동탄의 오산천변처럼 인공개울이 있어서 눈부신 갈대에 목마름을 해소하기에 충분하다.

산책로와 갈대밭의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어색한 만남 사이에 작은 여울이 비집고 들어 서며 비록 작은 포인트지만 갈증에 한 모금 물처럼 건조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산책로는 갈대밭을, 갈대는 산책을 동경하는 형세를 작은 여울이 연출함으로써 지나는 바람결이 응원하듯 개울처럼 사이사이로 흘러가며 갈대며 형형색색 곱게 단장한 입사귀들의 잠을 흔들어 깨운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한 너른 들판에 갈대의 흔들림을 상상해 보라.

계급으로 고착화된 중세 봉건 사회를 흔드는 혁명 같지 않은가?

미동도 하지 않고 지루한 들판의 고루함을 벗어나 갈대로 모이는 사람들이 마치 혁명에 동조하는 지지세력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나도 그 군중에 동참하며 잠깐 스치듯 지나는 시간을 기억으로 밀어 넣는데 몰입하고 있었다.







습지를 중심으로 군락을 형성한 갈대 무리들과 곳곳을 연결하려는 길들이 어우러져 숨가쁘게 달리듯 재촉하는 내 걸음을 느끼며 사진 또한 그런 내 집착과 속도감이 조각조각 끼워져 있었다.

그런 감흥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꿈틀댄다는 사실은 신기할 만큼 강렬하고 그 계절의 애증은 매해마다 약속된 듯 다가왔다 사라지는 가을을 알면서도 조바심 이상의 깊은 기다림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의 감각이다.



사실 갈대 한 그루를 보게 된다면 초라함에 실망하게 되지만 그 군락은 초라했던 편견에 대한 비소를 자책하게 된다.

그렇듯 가을은 봄과 달리 하나의 하찮은 미물들이 모일 때 하나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깨쳐 준다.

가을과 갈대와 퇴색해져 버린 보잘 것 없는 만물들 한데 어우러져 그 못났던 시절은 화려한 재기의 반전이 바로 이 시대 이 계절의 매력 아니겠는가!

반응형

'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4일 여명  (0) 2014.04.07
12년 지기, 조비산  (0) 2014.04.05
창 너머 겨울  (0) 2014.03.20
육교  (0) 2014.03.04
떠오르는 해의 윤곽  (0) 201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