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과거 영화를 누리던 탄광마을이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잔해만 남아 언젠가 다시 그 영광을 꿈꾸고 있는 모운동이 새로운 거듭나기로 이쁘게 단장했다.
사실 영월은 라디오스타란 영화로 알기 이전, 어릴적 사회 시간에 인구가 감소한 대표적인 도시로만 알고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과부도에 영월시라는 타이틀로 기억하는데 당시 편찬 기준이 70년대였던 걸 보면 산업화 시대 상당히 번창한 도시였던 건 분명하고 가끔 제천에서 정선으로 넘어갈때 38번 국도가 부분 개통 되었던 당시는 연당에서 옆길로 빠져서 가는 길목 정도?
그런 영월을 드뎌 9월에 가게 되었다.
역시나 회사 복지프로그램에 의거, 적은 부담에 멋진 전망을 배경에 둔 청풍리조트로 숙소를 마련했다.
아직은 가을내음이 이른 아침의 공기를 제외하곤 별로 눈에 띄이진 않지만 미세한 가을 내음 하나만이라도 나머지 아홉수는 시간 문제인데다 그 좋은 예감은 갈증에 마시는 한 모금의 생수 못지 않다.
창 너머 보이는 국민연금공단 인재원의 모습도 제법 또렷하게 보이지만 봄에 봤던 가장 심각하고 우울한 가뭄의 흔적이 조금 해갈된 듯 보여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과거 방문했을 당시에 비하면 사정이 조금 나아졌으니 덩달아 청풍호의 매력 또한 진가를 드러낼 태세다.(겨울 청풍호의 매력_20150214, 봄과 함께 청풍호로 간다_20150320)
청풍랜드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보니 정지해 있던 기구들의 몸풀기 중인가 보다.
봄에 왔을 당시까지만 해도 가로등만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청풍리조트 힐하우스도 오픈 중이라 왕래 중인 이용객들이 솔솔하게 보였다.
내가 항상 들렀던 청풍리조트는 레이크호텔인 셈이고 힐하우스는 콘도미니엄이라 용도가 틀리지만 멋진 조망을 가진 부분에 있어선 어느 하나 뒤쳐짐 없이 훌륭한 편이라 아쉬움은 전혀 없다.
숙소를 빠져 나와 영월 모운동으로 가는 길에 이런 가파르지만 멋진 산들은 끊임 없이 만날 수 있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강원도라 역시나 도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지만 나는 애시당초 그걸 바랬는지도 모른다.
영월을 통과하여 김삿갓면으로 진입하는 길은 대대적으로 도로 포장 중인데 조만간 편리해진 접근성을 누릴 수 있겠지만 여기저기 흙먼지 날리며 맨살을 드러낸 땅에 무분별한 자행은 아쉽기만 하다.
31번국도를 벗어나 잠시 애매한 포장길을 지나면 이렇게 모운동에 진입하는 특이한 입간판이 나온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탄광마을의 잔해는 전혀 없고 마치 자그마한 테마파크나 예술인 집성촌 같단 생각도 든다.
이렇게 모운동 진입로는 여전히 옛 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길섶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 중 개인이 경작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예전부터 조금씩 자라는 가로수들도 많은데 가끔 어릴적 봤던 산사과나 돌복숭들이 보인다.
길 초입에 낙하수가 그리는 그림.
모운동 마을을 지나 산길로 가면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박한 전망대가 있어 거기에 먼저 들러 마을 사진을 담았다.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에 만 명 이상이 모여 살았던 마을 같지 않게 매우 작고 아담하지만 산세를 업고 충분한 일조량 덕분에 살기 좋을 것만 같다.
모운동?
구름이 모이는 동네답게 바람도, 구름도 지나는 길목 같은 지세이기도 하고 사람들도 모여 살기 그만이다.
전망대 주변에 잔 가지들이 있어서 바로 옆에서 다시 한 컷.
찍고 나서 보니 명불허전, 전망대 사진이 낫구먼.
모운동에서 전망대까지는 산허리를 타고 제법 거리가 떨어진 편이라 준광각렌즈로 찍으면 마을이 이렇게 작게 보이는게 정상이다.
위에 사진은 망원으로 마을 모습만 당긴 거라 가까운 착각이 들게 한다.
파노라마로도 한 번 담아 보고.
다시 모운동으로 돌아와 마을회관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서 마을 구경을 하기로 한다.
차를 세워 놓고 보니 소문 답게 벽엔 익살스러운 그림들로 채워져 있어 마치 아기자기하고 경쾌한 동화 나라나 테마파크에 맘껏 둘러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은 모운동에 머문 내내 가시질 않았다.
심지어 널부러져 있는 낡은 걸상과 의자만 봐도 어떤 집요한 의미를 부여한 듯한 착각을 들게 만든다.
차를 세워 놓은 또 다른 옆에 꽤 키가 큰 해바라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마침 등빨 좋은 벌 한마리가 날아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조른다.
벌은 꽃을 먹고 사람은 꽃잎이 떨어진 꽃씨를 먹고.
작은 전봇대 아래에 미세하게 사각 프레임이 보이는게 좀전 모운동 마을을 찍었던 전망대로 낡은 나무 프레임에 나무 난관을 만들어 올라설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놓았다.
이 조차 망원으로 가장 개념 없이 바짝 당긴 사진이라 꽤 먼 거리에 있는 거다.
키가 작음에도 사과는 거짓말처럼 많이도 열려 있다.
하나 따 먹으면 왠지 꿀맛일 거 같어.
내리막의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아주 오래된 마을처럼 집과 나무들이 사이 좋게 한데 뒤엉켜 있는데 요즘 집들의 깡그리 갈아버리는 아쉬움을 여기서 위안 받는다.
예전엔 곳곳에 보이는 공터가 집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을 거다.
이 작은 마을에 만 명 이상이 살아갔다면 골목은 사람들이 시끌벅적했을 테고 촘촘한 집들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는 사람들로 붐볐겠지.
작은 개울임에도 물소리는 힘차고 경쾌한데 마당 너머 작은 길과 연결된 수풀과 여울을 보니 잠시 옆의 벤치에 앉아 낮잠을 청하고 싶을 만큼 나른하다.
가을의 터줏대감, 코스모스.
색다른 각도로 밑에서~
마을 광장엔 이렇게 휴대폰 목업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어떤 건 실제 사용한 흔적이 있는 휴대폰이지만 대부분 무늬만 휴대폰인 목업들로 직접 사용해본 역사적인 유물,피처폰을 모운동에서 보니 괜한 반가움이 든다.
몇 가지는 실제 내가 써본 제품들도 있어 마치 하나를 집어 들면 바로 통화가 가능할 태세다.
마을 광장은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넓직한 편인데 이 자리가 중심가 노릇을 톡톡히 했었단다.
영화관이며 당구장, 이발소, 병원 등이 있던, 중심가이자 커뮤니티센터와 같았는데 이 텅빈 자리에 서서 지난 시간을 상상해 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 틈바구니가 없어 부딪히지 않게 몸을 모로 틀어서 걸어야만 될 거 같다.
이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간직한 마을에 오게 되면 늘 궁금한 것 하나가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시대가 외면해 버린 이 마을을 잠시 걷다 보니 억척스럽게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 돌려 놓으려는 마을 사람들이 거대해 보인다.
붉게 익은 산사과는 먹기 보단 그 자리에 두고 오랫 동안 지켜볼 인내처럼 보였다.
나무 속에서 새로운 나무의 태동은 세월의 파고를 힘겹게 이겨낸 후의 새로운 도약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며 부여 잡았을터인데 그 인고의 세월을 버텨내느라 곧게 뻗지 못한 나무는 훗날을 기약하며 다시 인고의 세월을 아무런 말 없이 버텨낼 재간이다.
사람도 버텨내지 못한 세월을 나무는 잘도 견딘 만큼 그 찌들었던 공간을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은 정화시키고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하니 어찌 위대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희망이 들어찬 가슴이 없었다면 붓 끝은 그림을 끝내기도 전에 부러졌겠지?
그래서 더 풋풋하고 아름답다.
세월도, 사람도, 흔적도 대부분 떠나버리고 남은 자취는 어떻게든 흉내내려 해도 낼 수 없는 오롯함이 넘쳐난다.
모운동 마을 초입에 이렇게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입간판이 있다.
부디 멋진 마을로 단장했던 만큼 그 동화처럼 순수함이 간직되길 바랄 뿐.
입간판 맞은 편 버스 정류장은 산골의 변덕스런 날씨를 피하라는 배려가 돋보여 사방으로 통유리가 둘러싸여 있다.
마을 광장 반대편 오르막길로 올라가다 보면 여전히 편안해 보이는 오래된 집과 그 집을 지키고 있는 벽화가 보인다.
창 너머 집 안에서 미세하게 티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걸 보니 낙천적인 휴식을 취하시나 보다.
이게 모운동 마을의 메인 대로 되시겠다.
이 길을 따라 건너편 산 언저리 전망대까지 연결되는데 만약 차선이 있었다면 그 소박함은 반감되었을 터.
방금 지나온 집 마당 한 켠에 이렇게 뎁따시 큰 꽃잎이 망울을 터트렸다.
수세미꽃인가?
이제 세워 놓은 차로 가야 되는데 이런 자그마한 공터에 아기자기한 공원 같은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나무 사이에 나즈막한 벤치가 있어 앉아 봐야만 했기에 거기로 접근했더니...
이 개자식이 집요하게 짖어 댄다.
꼬셔 볼려고 해도 점점 거리를 좁혀오며 짖어 대길래 덜컥 겁이 나서 망원 렌즈를 커내는데 가방 속 물건이 뚝 떨어지자...
맹렬히 짖어 대던 그 백구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고 앞마당에 쭈그리고 있던 이 덩치 큰 개자식은 냉큼 나무 뒤로 숨어버리는 건 뭥미?
개 맞어?
산골 마을의 개 답게 순박하고 온순한가 보다.
그럴 거면 왜 그리 짜증스럽게 짖었는지.
아무런 죄 없이 순둥이처럼 앉아 있던 이 털복숭이가 불쌍하다.
이제 마을을 떠나야 할 시간.
들어왔던 그 길로 나가던 중 황금폭포가 생각나 옆길로 빠졌는데 전형적인 탄광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자 이내 황금폭포 전망대가 나온다.
황금폭포로 명명한 이유는 바로 갱도에 가득차 오른 물길을 인위적으로 절벽에 흘리면서 철분이 가득한 녹슨 물로 인해 누렇게 변해 바린 폭포를 미화시킨 표현이렸다.
자세히 보면 파이프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흐르게 만든 물길과 양동이를 뒤집어 놓은 게 보인다.
이 부분에서 살짝 웃어주고.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으로 물이 붉게 흐르는 그 장관이 장관인지라 거대한 광각으로 담고 싶었지만 렌즈의 한계로 인해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전망대를 내려와 더 깊이 들어가는 길을 따라 시선만 옮겨 보니 피로와 분진에 찌든 광부상이 그 길의 역사를 귀띔해 주는 것만 같다.
그 사라진 시간이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봄을 만나 기지개를 펴듯 기구한 사연들이 터트린 꽃망울처럼 아름답게 승화되길, 그리하여 사람이 북적되는 과거보단 희망이 철철 넘치는 마을이 되길 기원하며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접었다.
가야할 길이 아직은 더 깊은 산중의 상동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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