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볼거리로 가득한 운장산 서봉인 칠성대는 자고로 혼탁해진 시야와 가슴을 틔우기 안성맞춤이다.
무진장이란 말처럼 무주, 진안, 장수 트리오가 한결 같이 빼어난 백두대간에 기대어 절경도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 일대 젖줄이 용솟음치는 곳이기도 하다.
계획했던 대로 무주는 작년에, 진안은 올해 그 땅을 밟으며, 먼 길을 달려온 수고로움을 멋진 보람으로 승화시켜 주는 곳, 그래서 차곡히 쌓은 기대가 꽃망울처럼 만개하여 숲의 향그로움처럼 뿌듯한 내음이 온몸을 전율시킨다.
칼끝 같은 아찔한 능선길이지만 우거진 나무숲이 두려움을 마취시키고,
막연히 뻗는 후회의 유혹을 떨칠 수 있도록 숲의 틈바구니 사이 절경은 목적지까지 동행해준 버팀목이다.
이쯤의 노력으로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왜 그간 결단의 주저함에 사지를 묶었을까?
의지와 노력의 희열은 곧 마른 장작이 뿜는 소중한 한 떨기 온기와 같고,
사막의 신기루를 뚫은 오아시스의 한 모금 물과 같다.
창대한 단맛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는가.
지금은 문이 굳건히 닫힌 휴게소에 들러 주차를 하고 크게 심호흡했다.
주차된 차가 거의 없는 걸로 봐선 평일 한적한 산인가 보다.
칠성대로 오르는 초입은 민가와 살짝 혼동되는데 어느 유튜버가 방송 촬영을 하며 가리키는 곳을 보아하니 이정표가 있다.
그 유튜버는 꽤나 무겁게 보이는 백팩을 메고 칠성대 정상에서 노숙할 기미다.
휴게소 고도가 어느 정도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을 거란 착각, 이내 물거품이 되며 땀은 사정없이 쏟아졌다.
초여름에 아직은 후덥지근한 날씨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자.
외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폭이 좁고 완만한 능선길이 나오는데 워낙 주위에 나무가 우거져 그리 시덥지 않게 여겼건만 길 양 옆은 매우 가파른 벼랑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듬성듬성 자리한 나무 사이로 멀리 시계가 트여 앞만 보고 오른 길에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찾음과 동시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벱이지.
주변엔 이렇게 달콤한 꽃들이 소소하게 맞이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멋진 바위 절벽이 있는데 사진은 그리 멋지게 표현되지 않았다.
지속된 오르막길로 인해 숨은 턱밑까지 차 나아가는 속도가 부쩍 늦춰졌다.
비가 많이 온 여파로 나무로 흙을 가둬 만든 계단이 꽤 많이 유실되었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라 길은 미끄러워 체력 소모는 더 심했다.
0.6km, 0.4km...
한참 온 거 같은데 불과 200m 전진했다니.
주차를 하고 출발했던 휴게소에서 1.8km 왔는데 산길이라 18km를 온 기분이다, 18
정상에 거의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수풀길 사이로 파란 하늘이 해맑게 맞이하여 마지막 힘을 끌어올린다.
어느 순간 시야가 폭발하듯 넓어지며 칠성대 정상이 보였다.
선 자리에서 움직일 엄두를 못 내고 멋진 경관에 잠시 취했다.
사방이 경이롭다.
트여 있는 곳은 대지의 절경이, 막혀 있는 곳은 산세의 절경이 시선을 붙잡고 감탄사를 뱉게 했다.
칠성대에 오른다.
여러 능선이 함께 만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 그 이야기는 소리가 아닌 고요한 파동이다.
우측이 운장대, 좌측이 동봉.
듬성듬성 사람들이 바위 데크계단으로 오르내렸다.
칠성대 정상에서 내려서기 전, 남남서쪽 바위 절벽을 바라보면 무수히 많은 능선들이 희미하게 늘어섰다.
미세먼지가 있던 날이라 시계가 멀리 트인 건 아니지만 초여름의 뽀송뽀송한 대기라 그나마 다행이다.
동쪽은 동생뻘 되는 연석산과 연결된 능선이다.
정상 바로 아래 절벽에 와서 보니 몇 개의 텐트를 쳐도 너끈할 정도로 넓은 편이었다.
지난해 옥정호 국사봉에서는 마이산이 보였지만 좀 더 거리가 가까운 칠성대에서는 미세먼지로 마이산을 볼 수 없었다.
절벽 위에서 칠성대를 바라보면 정상이 온통 하나의 거대 바위 덩어리 아닌가 싶을 정도.
좀 전까지 정상에 올랐던 분은 벌써 내려갔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까마귀떼가 모이기 시작, 하늘을 유영하며 요란하게 짖어댄다.
그래도 무주 적상산에서 급작스레 멧돼지 가족을 만나 위험천만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당시 까마귀떼가 생명의 은인이라 내게 있어 신성한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칠성대 정상에 까마귀 한 쌍이 사이좋게 앉아 있다.
자신들만의 평화를 방해받기 싫다는 의미인지, 또한 칠성대에서의 절경에 취해 시간을 잊는 바람에 한참을 머물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서둘러 하산을 하며, 역시 도전에 대한 성취감과 더불어 여행의 단맛을 뇌리에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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