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원래 의도한 대로 상동을 지나 산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다시 출발했다.
상동은 언제나 마지막 여정의 반환점이었고, 그래서 상동에 도착할 즈음이면 언제나 해는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인데다 높은 산으로 둘러 쌓인 동네라 저녁이 일찍 찾아와 상동을 지나는 이 산길은 '언젠가'라는 막연한 여운만 남겨 뒀었는데 이번엔 영월에서 일찍 출발 했거니와 이른 오후 시간이라 막연한 계획을 실현시킬 확신이 생겼다.
상동도 조용한데 상동 꼴두바위를 얼마 지나지 않자 인가는 전혀 없고 도로 양 옆 산줄기는 그 틈을 더욱 좁혔다.
이내 차선은 사라지고 오르막길은 가팔라져 이제는 산줄기 가운데가 아닌 산 언저리 포장된 길에 접어 들었고, 그와 함께 인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짙은 가을 숲 내음과 적막을 가르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간간히 사진을 찍거나 주위 공기를 폐부로 느끼느라 상당히 더디게 전진 했는데 일일이 차에서 내릴 때 귀찮다는 생각보다 잠깐 동안 설레는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원시적인 세상에서 가을을 홀로 누리는 묘한 짜릿함이 전해지며 동시에 이 모퉁이를 돌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에 대한 기대감도 밀려와 한발 한발 나아갈 때마다 잡념은 사라지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몰입감이 극에 달했다.
높은 산 언저리에서 이따금 희미하게 보이던 상동은 이제 사라지고 주위는 온통 산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 뿐이었다.
아무리 산골 마을에 일찍 만추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런 오묘한 조화가 눈을 현혹시키는 걸까?
뒤를 돌아보자 멀리 산언저리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 보인다.
좀 전 내가 밟아왔던 길인데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던 조화로운 가을이 한발짝 떨어지자 더욱 절묘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다.
깊디깊은 산중을 빌렸던 도로가 끝나고 만항재와 연결되는 도로에 합류하자 2016년 가을에 지나왔던 화방재-만항재 구간이 선명하게 기억을 두드렸다.
화방재를 지나 만항재로 가던 길에서 자그마한 삼거리는 전나무숲이 멋진 곳으로 한적한 도로에 걸맞게 1천미터 넘는 고지 답게 주위 풍경도 빼어났다.
만항재가 가까워질수록 오르막길은 가팔라 졌고, 멀리 만항재-백운산이 연결되는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소도 세찬 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아갔다.
만항재에 도착하기 전, 오르막길에서 마지막 지그재그 급회전 구간에 서서 숨가쁘게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무성한 나뭇가지에 가려져 꼬불꼬불 도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아래 힘겹게 오르는 도로는 어렵잖게 볼 수 있고, 이내 만항재를 내려가는 차량 한 대가 창문을 열고 힐끗 쳐다본다.
아마도 세찬 바람이 부는 고갯길에서 무얼 저리 열심히 볼까 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었는데 그런 만큼 사진 속 고요한 풍경과 달리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거센 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얼마 오르지 않아 만항재 고갯마루에 당도 했고, 하루 중 마지막 여정인 하늘숲길에 근접해서 먼 길을 떠나기 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휴게소에서 커피 한 모금으로 심호흡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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