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뜨거운 자연이 만든 성산 일출봉_20180306

사려울 2019. 5. 16. 02:45

앞서 제주를 방문했을 때 성산 일출봉을 지나 쳤던 건 제주 특유의 변덕스런 날씨로 급작스런 폭우가 동선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던 만큼 묘하게 떨칠 수 없는 미련이 남아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그 미련을 실현해 보자는 의도는 다분했다.

다행히 초봄의 화창한 날씨가 행여 따라올 변수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덕분에 제주 여행 내내 사진은 별로 남기지 못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한껏 누릴 수 있었다.

비가 오더라도 그 만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서리.



생각보다 긴 시간을 들여 드뎌 성산 일출봉에 도착, 평일임에도 여행객은 제법 많은걸 보면 역시 제주다.

제주라고 별 거창한 거 있겠냐는 조롱 섞인 비아냥을 들었을 때 늘 하던 이야기가 거창한 거 보단 다분히 제주만 가진 특징적인 매력이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디펜스 쳤는데 역시 직접 이 땅을 밟아봐야 내 야그가 변명이 아님을 알 거야.

아기자기 하면서 특이한 지형에 섬이지만 너른 평원과 높은 산, 울퉁불퉁 심술 궂게 생긴 바위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걷잡을 수 없는 일기에 배경은 내륙보다 따스하고 자극적인 느낌이 없는 바람.

바다가 사방을 막고 있어 갑갑할 거 같지만 내륙을 밟고 서 있는 마냥 섬이란 걸 잊게 만드는 주위 풍경들.

분명한 건 제주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긴 해도 여전히 여행지로서 어느 곳보다 매력적이다.

또한 편견 중 하나가 비싼 물가와 불친절이란 단어는 주위에서 심심찮게 접하지만 찾아보면 저렴하고 맛깔나고 친절한 곳도 엄청시리 많다.

다만 내륙과 달리 교통편의 제약이 느껴져 조금 더 큰 맘 먹어야 되긴 해도 손 쉽게 올 수 있었다면 제주가 남아 났겠냐?



성산 일출봉으로 출발해서 뒤를 돌아보자 마치 거대한 평원이 심술을 부려 중간중간 뾰족한 촉수를 세우고 있는 것만 같다.

허나 그 모습이 더 매력적인데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구름 무리 사이로 뻗어 내린 빛내림은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제주를 출발하여 앞만 보고 달리다 문득 뒤돌아 봤을 때 온 세상이 그제서야 눈에 서렸고, 안도감과 더불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를 한꺼번에 깨닫게 되었다.

평화롭기만 한 대기와 바다를 기대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더 없이 낙천적일 것만 같다.



계단을 타고 오르는 길에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삭히지 못해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용암이 그대로 굳어 생긴 특이한 바위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인다.

마치 더 큰 땅을 바라고 서 있는 망부석 같다.



그런 면에서 이건 앞서 본 바위보다 더 혈기왕성한 조각품 같다.

미친 듯 날뛰다 천심을 거스린 댓가로 영원한 부동의 저주에 걸려 거듭 눈물을 삼키지만 그 사연을 가여히 여긴 자연이 보듬어 주듯 녹색 옷을 입혀 주고 지나는 바람이 끊임 없이 세상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멋진 자연의 조각품에 왜 이런 청승 맞은 생각을 할까?





일출봉 정상에 오르면 데크가 둘러 쳐져 있는데 분지 같은 지형은 출입할 수 없고 이렇게 관망만 가능하다.

거대하고 기묘한 모습의 지형에 지나는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기분이 묘하다.

내륙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제주의 특징이 이렇게 잘 표현되어 있다니.

늘상 사진으로 봤던 모습이 뇌리에 박혀 그럴 거란 막연한 포장 위에 이렇게 생동감을 덧씌우자 장엄한 성취감까지 충족된다.

이래서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던가!

산의 진중함과 평원의 분방함이 뒤섞여 어떤 누구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성산의 일출봉이며, 그래서 더더욱 먼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이 숭고한 자리에 서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 땅과 그 주위 배경을 넋 놓고 응시하나 보다.



일출봉 반대편인 서북쪽, 내가 올라 왔던 길을 자연스레 되돌아 보게 되는데 그 모습은 일출봉과 달리 자연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문명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의 품을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자연을 지배하려는 집착은 우둔함이려나?



일출봉 반대편인 서남쪽, 거대한 빛내림이 굵직한 장대비처럼 하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이 장면은 참으로 장엄하다.

마치 태고적 온통 용암 천지 였던 제주를 대변하듯 구름을 뚫고 태양 볕이 지상과 만나는 건 태양만 과거의 제주를 기억하는 항변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의 제주는 더 특별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용암이 만들어 놓은 용솟음 치던 중 차가운 대기가 달랜 흔적 아니겠나




내려가는 길은 오를 때와 다른 길인데 천길 낭떠러지처럼 무수한 계단이 놓여져 있다.

밑에 아이폰 사진은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려 놓았는데 그리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이 되지 않았네




지상 가까이 내려 오면 이렇게 상층부와 상반된 풍경으로 희귀하던 신록이 점점 늘어나고 봄 기운을 받아 꿈틀대기 시작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날 평일임에도 의외다 싶을 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있었는데 특히나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제주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승합차 한 대를 가득 메운 동성의 친구들이 참 많았다.

대학이나 학창시절 동창들인 양 그늘 아래에서 추억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유쾌한 대화를 서스름 없이 나누며 그걸 엿듣지 않아도 충분히 들릴 만한 볼륨이었으니까





일출봉과 바다가 맞닿은 곳은 여전히 겨울 바다처럼 을씨년스럽고 황막하기 까지 했다.

초봄이라 일부 성급한 생명들의 울림을 제외하곤 4월부터 봄 기색이 완연하니까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원점으로 돌아오듯 출발점인 주차장에 도착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 본다.

마치 땅 위에 살포시 올려 놓은 현무암 같은 모습의 일출봉은 제주를 알렸던 전통적인 명승지 중 하나로 학창 시절 교과서나 티비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봐왔고 머릿속에 있던 그 모습을 되짚어 처음으로 그 자리에 섰다.

제주 어디를 가나 돈과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듯 여기도 매표소에서 단가를 지불해야 되는 건 예외가 아니지만 밑도 끝도 없이 가공된 제주의 명승지에 비해 조금은 덜 가공 되었고, 무분별적인 관광객들로 인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정해진 동선만 허용시킨 건 넘무나 잘 하는 게다.

해가 다르게 바뀌는, 직설적인 어투로 훼손되어 가는 제주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써 영리로 인한 제주의 가공은 결국 장기적인 관점으로 파고 든다면 그리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또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지극히 제주다운 모습이 지나치게 고유색을 포기하고 감성을 무시한 지나친 개발은 일방적인 괴롭힘으로도 비춰져 씁쓸하다.

천혜의 자연 경관인 제주는 지극히 한국다운 모습과 격리로 인한 원시적인 자연색이 희석되는 현대의 모습에서 모래시계를 연상시켜 조금이라도 제주 다운 모습일 때 더욱 찾고 싶어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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