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늦은 피서의 정리_셋째 날(1)

사려울 2013. 9. 6. 13:07

아, 젝일스. 게으름의 끝은 어디꺼정인지 한 번 손떼기 시작하면 큰 맘 먹지 않곤 도저히 블로깅하기 어렵군하.

근데 퇴근 후 저녁 식사 겸 쇠주 한사발 퍼먹곤 커피 한사발 한답시고 야외 테라스에서 가을 바람 쐬니까 상당히 감상적으로 변하는구먼. 뭔 청승...

그래서 마저 하지 못한 피서의 셋째 날을 손댄다. 가상야릇~




숙소로 잡았던 주문진 더 블루힐.

이거 원래 아파트로 짓다가 용도 변경한 건지 내부나 외부 모두 영락없는 아파트다.

다음 지도에서도 아파트라 표기 되어 있는데 차이점은 마당(?)에 풀장이 있다는 것.

리조트 개념으로 탈바꿈했나 본데 덕분에 집처럼 편안한 구조와 내가 묵었던 방엔 발코니가 있어서 뛰어 내리기 딱 좋다. 퍽!!

일반 아파트로 따지면 25평형과 동일한 구조라 방 3칸에 거실과 화장실 2개.

에어컨이 시원찮아서 앞뒤로 창문을 열었더니 완죤 시원한 바람이 열불나게 불더라.

다음날 일어나 내 방 너머를 보니 바로 옆이 7번국도에 반대편은 탁트인 동해의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내 방 발코니에 가서 오대산을 바라 보고 찍은 사진.

대충 아침 쳐묵쳐묵한 후 전망이 졸라게 유명한 휴휴암으로 고고~



처음 휴휴암에 들어서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절경이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그리 넓지 않음에도 거대하게 펼쳐지는 동해 바다가 마치 절 내부에 속한 마당 같기도 하다.




무신론자이긴 한데 산을 좋아해서 종종 사찰에 들르게 되면 이런 빛깔이 참 이뻐 한 동안 뚫어져라 쳐다 보게 된다.



범종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마침 여자 아이가 종을 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돈 받고 그 가격만큼 횟수를 세고 종을 제대로 칠 수 있게 관리 감독하는 역할인듯..

젠장 맞을 사실이지만 종교는 돈이 없으면 색다른 경험이 차단되어 있다.





마침 갔을 당시 바다와 맞붙은 자리에서 법회가 있더라.

사진으로 찍으려다 너무 땡볕이기도 하고 여기까지 올라 온다고 땀이 삐질삐질 흘러 나와 잠시 쉬는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관광객들 뿐이었당.

한 여름엔 이런 데서 절을 올리면 사람이 홀라당 익어 버릴 것 처럼 강렬한 햇빛을 피할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인다.

종교적인 신념이 그래서 대단한게 그런 요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절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다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연신 소원을 빌더라.



범종 옆에 있는 일종의 약수터.

돌 두꺼비의 덩치가 장난이 아니다.

바다를 바라 보고 마시는 식수는 마치 정갈하게 정돈된 산 중의 찻집과도 같은 삘이고 그 바다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햇볕의 강렬함도 식힐 만큼 시원하고 세차다.

근데 두꺼비 눈이 벌~건 것만 빼면 동글동글 귀엽게 생겨 주머니에 넣고 싶었다.



약수터 옆, 바다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탁자들.

사진으로 담기에도 멋지지만 실제 그 자리에 있다면 아무리 맛 없는 차 한 잔도 코 끝을 마비시킬 만큼 강렬한 내음이 쏟아질 것만 같다.

소나무 한 그루, 가로등 하나, 드문드문 피어 있는 잔디들과 깨알 같은 모래흙.

하나씩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과하거나 허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오케스트라의 협주곡 같다.

결국 이와 비슷한 사진을 선택하여 크롭한 후 아이폰 바탕화면으로 집어 넣으니 그 나름의 멋과 향이 느껴진다.


 

숨가쁘게 찍어댄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광활한 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휴휴암에서의 감회가 재현되는 듯 하다.

때 마침 바다를 가르는 갈매기와 강약의 리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바닷바람.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아주 오랫 동안 휴휴암을 떠 받치고 앉아 스스로 고행의 화두를 되짚는 형상이며 더불어 그 자리를 지켜주고 보듬어 주고 어르고 달래 준다.



휴휴암의 백미가 바로 이 광경이 아닐런지...

아이 하나가 절을 올리는 건지 그 규모를 우러러 보는 건지는 몰라도 한 동안 그 강렬한 햇살도 잊은 채 서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마치 푸른색 도화지며 그 외에 푸르지 않은 빛깔들은 공들여 그려 놓은 담채화 같다.

어쩌면 극단적인 여백과 섬세한 조각의 한 작품에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몸이 굳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랬고 그 주위에서 DSLR을 삼각대에 올려 놓고 미동도 않은 채 뷰파인더에 한 쪽 눈을 들이대고 있는 아마츄어 사진작가 몇 사람들 또한 그랬으니까.



세찬 바람에도 나비가 꽃에 앉은 모습을 본 이상 그걸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후회막심할 것 같아 겨우 흐릿한 초점을 맞춰서 셔터를 눌러댔다.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비가 날아가 버렸는데 이 사진이 가장 이쁘면서도 초점은 가장 안 맞아 분져.

그래도 나비가 출연료 없이 찍혀 줬으니 여기에 올려 주는 대표감이며 엑백수의 성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요 비슷한 사진은 적당히 크롭한 뒤 울 엄니 아이폰 홈화면으로 슬쩍~

울 엄니께선 대만족!



휴휴암 초입 주차장 겸 공터에서 찍은 타이틀.

여기선 바다가 전혀 보이질 않고 자그마한 고갯길을 넘어 가야만 휴휴암과 동해 바다가 한꺼번에 펼쳐 진다.

역시 오길 잘 했스~

절을 보러 왔다가 바다를 가슴에 담아 둔 덕분에 사진을 볼 때마다 그 감회가 마음과 혼을 사방이 트인 바다로 인도해 준다.

휴휴암 출입구 7번 국도 건너편에 나름 평판이 괜찮은 청국장 집이 있어 허기진 점심을 해결하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

다음 목적지를 오대산 전나무 숲길로 할까 설악산 방면으로 할까 의논하다 어차피 집으로 갈 때 미시령 넘어가자는 의견이 압도적이라 설악산을 선택, 접근성이 편하고 미련이 남은 한계령 오색약수로 정했다.


마지막 날인 셋째 날에 찍은 사진도 많고 결정적으로 티스토리도 포스트마다 제한된 용량이 있는 고로 두 차례 나눠서 올려야 되는 머시기거시기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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