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나버린 기억을 뒤틀고 짜맞춰야 되는데 난감하다.
그냥 두자니 그 때의 감흥을 남겨 두고 싶고 제끼자니 찝찝하고 거시기한 이 기분.
분명히 기억 나는 건 나름 휴일 기분을 내자고 산책을 망설이던 때,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얕게 나마 눈발이 흩날렸다.
아직은 내 가슴에 순수한 동심(?)이 남아 있어 날리는 눈발을 보곤 후다닥 준비해서 고고씽~
당시 유별나게 반석산 둘레길 탐방이 잦았던 만큼 이 날도 반석산 둘레길로 올라가 매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곳곳을 아이폰 사진으로 기록해 놓았구먼.
기습적인 눈과 함께 바람과 추위가 함께 온 휴일이라 대낮 둘레길의 인적은 거의 없어 음악을 곁들여 마음껏 활보하면서도 편하게 내가 사는 고장을 감상할 수 있었고 그 여유가 사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반석산자락 노인공원에 도착할 무렵 눈발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는데 바람 세례는 여전하게 가늘어진 눈발을 사정없이 휘날린다.
원래 조용한 공원인데다 이렇게 일기가 험상궂을 땐 특히나 더 썰렁하다.
텅빈 노인공원을 지나 우측 비포장된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둘레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이라 풀이 자란 흔적은 없고 깔려 있는 야자매트도 아직 건재하다.
이전까지는 해가 넘어간 저녁 이후에 다녔기 때문에 둘레길 주위 인가의 불빛만 봤는데 이 날 처음으로 낮에 둘레길을 가게 되었고 높은 곳에서 바라 보노라면 마치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군데군데 골이 지나가는 자리는 아치 형태의 나무 다리를 놓아 수월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직녀를 만날 수 있으려나?
오산천 전망데크가 앙상한 나뭇가지들 틈새로 보인다.
둘레길 산책에 언제나 쉬어가는 오산천 전망데크.
담아간 커피를 나눠 마시며 잠시지만 정신 가출한 사람 마냥 뻥 뚫린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게 꾸며 놓은 장소인데 여기 사진 올릴 적마다 주저리 떠들어 댄 곳이라 말해 뭐한당가!
잠시 땀을 훔치고 다시 갈 길을 가면 반석산 둘레길 중 어느 정도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그재그로 뻗어 있다.
오산천에 다다를 때까지 내려 오면 반석산 유일의 자연 실개울과-언제 들어도 정감 가는 말이여- 아주 귀여운 폭포를 만들어 주는 이 골짜기는 일 년 내내 물 소리는 들린다.
아주 가물때엔 흐르는 물이 안 보이기도 하지만 다리 바로 밑 폭포엔 물소리가 분명 잊혀지지 않게 틀어 준다지.
(동탄 유일의 자연 폭포_카카오스토리, 그 겨울의 따스함, 반석산, 한가위 연휴 둘째 날의 텅빈 산책로, 한가위 연휴 첫 날_20150926, 병신년 설날 연휴의 둘째 날_20160207)
서 있던 자리에서 반대 방향을 바라 보면 폭포가 보이고 그 너머 길이 요따구로 꺾여 진다.
난 이 구도가 맘에 들어.
오산천에 인접한 곳이 고도가 낮아졌다가 폭포를 건너 교차되는 반석산 정상길을 지나면 서서히 고도는 올라간다.
그렇더라도 급격한 오르막은 아니고 도리어 고도가 낮아졌다 높아졌다를 파도처럼 반복하는 덕에 운동도 좀 더 되고 지루함도 없어 난 좋아부러.
어느 정도 평탄한 길을 걷다가 정상 바로 아래 연리목 쉼터가 가까워질 무렵 여기서부턴 오산천 전망데크에서 내려오는 길처럼 경사가 비교적 급해져 힘 좀 써서 올라가야 한다.
오산천 산책길에 비해 같은 거리를 걸어도 여기가 좀 운동이 되는게 이런 고도의 편차가 반석산 높이를 십분 활용한 터라 낮다고 무시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원래 저질 체력인 내 기준에서 말이쥐.
연리목 쉼터까지 쉬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보면 만만하게 볼 산책 코스는 아니다.
이게 거의 정상에 인접한 높이라 아파트 20층을 계단으로 오른다 생각해 보시라.
여기서 항상 되돌아 보는 건 일종에 작은 성취감에 대한 확인이 아닐까?
여기가 바로 연리목 쉼터로 툇마루가 있어 나처럼 앞만 보고 열불나게 올라온 사람들이 쉬기 안성맞춤이다.
사진에 보이는 현수막이 있는 길로 조금만 더 오르면 반석산 정상 되시것다.
연리목 쉼터를 지나면 이렇게 친절하게 길 안내판이 있다.
난 전망데크 방향으로 가야되니까 좀 더 힘 내야겠지.
거의 평탄한 길로 100미터 정도 가면 가장 전망 좋은 낙엽 전망데크가 떡!허니 맞아준다.
저 선수가 하늘 위에서 바라 보면 낙엽 모양이랜다.
이렇게 보면 마치 허공을 향해 멍 때리는 모양 같어.
전망 데크에 오르면 동편으로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가 보인다.
파노라마로 기흥 방면에서 부터 시범단지로 쓱~
14메가바이트에 달하는 사진을 줄이고 줄여 겨우 10메가바이트 바로 아래까지 맞춰 놓았는데 의외로 이 사진들이 용량 압박이 심하구먼.
여기에 왔을때 사람들이 항상 없었던 만큼 성능 좋은 스피커의 볼륨을 어느 정도 올리고 텀블러에 남은 커피를 낭창하게 앉아 마시면서 뻥! 뚫린 시야로 눈을 정화시켜 본다.
그래도 산인만큼 바람결은 차서 노출된 코와 뺨은 벌겋게 익으며 아리까리한 통증이 수반되는데 이미 눈발은 그쳤지만 바람의 예봉은 여전하다.
이런 때 마시는 따스한 커피 한 모금이란~
잠깐 허락된 나만의 세상을 떠나며 다시 그 곳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해야긋지.
전망데크를 벗어나면 이내 이런 까마득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올라온만큼 내려가는 쾌감도 느껴야 겠건만 이거 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게 나 추워서 떨고 있니? 근육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려고 독립 운동 하는 거니?
내리막길에 들어서 잠시 머물렀던 전망데크를 한 번 올려다 보면 이런 모습으로 당당히 얼어 있다.
거듭된 내리막길이 꺾여 등성이 따라 완만한 산책길로 접어 들면 산과 평지 사이를 평탄하게 이어가는데 이 정도만 내려 오더라도 거의 둘레길의 끝자락까지 왔다는 성취감에 취해 든다.
길이 꺾이는 능선에선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내리막길은 노작박물관 공영주차장으로, 능선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로 접어 들면 반석산 정상과 센트럴파크를 연결하는 길과 합류한다.
난 센트럴파크를 바라고 방향을 틀었다네~
정상과 센트럴파크를 연결하는 길로 접어 들면 바로 이런 완만한 오르막길인데 이미 독립을 외치는 다리 근육들로 인해 뒤에서 누가 당기는지 이마저도 금새 심호흡이 가빠진다.
가던 도중 내가 걸어 왔던 완만한 둘레길이 발치 아래 내려다 보인다.
잠깐 내린 눈이 여긴 뽀얗게 깔려 있구먼.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거의 합류할 시점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합류해서 뒤돌아 보면 우측으로 오르는 길 따라 조금만 오르면 반석산 정상이고 좌측 내리막 길이 내가 지나온 둘레길로 합류하는 길이다.
이제 센트럴파크를 향해 정상을 등지고 완만히 내려가 봄세.
둘레길이 생기기 이전, 동탄 신도시가 들어설 때 이미 반석산이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처음부터 만든길이라 비교적 매끈히 다져져 있다.
내려가는 도중 좌측편에 동탄복합문화센터가 보인다.
도로가 평지에서 만날 수 있던 이 친구가 보이는 순간 난 산이 아닌 뒷동산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왠지 근육들이 더 이완되는 삘~
정녕 저 나즈막한 언덕에 올랐을 뿐인데 이렇게 근육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는 건가!
복합문화센터 반대편 우측엔 습지공원으로 내려가는 길로써 공원 가장 안쪽에 있던 정자가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기서 부터 아래는 한동안 자주 찾았던 습지공원이 펼쳐져 있다.
이 갈림길에서 좌측은 내가 가고자 하는 센트럴파크와 복합문화센터로 연결되는 길이고 나머지 우측은 노작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길.
우측은 이렇게 계단을 지양한 나무로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어 소위 무장애길이란다.
휠체어로도 오를 수 있게 둔덕이나 계단이 없어 종종 누님네들이 오면 저녁 외식 후 포만감을 잠시 다스리고자 으스스한 밤에 산책 삼아 오르곤 한다.
반석산에서 센트럴파크 방면으로 내려 와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카페이자 내가 밤에 종종 들러 흐르는 땀도 식히고 한숨도 가라 앉힐 겸 따스한 커피를 곁들인다.
몇 년 전에 엔제리너스 커피가 더럽게 맛없다고 했건만 몇 년만에 여기를 처음 들렀는데 갑자기 커피 맛이 풍성해졌다는 것.
게다가 여긴 반의 확률로 아주 조용하거나 아주 소란스럽다.
그건 어디까지나 뽑기 운.
그래도 이런 쉴 수 있는 카페가 반석산 초입에 있어 위안이자 위로가 된다.
커피 한 잔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는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러 해 질 녘이 되어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걸음을 재촉, 그 사이 또 무슨 바람이 불어 동탄복합문화센터 가장 안 쪽에 있는 야외 공연장으로 올라가 아주 반석산을 괴롭히는 중이시다.
내가 그리 힘들게 올랐던 높디 높은(?) 산이 여기서 보면 아주 초라해 보이는데 그럼 여기서 쉽게 오를 걸, 그러다가도 단순하고 지루한 게 싫어 이 길을 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복합문화센터 앞, 도로가로 빠져 나와 오늘 기행의 시작과 끝을 헤아려 보며 땅거미가 지듯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휴일의 작은 여행의 한 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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