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릉 점심을 해치우고 남산으로 향하는 길엔 연일 미세 먼지가 심각한 날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넋 놓고 있기엔 넘무나 아까운 계절, 봄이지 않은가!
미리 가져온 카메라를 챙긴채 편한 워킹화를 신고 막무가내로 눈 앞에 보이는 남산으로 향했다.
바로 코 앞에 벌떡! 서 있는 남산 타워가 이렇게 뿌옇게 보이고 하늘은 흐린, 미세 먼지 천국임에도 흐드러지게 펼쳐져 있는 벚꽃을 비롯한 봄 소식 전령사들이 남산을 이쁜 옷으로 단장시켜 놓았는데 아니 가는 것도 아까운 일이다.
일 년 중에 찰나의 순간인데 지금 아니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되지 않겠는가 싶어 미세 먼지가 발광을 하던가 말던가, 그까이꺼 삼겹살 파티하면서 먼지 쪽 빼내면 되겠지 싶어 무작정 향했던 날, 2년 만의 남산 산책(남산 벚꽃 터널)인데 지나고 나면 참 잘 했다 싶어.
남산도서관을 지나 산책로에 접어 들자 나처럼 봄 구경 나온 사람들이 솔솔하게 많다.
목멱산방을 지날 땐 생각보다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놀이에 푹 빠져 셔터 소리 대신 웃음 소리가 더 크다.
여그가 목멱산방이라는데 때 마침 빼곡히 차 있던 공간에 그짓말처럼 사람들이 빠져 있는 틈을 타 셔터를 눌러 얼릉 담았다.
간간히 뿌려 놓은 개나리와 진달래에 곳곳에서 박차고 나오는 신록의 태동이 봄의 활기를 미리 상상하게 만든다.
눈부신 벚꽃의 향연 사이로 가끔 쭈삣쭈빗 얼굴을 내미는 타워는 미세 먼지의 뽀샤시 효과로 인해 아늑하게만 보인다.
3호 터널 북단 방향, 신세계백화점과 우리은행 본사가 보인다.
볼 거리에 신이 난 덕에 이만큼 오는 동안 전혀 힘들다거나 시간이 지났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만큼 재미난 놀이에 빠진 아이 같았다.
옹골차게 이어진 벚꽃 터널을 걷는 기분은 겨울이 지나 봄을 맞이하는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발걸음까지 가볍다.
점심 시간이 지나 처음 걸어올 때 비해 구경꾼이 많이 줄어 딱히 방해 받진 않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늘어난 착각에도 빠졌다.
그 여유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지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도 경쾌하게만 보인다.
봄꽃의 대명사 격인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한 자리에 모여 구경 나온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참 정겹다.
가벼운 걸음에 이끌려 길을 따라 가다 문득 산과 맞닿은 필동에서 동녘을 바라 본다.
가던 길이 산등성이로 줄기차게 이어지고 그 너머엔 신라호텔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이렇게 봐선 제법 멀어 보이긴 하나 이미 봄의 전경에 정신을 잃어 나도 모르게 저 길까지 단숨에 내닫았다.
익살스러운 봄 구경 나온 꼬마 손님들.
미세 먼지만 아니라면 이 청명한 하늘에 널린 새털 구름이 더 경쾌하게 보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봄과 벚꽃의 향연에 금새 잊어 버리고 마냥 전진만 하게 되었다.
아이폰6과 티워니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는데 역시나 명확한 색상 표현은 명불허전이다.
같은 자리에서 찍은 두 사진을 보면 녹색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고로 아직은 폰카가 카메라를 완전 대신 할 수 없음이야.
시종일관 벚꽃으로 단장해 놓은 터널을 걷는 기분이 들만큼 나무들의 가지가 길을 적당히 덮고 있다.
이런 깍쟁이 같은 비둘기를 봤나!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듯 내려다 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어김 없이 봄의 옷을 둘러 입은 남산을 모처럼 올라 이 계절을 감상하는, 일 년에 찰나의 순간과도 같은 하루를 담았다.
사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남산이지만 귀찮은 산행(?)으로 줄곧 외면해 오다 용기 내어 첫걸음을 딛다 보니 역시나 출발이 가장 힘들고 갈등이 생겼다.
허나 떠나 보면 이렇게 보람과 용기가 생기는 것을, 덕분에 봄의 향기에 젖은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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