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그 길목엔 가을이 오고

사려울 2013. 9. 3. 00:33


높고 푸르던 하늘이 괜한 설레발은 아니었나 보다.

언젠가 오리라 확신은 있었지만 그 조바심이 평정을 잃게 하더니 때론 의심까지 들었었던 나.

그 의심이 확신의 등을 밀려할 때 아침 저녁으로 그 냄새가 달라졌다.

그건 여름이 흉내낼 수 없는, 살면서 내 오감이 지각할 수 있는 범위의 본능이었고 그 기대에 걸맞게 멋진 모습으로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가을 하늘은 내가 가당찮게 여길 만큼 먼 곳에 있으면서도 팔을 한껏 뻗으면 금새 닿아 살랑거리는 물결이 손등을 간지럽힐 듯 유혹의 손짓을 쉼 없이 보낸다.

그 구름은 물 속에 손을 담궜을 때 자칫 단조로운 느낌에 대한 실망을 거두고자 상상조차 불가능한 부드러운 촉감을 선사해 줄 것만 같다.

그건 손으로 잡을 순 없지만 상상하는 자들의 어떤 부드러움도 능히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관대함마저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이 한적한 길의 주인장이신 꼬마들은 이미 하늘을 입고 가을 맞이 채비에 여념이 없다.

행여 한발을 먼저 내디딘 가을 손님이 완연히 들어 오기 전, 발이 아플까 싶어 퀵보드를 들고 아장아장 길목에 걸어 다니고 있다.

그걸 알았을까? 가을은 우선 단풍의 빨강으로 보답을 하며 그들의 반기는 손을 기꺼이 잡으려 한다.

꼬마 쥔장들은 가뜩이나 바쁜데 더 분주하기 그지 없다.



누가 더 고운 자태의 빨강일까 뽐내려는 것인가?

이제 서두르려는 낙엽과 이미 도착해서 빨갛게 여유를 부리는 또 다른 낙엽, 아직 출발조차 하지 않은 녹색을 돌아 보며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자연의 순리를 빨간 미소로 보여 주는 것 같다.

미리 앞서 나갔다고 해서 비웃지도 등 돌리지도 않고 다만 그 자리에 서서 언제든 기다려 줄 인내의 미소만 여백에 가득할 뿐이다.



수줍은 미소 짓는 꽃 하나가 녹색 향연을 비집고 나와 고개를 내미는 건 아직 여름의 건재함을 살포시 알려 주는 공손함일 것이다.



산책로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벤치에 그리움의 손길이 발산되는 가을의 암시로 들리는 건 내 간절한 필터에 모든 인자들 탓을 하려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촘촘히 놓인 돌을 감싸안던 잔디의 녹색도 이제 그 촉수를 움츠리며 다음에 올 신록의 계절을 준비하려 한다.

추풍이 불면 녹색 커튼만 걷어 낼 뿐 흙을 이불 삼아 덮으며 그 아래로 단숨에 겨울을 나기 위해 깊디깊은 뿌리를 뻗혀 새끼 손가락 걸듯 이 산책로를 아끼던 객들에게 표현하지 않아도 필연의 약속을 할 것이다.

대지를 달구던 후덥지근한 기운이 북에서 급히 내려온 서늘한 바람에 밀리면 나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내가 봐왔던 가을의 징후들을 만나 악수를 나누며 그들이 전해주는 향기에 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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