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를 찾기 전, 구례가 고향인 동료로 부터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어머니께서 식당을 직접 운영 하시지만 구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드라이브 코스, 명소 등을 소개해 줬는데 일정상 대부분 건너 뛰고 몇 군데만 탐방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닭구이로 유명한 집과 다슬기 요리 집이었다.
화엄사를 둘러 보고 출발할 무렵은 오후3시 조금 안 된 즈음이라 이른 아침 식사 이후 커피 외엔 아무 것도 먹질 않아 뱃가죽이 등판에 달라 붙기 일보 직전이었고, 때마침 지리산자락 바로 아래 가장 기대가 컸던 닭구이 집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루 휴무란다.
산수유마을에서 자라는 산수유 나무는 우리가 흔히 가로수로 보던 산수유와 차원이 틀렸다.
나무 밑둥치 굵기와 굴곡을 보면 몇 갑절 더 연세가 드신 나무 티가 팍팍 났고, 계절에 맞춰 붉게 익은 산수유가 가지에 빼곡히 열려 있었다.
아주 깔끔하게 재정비된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을 가로 질러 계속된 오르막길을 거쳐 도로가 끝나고, 여전히 산중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차가 겨우 한 대 통과할 수 있는 길 끝에 위치한 당골식당에 도착하자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주위를 멤돌았다.
당골식당에서 직접 키우는 호피무늬의 진도개 닮은 개는 아마도 손님과 불청객을 구분하기 위해 나름의 안테나를 세우고 낯선 우리를 탐색하다 식당 주인과 대화를 엿듣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유리 너머 식당 내부는 산골에 흔히 있는 닭백숙 분위기로 겉은 한옥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적절히 섞어 제법 너른 곳이었지만 사정상 하루 휴무를 한다는 말씀에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고, 주변 닭구이 식당을 찾을까 하다 플랜B로 두 번째 추천한 집으로 향했다.
근데 당골식당의 위치가 구례로 넘어 올 때 들렀던 성삼재 휴게소에서 보이던 마을이라 찾아갈 때 지리산 노고단의 위엄을 감상하며 가느라 금새 도착했다.
두 번째 찾아간 부부식당은 다슬기 수제비와 무침으로 유명 하다는데 실제 도착했을 당시 14:00부터 17:00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라 식당 앞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 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대략 4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주변을 서성이던 중 구례읍 사무소가 바로 옆이고 읍사무소 앞엔 2층 짜리 누각이 있어 주변을 둘러보기 좋은데 실제 읍사무소 앞에서 시선을 잡아 끈 건 500년 수령의 고목이었다.
누각에 오르면 이 정도 위치에서 사방을 둘러 볼 수 있어 구례 읍사무소 일대와 봉성산 정상의 누각, 지리산 노고단도 보였다.
고목에 이끌려 누각을 올라온 터라 읍사무소를 둘러 보자 그리 크지 않지만 나무 둘레가 큰 소나무가 버티고 있었고, 그 옆에 시선을 끈 고목이 서 있었다.
이 나무도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나무가 특이했다.
줄기를 자세히 보면 세월의 변곡점들이 상당히 많아 곧은 것보다 휘고 뒤틀린 선들이 더 많았다.
만추의 시기라 버들잎은 거의 떨어져 나무는 앙상한 상태지만 거친 세월의 흔적 마냥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뒤틀림이 있었고, 가지엔 세월의 슬픔을 달래는 듯 이끼가 서려 있었다.
여행 중에 흔하게 지나치는 나무는 몇 백 년 자라는 것 자체가 경탄할 만 했다.
인간의 이기로 몇 백 년을 버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문명의 발달로 이기심에 반하는 것들은 거침 없이 밀리고 잘려온 현실에 비추어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서 조차 온전하게 연세 드신 나무가 많지 않은데다 문명 속에서 뿌리를 둔 나무는 오죽 하겠나.
마을에서 신성시 하던 나무조차 현대에 들어 많이 잘려 나가고, 뽑힌 현실에 온전히 보호된 나무라면 인간들의 각별한 의미가 서려 있기 때문 아닐까?
이 왕버들조차 큰 가지에 온전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이건만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는 생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별해 보이는 나무에 빠져 있던 사이 어느새 오후 5시가 넘어 식당 문을 열 시각, 가까이 다가가자 내부엔 텅 비어 있었지만 주방 쪽은 준비로 분주한 손놀림을 보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로 자리 안내를 받고 착석 했지만 아무도 없어서 여기 이름난 식당 맞나 의심이 들었다.
허나 무침과 수제비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 끊임 없이 사람들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 식사를 하던 중엔 모든 자리가 꽉 차버렸다.
수제비는 흔히 먹는 다슬기 요리 중 해장국과 비교해서 국물이 조금 싱겁고 연했다.
사람 편견이 무서운 게 수제비를 첫 술 떴을 때 해장국에 비추어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다 몇 술 뜨는 사이 우리가 먹는 국수나 수제비와 비교했을 때 국과 달리 약간 묽게 먹는 걸 보면 비교의 잣대를 잘못 했구나 싶다.
장칼국수도 밥 반찬으로 먹는 된장 찌개처럼 짜고 걸쭉한 게 아니라 찌개보다 묽고 간이 싱겁잖아.
반 정도 비울 무렵 익숙한 재료지만 생소한 요리 였던 다슬기 수제비를 이해했다.
다슬기 무침은 한 입만 먹어도 '요거 물건인데!'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달짝 매콤이라는 기본 미각의 절묘한 버무림, 푸짐한 양배추의 달싹하면서 매콤한 양념을 달래는 시원한 맛이 꽤 좋은 궁합을 보였다.
다슬기 무침도 사실은 생소한 요리라 골뱅이에 빗대어 생각을 했건만 닮았지만 완전 다른 음식이었다.
골뱅이 무침이 식초의 새콤한 향과 불과분의 관계라면 다슬기 무침은 새콤한 향은 없고, 달달하고 매콤한 감칠 맛으로 담담한 다슬기 수제비와 함께 먹어도 좋지만 짜지 않아 무침만 먹어도 충분히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고향 마을에 대한 명소를 가르쳐 주기 위해 성의껏 테마를 짜주던 동료의 정성은 모든 음식의 양념과도 같았다.
"당골식당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이용하지 못하고 부부식당은 절묘하게 입맛 당기던 걸~"
"그쵸? 맛 괜찮았죠?"
그 흐뭇한 미소만큼 전라도 음식은 알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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