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훌쩍 떠나는, 아니 떠나버린 여행. 이지만 별 거 있나?
걍 가을 냄새 맡으려고 KTX표를 어렵게 구해서 금호강으로 갔다.
자전거 여행이나 해 볼까 했는데 이번엔 40km정도 타곤 육체적인 한계점에 다다라 당초 목표에 2/3 정도만 타고 뻗어 버렸다.
학창시절에 궁뎅이가 몽뎅이 찜질 당한 것처럼 무진장 아픈데 처음엔 자전거 빌린 것만도 감지덕지다 했건만 간사함이 여지 없이 드러나 공짜가 다그렇지,뭐. 그랬던 내 자신이 쑥스럽구먼, 시방.
말이 길어 지면 안되니 고고씽~
금호강 가천역 부근 자전거 길에 이런 멋진 코스모스 군락지가 있었다.
그 날(10월19일) 바람이 많음에도 싸늘하지 않으면서 흐린, 그러면서도 대기가 맑아 시야가 탁 트인 청량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날이었다.
자전거 길의 좌측은 한 눈에도 끝 없이 펼쳐진 금호강에 우측은 경부선 철길이라 그 나름의 운치가 작렬하는데 적당히 거리를 두고 평행으로 놓인 경부선의 열차 행렬이 마치 어릴 적 뒷동산 너머에서 보던 열차의 향수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른 곳들보다 지대가 높았던 철길 옆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코스모스가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뭘까?
앞만 보며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건 그 날 잠이 조금 부족한 탓도 있지만 금호강 상류를 향하여 고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바람을 가슴에 안고 달려야 되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 10km정도 달렸을 때 숨이 턱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촌역에서 빌린 자전거가 앞 기어 변경이 안되는 상태가 삐리리한 녀석이라 그 메카니즘에 적응하는데 좀 신경이 쓰인 탓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이고 뭐고 앞만 보며 달리려다 보니 어느새 하양 인근까지 페달을 놓지 않았다.
20여km를 달려 도착한 곳은 경산시민운동장.
한 쪽에선 야구에 한창이고 내가 한 시간 가량 머문 곳은 텅빈 축구장이라 포터블 스피커로 한껏 음악을 틀어 놓고 땀도 식히고 에너지 보충도 한 여유로운 곳이었다.
사방이 뻥 뚫린 한적한 곳에서 한참을 앉아 바람과 음악 소리를 듣다 보니 시간이 얼만큼 흘렀나에 대한 개념 조차 긴장을 풀어 버렸던, 시민운동장이라 하기엔 너무 인가와 떨어진 곳이었지만 잠깐의 노력만 들인다면 조용한 곳에서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넓직하고 조용한 곳이다.
정면은 뻥 뚫린 운동장이 몇 개 있고 등 뒤엔 확 트인 금호강이 흐른다.
한 시간 가량 있는 동안에도 이 운동장은 오로지 나 혼자만 큰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지키고 있었다.
엑백스(X100s)의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사진.
돌아가는 길에 잠깐 쉬는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몇 장을 찍었는데 이런 가을하늘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쪽 하늘 아래 팔공산에서 부터 새털 구름이 연기처럼 퍼져 나오는 장면은 그 자리에 서서 불어 오는 바람도 잊게 해 주는 매력이 있었다.
강촌마을이라 표기된 아파트 단지 인근 금호강 갈대밭.
석양이 살짝 굴절되는 갈대의 살랑거림은 바람에 이끌리는 아침 안개와 다를 바 없이 뿌연 빛의 파도와 같았다.
불로동 금호강 고수부지에 도착해서 잠시 쉬는 사이 석양이 지고 자그마한 노을의 잔해만 남았다.
특이하게도 흐린 먹구름과 노을이 같은 하늘 아래 대치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은 없고 망원렌즈를 장착하여 노을만 찍는 사람은 눈에 띄였다.
난 엑백스의 가장 큰 약점이자 장점인, 단렌즈라 선별할 수 있는 한계가 있어서 이런 류의 사진이 더 눈에 들어 온다.
여기에서도 한참을 앉아 이 장면을 지켜 보곤 땅거미가 들어설 무렵 일어나 동촌역으로 향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비슷한 구도를 찍은 아이폰5와 엑백스 사진.
아이폰도 폰카치곤 참 사진을 잘 찍는다고 느꼈지만 엑백스 사진과 비교해 보면 빈약할 뿐이다.
그럼 엑백스를 칭찬하는 게 합당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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