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20140920_가을을 잡으러 가자

사려울 2015. 3. 1. 21:50

불현듯 가을을 가지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이 생겼고 마치 그 욕구를 실현한 착각에 빠져들자 한술 더 떠서 어떤 가을, 어디 가을을 가질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에 빠질 무렵 어차피 내가 가질 가을이라면 철저히 고립되어 가공이 덜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뺏기지 않는 멀고 접근성이 불편한 곳을 선택해야 겠다는 내 나름의 용의주도한 착각에 빠졌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울진.

 

 

 

바다에도 가을볕이 들까?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듯 죽변 후정해수욕장으로 계획도 없던 발걸음을 돌렸더니 강렬한 햇살에 사람들이 모두 증발해 버렸다.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고 오로지 혼자 전세 내어 놓은 사람 마냥 모든걸 다 가진 기분.

동해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심연의 파란 바다와 하늘이 이종교배하여 더 깊은 파랑의 수평선이 너무도 선명하야 다른 색을 풀어 놓으면 집어 삼킬 기세다.

 

 

잠깐 바다 구경 후 죽변에 맛있는 커피가 있단다.

포구에 있던지라 멀쩡한 쇠도 녹으로 도배된 고철로 만들어 버리나 보다.

이마저도 내 눈엔 이색적이여라~

물론 이 계단은 출입 금지 상태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이런 장면 또한 놓칠 수 있으리~

고요하고 한적한 사진과 다르게 역시 바닷바람은 무시할 수 없다.

잠시 앉아 있는 사이 내가 쓴 모자도 훔칠 기세니.

 

 

죽변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바람언덕과 드라마 `폭풍속으로' 촬영지를 아니가 볼 수 있겠는가?

2007년 가을 장맛비가 맹위를 떨칠 때 여기 왔었는데 그 때 비해 달라진 거라곤 진입하는 좁은 길이 좀 매끈해 졌다는 것.

그 외에 거의 변화가 없는 걸 보면 관리를 아주 잘 한 듯 싶다.아차! 사진에 보이는 자그마한 광장은 원래 없었다.이건 확인해 봐야 겠는데 그 때 카메라 모양으로 출시된 샘숭 휴대폰으로 찍긴 했지만 이쪽 장면을 내가 찍었던가?

 

 

왠지 고즈넉하게 살고픈 바다 절벽 위의 전망 좋은 집, 이게 폭풍속으로 촬영 세트장인데 난 티비를 안 보기 땜시롱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겠고 내가 좋아하는 송윤아와 홍길동에 나왔던 남자 주인공이 나온 걸로 기억한다.

홍길동? 언제적 드라마인지도 모르겠네.

근데 `폭풍속으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격동의 젊음이 연상되기도 해서 멋져부러!

그 멋진 제목 만큼이나 멋진 풍광의 이 집은 그 위에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조차도 공중 부양의 착각에 빠져 들게 한다.

 

 

멋진 집에서 바라본 바람언덕.

넓은 광각렌즈가 있다면 제대로 그 느낌이 나지 않을런지...

하염 없는 바람과 그 바람이 부는대로 손을 흔드는 녹색 물결, 그리고 몽환적일 것만 같은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이 사진 곳곳에 여미어 귀에 뺨에 느껴진다.

 

 

이 갈대들은 신이 나셨다.

 

 

 

그 넓고 푸른 바다를 안고 한 가지에 열중인 강태공들.

 

 

짙은 푸르름 뿐인 바다 한가운데 하얀 고깃배가 금새 눈에 띄인다.

그리 빠르지 않은 탓에 유유히 바다를 표류하는 고깃배는 마치 바람이 흐르는대로 실려 가는 것만 같다.

 

 

 

태초부터 있었을 것만 같은 바람 언덕의 파수꾼 격인 하얀 등대는 바다의 신호기며 바람을 따라 찾아온 이들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그 멋진 모습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있어 한 번 정도 가봄직한데 난 언덕 위의 바다보단 언덕이 감싸고 있는 이 곳 세상이 더 좋을 뿐~

 

 

촬영지 절벽 바로 아래 한 분이 계시는데 마치 어떤 구구절절하고도 슬픈 사연이 있어 한참을 앉아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터, 자리에서 일어나서도 놓아둔 미련을 빠뜨린 듯 여기저기 찾고 계신다.

 

 

촬영지 절벽에 있던 집이 어부의 집이란다.

실제 안으로 출입도 할 수 있는데 마침 가을하늘과 맞닿은 지붕의 주황색이 파랑을 떠받드는 것만 같다.정갈한 자태가 다소곳하면서도 주변 전망의 응원 덕에 화사함도 잃지 않았다.

 

 

왕피천 하류에 작은 공원으로 향해 보니 작은, 아니 귀여운 동물원이 보여서 둘러 보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 가 보니 이렇게 뽀얀 거위가 연신 부리로 삿대질 중이다.

카메라 렌즈를 알고 있는 것일까?

몇 장 찍는 동안 이 자세는 변함이 없더구먼.

 

 

 

집요하게 자연을 놓치지 않은 울진의 싱그런 모습들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강바닥에 자욱한 다슬기며 강물이 뜸한 강바닥의 돌틈에 끼여 조용하게 생을 이어나가는 이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맑은 물이 넘실대는 계곡들.

인간의 이기는 생명을 윤택하게 지켜주는 자연에게 조차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다 보니 지극히 일상적인 자연의 모습들이 희귀해져 문명이 쉽게 닿지 않는 이곳이 이채롭게 보인다.

점차 시간과 함께 사라져가는 광경들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금강 소나무 치유의 숲이라...

말 그대로 금강 소나무 군락지 중 하난데 도보를 이용해서 둘러 보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키 크고 곧은 소나무들의 시간들이 음악으로 들리는 착각에 빠져 든다.그 노랫 소리는 시끌벅적한 소음을 일시에 잠재우고 일상의 치열한 삶에 길들여 졌던 나를 엄숙하면서 자상하게 보듬어 줬다.또한 그들과 함께 세상을 노래하는 수많은 또 다른 생명들은 가을과 함께 방문한 내게 소리가 일절 배제된 환영 인사를 했는데 어떤 화려한 인사보다 더 반갑게 들렸다.

 

 

 

 

 

 

 

가을이 되면 잠시 사그라들 약속을 한 들판의 꽃들은 가을햇살을 마지막으로 머금고자 잔뜩 넓게 꽃잎을 펼쳐 놓아 심호흡 중이시다.

다행인건 이곳에 방문했을 당시 흡혈 모기들이 없었다는 것!!!

 

 

산중에 아주 자그마한 마을이 있고 이런 황토집이 있다.

다른 집들과의 차이라면 멀찌감치 자연을 거리에 두고 있다는 것.

원주민들의 주거지는 대게 들풀과 나무들과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반해 이런 집들은 무늬만 전원주택일 뿐 가까이 자연들을 차단시켜 놓았다.

그 자연들이 그들의 이기심을 알아 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그런가?

 

 

가을 바람과 만날 약속이 있었다던 가을 갈대는 이미 예행연습 삼아 몸을 흔드는 중이다.

 

 

곧고 매끈하게 뻗은 금강 소나무는 몸도 붉그스름하다.

억겹은 아니더라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텐데 흐트러짐이 없는 걸 보면 잠시 스쳐가는 가을도 그들에겐 일상의 한 조각이며 자주 찾아오는 친구일테다.그런 가을이 다가올 무렵 설레는 내 마음과 달리 소나무는 그저 묵묵하게 맞아주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옆자리에 그늘이라는 자리를 깔아 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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