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25

가을 빛결 큰 골짜기에 흐른다_20191024

전날 태백에서 봉화 현동을 거쳐 통고산으로 오던 길은 뜬금 없는 비가 퍼부어 산간지대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실감케 했고, 짙은 밤이 만연한 오지 답게 도로는 지나가는 차량 조차 거의 끊긴 상태였다.아무리 그렇더라도 밤의 정점이 아닌 21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태백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음악에 집중하느라 속도 게이지가 한창 떨어진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고독한 밤길에 생명의 흔적들이 거의 없었다.통고산 휴양림에 도착하여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통나무집으로 들어가 싸늘한 방을 잠시 데우는 사이 기억에서 잠시 지워졌던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바로 통나무집 앞을 흐르는 여울 소리.2015년 만추 당시 이용했던 통나무집 바로 옆이긴 해도 3채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

회복과 함께 봉화를 가다_20190815

깁스를 풀고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컨디션으로 회복된 지 한 주가 지나 틈틈히 운전대를 잡으며 연습을 해 본 뒤 봉화로 첫 여행을 떠났다.물론 혼자는 아닌데다 아직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어 무리한 계획은 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을 늘 오던 숙소에 머물며 다슬기 잡기나 이른 가을 장맛비 소리 듣기에 유유자적 했다. 봉화에 간지 이틀째, 관창폭포를 지나 의외로 큰 마을과 생태 공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찾아 나섰다.산골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음에도 간헐적으로 인가는 쉴새 없이 늘어서 있고, 더 깊이 들어서자 산골이라고 믿기 힘든 너른 밭이 보인다.각종 약재나 고랭지 야채, 과일을 볼 수 있는데 다행인건 내리던 빗방울이 가늘어져 우산 없이도 다니는데 무리가 없어 이왕이면 카메라까지 챙겨 들었다.너른 밭..

7번 국도 울진 도화 공원까지_20190313

부산에서 출발해서 포항까지 오는데 한참을 걸려 17시반 정도로 늦어버렸다.학교 공직 생활을 하는 야무진 동생을 만나 커피 한 잔 나누는 사이 무심한 시간을 지칠 줄 모르고 흘러 이내 헤어졌고, 7번 국도를 따라 오는 사이 시간은 꽤나 많이 흘러 10시 정도가 되어서야 울진 도화공원에 도착했다.가뜩이나 울진하면 오지라는 인식이 강한데다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라 이 시각도 한밤 중인 시골 시계를 감안 했을 때 공원은 밝혀 놓은 불이 아니라면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텅빈 우주와 같았다.비 내리던 어제와 달리 미세 먼지로 대기가 뿌옇게 흐려 조금은 우려를 했지만 어찌하오리.이따금 텅빈 공원의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가 버리면 공원 전체는 아무런 소리도 전달되지 ..

창원과 부산 여정, 남은 건 사진 하나_20190313

전날 창원으로 가게 된 건 작년 학습에 자료를 제공해 준 분께 감사의 표현이자 받은 자료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기 위함이었다.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선뜻 자료를 전달해 주시면서 많은 분들이 그 자료를 통해 합격의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선행에 너무 감사했다.같이 공부하던 학우들 중에선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필요에 의해 없는 건 제공 받을 지언정 가지고 있던 자료는 꽁꽁 숨겨 혼자, 아니면 가까이 친분을 둔 학우들과 공유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상대 평가도 아닌데 많이 합격하면 심사가 뒤틀린다는 심보려나?그렇게 순수한 선행이 고마워 택배로 자료를 보내기엔 감사의 표현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 같아 직접 찾아 뵙겠다고 미리 밝히고 내려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보은을 지나 속리산 부근으로 지..

작별, 그리고 아버지 성묘_20190306

대구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일어나 오마니 뫼시러 합천으로 향하는데 최악의 미세 먼지 습격이다.대기가 뿌옇게 짓눌려 있는 건 기본이고 마치 자욱한 안개가 끼인 양 텁텁한 공기 내음까지 한 몫 한다.근래 들어 전국적으로 최악의 미세 먼지 농도란다. 합천에 오마니 모시러 가는 길, 지도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카페에 들러 잠시 여유와 따스한 향에 취해 본다. 처음 만난 친지-외가 쪽이라 외삼촌, 외숙모-를 모시고 따스한 진지상 한 번 대접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마실에 만만히 다니시는 백반집으로 가신다.백반도 좋지만 평소 잡숫는 식사보다 좀 특별한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한사코 거기로 가시는 고집을 어찌 꺾을 소냐.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작별 인사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께 뒷모습을 보이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봄과 새로운 만남_20190304

지금까지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가 분들을 만나며 어느새 그 분들과 오마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그 시절, 설움, 이해, 격려의 의미가 오고 가는 사이 난 잠시 한 발 물러나 집 주변을 서성였다. 여기도 집 한 켠에 작은 언덕이 버티고 있다.오마니와 친지분들은 이야기 꽃이 좀처럼 오므려지지 않고 끊임 없이 대화가 오갔고, 때마침 하루 지낼 계획을 했던 터라 오마니께선 여기에 묵으시고, 난 대구로 떠났다 내일 오전에 돌아와 점심을 기약했다. 겨울에 내줬던 들판에 봄이 찾아와 자연의 축복을 받은 또 다른 자연이 기나긴 겨울 잠을 깨치고 도약의 기지개를 편다.아주 작지만 그 필연의 과정이 이 세상을 신록으로 물들일지니 오묘하지 않을 수 있을까?안타까운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며...가는 계절은 아쉬움으로,오는 ..

희미한 요람의 기억을 찾아_20190304

아버지는 7형제에 친척까지 따지면 왠만한 소대 이상으로 명절이면 대규모 이동을 방불케 했다.그런 아버지 2째 형님 되시는 큰아버지 댁이 이 언덕에 기대어 자리 잡은 마을 중 초입의 이 집이었다.이왕 고령 온 김에 볕도 좋고 미세먼지 농도가 살짝 낮아진 날이라 오마니 옛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여기까지 찾아온 내 명석한 기억력! 한길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두 번째 집인데 너무 어릴 적에 왔던 기억 뿐이라 찾아 갈 수 있을까 했지만 기가 막히게 잘 찾아와 이 자리에 서자 잠자고 있던 기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온다.명절에 설레는 기분으로 기 길목에 발을 디디면 그 때처럼 누군가 반가워해 줄 손짓이 보일 거 같다. 높은 축대와 대문녘에 붙어 있는 사랑채, 밑집 사이 위태로운 담벼락, 외양간에서 늘 되새김..

오래되고 불편한 것들의 진실_20181202

늘 듣던 아이팟을 잠깐 쉬게 하고 CD를 끄집어 내어 들어 본다.근래 출시된 플레이어에서 느낄 수 없는 풍성함이 헤드폰으로 뿜어져 나오고, 임피던스 높은 헤드폰이라 여타 포터블에서는 버겁던 출력도 연세 드신 플레이어가 짱짱하게 울려 준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에도 까마득한 라이브 앨범인데 내가 소장한 라이브 음반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들만 골라 놓았다.한 마디로 가수들 라이브 대충 끼워 넣은 게 아니라 모든 라이브 곡들을 일일이 들어 보고 이게 낫겠다 확신이 드는 곡들을 종합 선물 세트처럼 구겨 넣었다.특히 내 취향에 최고는 U2 - All i want is you 역시 음악은 소스, 디바이스, 리시버, 거기에 더해 관심이 챙겨 주는 몰입의 밥상이 차려져야 되는군.소니 디스크맨~ 밥 잘 챙겨 줄테니 ..

앙금을 털다_20181202

한강 신륵사 건너편에 여기만 오면 들리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신륵사를 비롯하여 도자기 엑스포 공원과 꽤나 넓은 한강의 시계가 트여 있어 여주에 오면 꼭 들리는 곳 중 하나. 가끔 신륵사에서 돛단배가 뜨면 그마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고, 투썸 커피라 맛은 더 이상 논하면 입 아프니까 생략.그래서 여기만 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밖을 내다 보고 있는 모습이 목격된다.마시는 커피가 모든 커피의 초상이 아니듯 남한강의 멋진 조망이 가능한 카페에서 한 모금 커피는 혈관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주고, 때에 따라 마음 속의 앙금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곳이다.언제나처럼 남한강은 모든 투정을 아량으로 덮어주니까.

한강을 사이에 두고_20181202

많이도 왔던 곳 중 하나가 흥원창이라 큰 시험을 앞두고 계획은 했었다.습관적인 게 개인적으로 자잘한 이슈들이 있거나 부근에 지나는 길이면 어김 없이 들러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찍거나 아님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마냥 물끄러미 바라 보다 세찬 강바람을 실컷 맞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던 만큼 내게 있어 편한 장소이자 혼자만 알고 있던-착각일지라도- 비밀스런 장소로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자연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라 신비감도 있었다. 늘 왔던 곳이 부론 방면에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데 여기서 바라 보면 자연스럽게 여주 쪽을 볼 수 밖에 없어 처음 올 때부터 건너편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부론 방면에만 맨날 오다 보니 조금은 식상하기도 했다.그래서 지체 없이 차를 몰고 여주 방면으로 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