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34

먼 길에 쉼표, 여주 졸음쉼터_20220823

영동고속도로에 올라 엑셀러레이터를 뿌듯하게 밟으려는데 급하게 밀려오는 졸음. 다행스럽게 졸음쉼터가 있어 동네 한 바퀴 운동으로 떨쳐냈다. 근래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 이런 쉼터가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덤으로 여긴 늪지까지 있어 그리 심심하지 않은 데다 고속도로 쉼터라 한적하기까지. 졸음쉼터에 이런 작은 볼거리가 있다니. 거미줄이 많은 건 대수롭지 않지만 좀 지저분해도 이런 테마가 있어 다행이다. 장실은 좀 지저분하고 내음이 심하긴 했다. 한 바퀴를 돌아보면 나름 걷는 재미가 있었다. 가야 될 길이 한참 남아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출발했다.

여주와 부론을 오가며_20211002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아침부터 온 세상을 태울 듯한 강한 햇살에 은사 따라 덩쿨마 터널로 향했다. 덩쿨마가 만들어 놓은 녹색의 터널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덩쿨마는 크기가 제각각. 덩쿨마? 흔히 알고 있던 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는 녀석이 아니라 이건 가지가 덩쿨로 자라는 줄기에 열매가 '덩실덩실' 맺힌다. 맛은 영락없는 마에 모양은 연밥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은사를 찾아뵙고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잡념을 떨치던 날이었다. 아궁이와 가마솥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점점 사라져 가는 동시에 시간의 짙은 향수가 매캐하다. 이 정취가 마치 가을 초저녁에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낙엽 태우는 향 같다. 앞마당을 둘러본 뒤 점심 식사도 하고 드..

이른 아침 수주팔봉 가는 길_20210128

은사 댁에 들렀다 이튿날 일찍 충주 여행지로 향하던 중 해돋이를 만난다. 밭에서 잠자고 있는 배추와 한 치 오차 없이 동녘에 뜨는 일상의 태양은 외면받지만, 생명의 삶에 있어 필연과 같다. 분주한 도시와 다르게 시골 아침 정취는 부시시 고개를 내미는 햇살부터 여유롭다. 밭에 남은 겨울 배추를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난다. 서리가 앉아 꽤 신선하게 얼었다. 충주로 가는 길에 장호원을 지날 무렵 동이 튼다. 수주팔봉 도착. 주차장엔 스낵카와 내 차량뿐.

평온의 결실_20200920

뙤약볕 아래 태연히 갈 길을 가던 냥이를 부르자 냉큼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 마시던 차, 츄르 프라푸치노 한 잔 할래? 가을이면 만물이 풍성해진다고 했던가? 다짐과 도약이 풋풋한 봄이라면 고찰과 성숙은 결실과도 같은 가을이렷다. 자연과 어우러진 생명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듯 하나를 위해 일 년을 버틴 결실은 인내가 뿌려져 더욱 아름답다. 강과 길을 따라 들판으로 번진 가을은 수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잠시 걷던 수고로움에 영혼의 물 한 모금을 살포시 건넨다. 내가 유쾌한 건 '말미암아' 불씨를 달래고, 네가 아름다운 건 '믿음'의 도화선이다. 여주 행님 댁에 도착, 머릿속은 온통 평온만 연상된다.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한 쌍이 아쉽게도 제 짝을 잃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

시간도 잠든 밤, 여주 남한강변_20200912

여름과 가을 내음이 공존하는 순간, 여주 신륵사 관광지에 주차한 뒤 산책을 나섰다. 낮에 그리 분주하던 세상은 피곤에 지쳐 잠들고, 오로지 불빛만 요란한데 박물관 맞은편 유원지 주차장엔 밤이 무색하게도 차박이 성행했다. 박물관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하루의 숨을 고르며, 한강 일대 야경을 감상했다. 제각기 한자리에 서서 요란한 불빛으로 시선을 불렀다. 돛배 선착장 앞에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적막을 가로질렀다. 낮에 내린 비가 채 떠나기 전, 홀로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심약한 등불을 반사시키며 세상에서의 짧은 순간을 기리는 가을장마의 흔적이다.

골짜기 작은 갤러리, 컨츄리 블랙 펍_20200709

한이와 같이 감곡에서 만나 여주 행님과 감곡 형을 찾아뵙는다. 여주 행님은 어차피 은사와 같은 분이라 언제든지 찾아뵙게 되지만 감곡 형은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렇다고 먼 곳에 사는 것도, 연락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유체이탈한 것처럼 바쁘지도 않건만 거의 1년 만에 뵙는다. 늘 서글서글한 인상에 매끈한 어투, 진정한 삶은 곧 끊임없는 변화와 능동적 대처이기에 늘 발로 뛰는 형인만큼 감곡, 장호원에서는 마당발이다. 그런 형을 여주 행님과 고향 친구와 함께 찾아갔으니 지극 정성에 멋진 자리로 안내했다. 작긴 해도 산 중턱이라 사람들이 오려나 싶었지만 입소문이 그래서 무서운지 저녁 시간이 되자 알흠알흠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 금세 너른 주차장에 반 이상 들어찬다. 거의 1년 만에 만나 뵙는 반가움이 무색하게 ..

초여름 정취에 취한 들판, 여주_20200607

여주 벌판을 뒤덮은 계절의 정취를 보면 봄과 확연히 다른 여름이 보인다. 묘하게도 난감할 것만 같은 계절은 추억을 남기며, 붙잡고 싶은 미련은 떨칠 수 없는데 앞선 편견으로 나래도 제대로 펼치지 않은 계절에 대해 가혹한 질곡을 씌워 버린다. 후회에 길들여지기 싫어 무심한 일상도 감사하려는 습관은 절실하다. 길들여진 습관을 탈피하기 힘들어 그 위에 호연한 습관을 덧씌울 수밖에. 단조롭지 않고 세월의 굴곡 마냥 들쑥날쑥한 벌판에 한발 앞서 여름이 자리 잡았다. 석양을 등진 흔한 마을길에, 흔한 마을을 지키는 각별한 나무. 석양이 뉘엿뉘엿 서녘으로 힘겹게 넘어간다. 여름의 햇살이라 하늘과 세상 모두를 태울 기세다. 고추 모종이 결실의 꿈을 품고 무럭무럭 자란다. 감자꽃이 뾰로통 피어 올 한 해 거듭 나기가 쉽..

적막과 평온의 공존, 여주와 흥원창_20200521

오랜만에 찾은 여주, 한강은 언제나처럼 유유하고, 고즈넉한 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차분했다. 어디선가 태웠던 낙엽이 대기 중에 향취로 남아 밟은 길 위에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 기분을 이어가느라 차분히 걷는다. 남한강 두물머리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이 잠시 멈춰 선 시간으로 뺨을 적시던 날, 행님께선 모처럼 찾은 나를 위해 서툴지만 토닥토닥 저녁을 준비하시고, 뒤이어 들판에서 자라던 온갖 싱그러운 야채를 한가득 식탁 위에 쌓아 올렸다. 풍성한 인심은 그 어떤 양념보다 맛깔스러워 가끔 잡초가 끼어 있더라도 그건 저녁 입맛을 응원해 주는 봄내음이다. 온전한 하늘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둘러 매고 빛이 없는 들판으로 나갔으나 막상 찍고 보니 구름 일변도다. 오순도순 정성이 빚어낸 행님의 보금자리. ..

비 내리는 강변에서 인상깊은 커피향_20200225

지치지도 않고 한결 같이 유유한 자태. 비가 내려 작은 파문은 지나가는 기후의 작은 배려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각별한 시각이 더해져 풍미가 유유해진다. 창밖에서 두드리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부른 걸까? 아님 한강이 부른 걸까? 유독 이 카페에 오면 숙연해지는 건 큰 어르신, 한강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선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지만 그 선택이 즐겁다.

여주에서 맺은 또 하나의 인연_20200118

작당을 꾸민 건 반 년 전부터.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었다. 그도 그럴께 어릴 적 어른들로 부터 쇄뇌 당하다시피 들었던, 고양이는 간사하고, 주인이 필요없다고 판단되면 주인을 버리고, 귀신을 부르고, 혼자 지내는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고양이에 대한 삐뚤어진 시선으로 자리 잡았고, 그게 왜곡되었단 것조차 몰랐던데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어릴 적 시골에서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키웠지만 곡식과 사료의 주범인 쥐를 잡기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이 고양이 이상은 없고, 그런 쥐잡이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서 인간과 동격화 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는 고양이한테 린치를 가한다거나 죽여야 되는 대상으로 생각한 건 아니고, 그저 눈에 띄이는 고양이한테 힘껏 발을 굴러 저리가라는 위협 정도만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