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39

먼 길에 쉼표, 여주 졸음쉼터_20220823

영동고속도로에 올라 엑셀러레이터를 뿌듯하게 밟으려는데 급하게 밀려오는 졸음. 다행스럽게 졸음쉼터가 있어 동네 한 바퀴 운동으로 떨쳐냈다. 근래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 이런 쉼터가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덤으로 여긴 늪지까지 있어 그리 심심하지 않은 데다 고속도로 쉼터라 한적하기까지. 졸음쉼터에 이런 작은 볼거리가 있다니. 거미줄이 많은 건 대수롭지 않지만 좀 지저분해도 이런 테마가 있어 다행이다. 장실은 좀 지저분하고 내음이 심하긴 했다. 한 바퀴를 돌아보면 나름 걷는 재미가 있었다. 가야 될 길이 한참 남아 크게 심호흡하고 다시 출발했다.

여주와 부론을 오가며_20211002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아침부터 온 세상을 태울 듯한 강한 햇살에 은사 따라 덩쿨마 터널로 향했다. 덩쿨마가 만들어 놓은 녹색의 터널이 무척 인상적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덩쿨마는 크기가 제각각. 덩쿨마? 흔히 알고 있던 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는 녀석이 아니라 이건 가지가 덩쿨로 자라는 줄기에 열매가 '덩실덩실' 맺힌다. 맛은 영락없는 마에 모양은 연밥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하다. 모처럼 은사를 찾아뵙고 '덕지덕지' 붙은 피로와 잡념을 떨치던 날이었다. 아궁이와 가마솥은 조만간 문화재로 등재되더라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점점 사라져 가는 동시에 시간의 짙은 향수가 매캐하다. 이 정취가 마치 가을 초저녁에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낙엽 태우는 향 같다. 앞마당을 둘러본 뒤 점심 식사도 하고 드..

이른 아침 수주팔봉 가는 길_20210128

은사 댁에 들렀다 이튿날 일찍 충주 여행지로 향하던 중 해돋이를 만난다. 밭에서 잠자고 있는 배추와 한 치 오차 없이 동녘에 뜨는 일상의 태양은 외면받지만, 생명의 삶에 있어 필연과 같다. 분주한 도시와 다르게 시골 아침 정취는 부시시 고개를 내미는 햇살부터 여유롭다. 밭에 남은 겨울 배추를 보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난다. 서리가 앉아 꽤 신선하게 얼었다. 충주로 가는 길에 장호원을 지날 무렵 동이 튼다. 수주팔봉 도착. 주차장엔 스낵카와 내 차량뿐.

평온의 결실_20200920

뙤약볕 아래 태연히 갈 길을 가던 냥이를 부르자 냉큼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 마시던 차, 츄르 프라푸치노 한 잔 할래? 가을이면 만물이 풍성해진다고 했던가? 다짐과 도약이 풋풋한 봄이라면 고찰과 성숙은 결실과도 같은 가을이렷다. 자연과 어우러진 생명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듯 하나를 위해 일 년을 버틴 결실은 인내가 뿌려져 더욱 아름답다. 강과 길을 따라 들판으로 번진 가을은 수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잠시 걷던 수고로움에 영혼의 물 한 모금을 살포시 건넨다. 내가 유쾌한 건 '말미암아' 불씨를 달래고, 네가 아름다운 건 '믿음'의 도화선이다. 여주 행님 댁에 도착, 머릿속은 온통 평온만 연상된다.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한 쌍이 아쉽게도 제 짝을 잃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

시간도 잠든 밤, 여주 남한강변_20200912

여름과 가을 내음이 공존하는 순간, 여주 신륵사 관광지에 주차한 뒤 산책을 나섰다. 낮에 그리 분주하던 세상은 피곤에 지쳐 잠들고, 오로지 불빛만 요란한데 박물관 맞은편 유원지 주차장엔 밤이 무색하게도 차박이 성행했다. 박물관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하루의 숨을 고르며, 한강 일대 야경을 감상했다. 제각기 한자리에 서서 요란한 불빛으로 시선을 불렀다. 돛배 선착장 앞에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적막을 가로질렀다. 낮에 내린 비가 채 떠나기 전, 홀로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심약한 등불을 반사시키며 세상에서의 짧은 순간을 기리는 가을장마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