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5

거대한 핑크빛 출렁임, 합천 황매산_20220502

꽃이라고 해서 꼭 향기에만 취하는 건 아니다. 가슴속에 어렴풋 그려진 꽃이 시선을 통해 굴절된 꽃을 통해 꽃망울 필 때면 잠깐의 화려한 향이 아닌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관통하여 끝끝내 취한 나머지 행복의 추억에 가슴 찡한 향을 터트린다. 때론 선명한 실체보다 아스라한 형체가 상상의 여울이 되어 흐를 때 비로소 그 기억을 품고 사는 내가 누구보다 아름다운 마음의 꽃밭에서 유유히 도치된다. 1년 전 황매산 행차할 때 코로나 백신 여파로 밤새 끙끙 앓았었는데 이번엔 그런 무게가 없어 한층 가벼웠고, 더불어 조카 녀석도 한 자리 차지해서 웃는 횟수도 많았다.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대병면과 산청군 차황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 1,113m에 이르며, 준령마다 굽이쳐 뻗어나 있는 빼어난 기암괴석과 ..

낙동강을 건너며_20211025

무척이나 한적한 황강을 지나고 낙동강변길을 달리며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 합천창녕보에 멈췄다. 땀을 훔치기 위해 쉬던 한 무리 자전거 동호회 무리가 아니라면 온전히 공백 상태인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출입은 금지 상태. 찬물에 손을 씻고 주차된 차로 가던 도중 주차장 바닥에 뭔가 보였다. 저게 뭐지? 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어린 뱀 하나가 아스팔트 포장된 주차장 한가운데 일광욕 중이시다. 아마 개발로 인한 보금자리 변화 때문이 아닐까? 독이 없는 아주 어린 뱀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자 걸음아, 날 살려줍쇼 그러는 것처럼 황급히 도망간다. 너무 어린 녀석이라 불쌍한 마음에 더 이상 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뱀을 돌 같이 볼 수 없어 옮겨 주지는 못했다. 합천에서 낙동..

오도산 가는 날_20210427

여행의 출발과 함께 늦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성묘를 꽃피는 춘삼월 끝물에서야 감행했다. 이미 세찬 바람에 잔뜩 실려 세상을 떠도는 송화가루가 자욱하지만 도심을 벗어나 뺨을 간지럽히는 숲 속 향기는 간절한 휴식의 내음과 흡사했다. 매번 방문 때마다 같은 자리에 서서 정독하는 계절의 정취를 보는 재미는 마치 애써 찾는 파랑새의 자취를 쫓는 것 마냥 졸립던 눈마저 초롱해진다. 최종 목적지인 오도산 휴양림으로 출발하여 고령을 지나는 길에 식사를 해결하고 동네를 둘러보던 중 시간의 흔적이 역력한 한옥에 발걸음이 멈췄다. 너른 마당 본채와 문간 사랑채는 고전적인 한옥을 그대로 살렸고, 옆채는 현대식의 단촐한 현대식인데 나무를 잘라 인간이 편의에 따라 만든 형태를 보면 꽤 오래전 부터 지붕을 받들어 나무 특유의 무늬와..

희미한 요람의 기억을 찾아_20190304

아버지는 7형제에 친척까지 따지면 왠만한 소대 이상으로 명절이면 대규모 이동을 방불케 했다.그런 아버지 2째 형님 되시는 큰아버지 댁이 이 언덕에 기대어 자리 잡은 마을 중 초입의 이 집이었다.이왕 고령 온 김에 볕도 좋고 미세먼지 농도가 살짝 낮아진 날이라 오마니 옛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여기까지 찾아온 내 명석한 기억력! 한길에서 언덕으로 오르는 두 번째 집인데 너무 어릴 적에 왔던 기억 뿐이라 찾아 갈 수 있을까 했지만 기가 막히게 잘 찾아와 이 자리에 서자 잠자고 있던 기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온다.명절에 설레는 기분으로 기 길목에 발을 디디면 그 때처럼 누군가 반가워해 줄 손짓이 보일 거 같다. 높은 축대와 대문녘에 붙어 있는 사랑채, 밑집 사이 위태로운 담벼락, 외양간에서 늘 되새김..

대가야 품으로_20190303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오마니 고향을 찾아 보기 위함이었고, 더불어 오랫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먼 친지의 소식이 전해져 반가움을 실현해 드리고자 했다.너무 느긋하게 밟았나?5시간 걸려 고령에 도착, 저녁 식사를 해결할 마땅한 식당을 찾느라 30분 동안 헤메는 사이 8시를 훌쩍 넘겨 버렸고 하는 수 없이 치킨 한 마리와 햇반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오마니도 기운 없으신지 대충 해결하자고 하시는데 그래도 배는 불러야지.지도 검색에 치킨집은 많지만 막상 댓글 평이 좋은데가 많지 않아 여기로 선택했는데 불친절에 착한 가격은 아니다.맛이 있다면야 가격이 문제겠냐마는 자극적인 소스에 절여 놓는 수준이라 치킨 특유의 식감과 맛은 찾기 힘들다.배 고픈데 더운 밥, 찬 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