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6

경적 소리도 떠나버린 간이역, 선평역_20220316

느림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곳이 간이역이다. 곡선과 느린 열차, 공허함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고, 강렬한 향수가 된다. 과거엔 설렘을 약속했지만 이제는 잊혀짐을 약속하는 곳, 정선으로 가는 길에 졸고 있는 간이역을 찾아 잠시 그 향취에 시간을 표류했다. 더불어 이름까지 아름다운 간이역을 되뇌어 여정에 뿌려진 향취를 선물 받았다. 별어곡-선평-정선-아우라지-나전-구절... 울진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길에 들른 태백은 내 여정에 있어 길목과 같은 곳이었다. 커피 한 잔, 올리브영에 들러 스킨 하나를 하고, 저녁 식사와 쉼표를 제공해 준 곳으로 차를 세워둔 곳에 황지연못에서 흐르는 작은 도심 하천을 감상한 뒤 조바심을 버리고 정선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의 둘째 날, 정선아리랑과 바람의 나라_201..

천리 행군?_20190924

하루 동안 천리 행군 저리 가라다.학가산에서 출발하여 원래 목적대로 대구, 봉화를 거쳐 집으로 갈 심산인데 단순하게 직선길로 가는 것도 아닌지라 고속도로와 꼬불꼬불 국도를 종횡무진 했다. 학가산 휴양림을 빠져 나와 예천IC로 가던 중 어등역 이정표를 보고 핸들을 돌려 반대 방향길로 접어 들어 처음 들어본 시골 간이역에 잠시 들렀다.멀찌감치 차를 세워 놓고 혼자 걸어 어등역에 다다르자 굳게 문이 닫혀 더이상 운영하지 않는 폐역이었다.이런 모습의 간이역은 참 익숙한데 깔끔하게 덧칠해진 외벽은 왠지 이질감이 든다. 어등역 바로 앞은 이렇게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 너머 마을로 접어 들기 위해선 작고 낡은 다리를 건너야 되는데 얼마나 발길을 외면 받았는지 다리는 위태롭고 다리 초입은 수풀이 무성하며, 다리 ..

막연한 추억과 그리움, 봉화역_20190516

막연한 기다림과 그리움.텅빈 시골 역의 허허로운 플랫폼에서 지는 석양을 바라다 본다. 무심한 석양은 안중에도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서 서서 출발의 설렘과 도착의 안도를 얼마나 느꼈을까?덜컹이는 열차의 승차감이 무척 불편하건만 어색한 신경을 마비시키는 기대감은 설사 열차의 좌석이 모두 매진되어 제대로 된 자리도 없이 한정된 공간을 떠도는 와중에도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지루하던 불편은 금새 메말라 사라져 버린다.감정이란 오묘하게도 한 순간의 불편과 투정을 극도로 자극시켰다 이내 가라 앉고 모든 설렘에 몸을 맡겨 버린다. 시골 역 치곤 꽤 크다.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그림자도 덩달아 길게 늘어난다.가끔 시골 마을에 들렀다 간이역에 들러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플랫폼에 잠시 서서 텅빈 시간을..

태백에서의 둘째 날, 정선아리랑과 바람의 나라_20170528

막상 출발은 했지만 생각보다 오마니께서 피곤한 기색이 있으셔서 마음이 무거웠다.젊은 시절 여행은 사치라고 여기실 만큼 평생을 자식에게 헌신한 분이라 익숙지 않은 먼 길 이었던데다 오시기 전 컨디션도 그리 좋지 못하셨다.가급적이면 가시고 싶으신대로 모셔 드리려고 했음에도 정선 장터만 알고 계신 터라 증산에서 화암약수와 소금강을 지나는 산길을 통해 정선 장터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 들릴 예정은 아니었지만 지나는 길에 늦봄의 뜨거운 햇살이 가져다 준 갈증으로 인해 화암약수를 들리기로 했다.조용했던 초입과 달리 약수터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약수를 뜰 만큼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가면서 순간 조용해졌다.뒤이어 관광버스와 몇몇 커플들이 오자 다시 떠들썩해 졌지만 오래 머무르..

황혼의 간이역_20141102

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이 정체라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영주 방면으로 선택했다.가던 길에 옛추억을 곱씹기 위해 분천역으로 빠졌더니 예전 간이역의 풍경은 많이 퇴색되었다.너무 매끈하게 다듬어 놓아서 그런가? 말 없는 기차 선로는 여전히 말이 없다.역사길로 사라져 가는 철도의 눈물 없는 슬픔이 침묵으로 들려 온다. 환상열차와 협곡열차라는 상품으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다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려 순식간에 사라지자 다시 적막 뿐.환호는 잠시, 좀전과 상반된 적막이 선로를 무겁게 누른다. 철도에 옛추억을 간직했던 산골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삶과 같..

하늘 아래 가을 나린 태백, 정선_20141019

첫째날이 정선행이었다면 이튿날은 태백으로 방향을 잡았다.원래 매봉산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갈 목적이었으나 매봉산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덕분에 검룡소는 다음으로 기약하기로 하자. 태백에 오면 늘 들리는 통과의례는 바로 정선에서 넘어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내려다 보고 있는 울나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추전역이다.지금은 폐역으로 분류되어 정식으로 열차가 정차하지는 않지만 관광지로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라 내가 찾아간 그 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렀다.어떤 이들은 옛추억에 서린 간이역을 회상하기 위하여, 어떤 이들은 가장 높은 역이라는 나름 상징성이 주는 호기심에서, 또 어떤 이들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좀 더 해맑은 가을 산중을 구경하기 위함 일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관광지로 뜨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