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포항까지 찾아온 이유,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다.
허나 태풍급 바람에 굵은 빗방울은 해안둘레길은 고사하고 외출도 쉽게 허락하지 않아 아쉬운 대로 공원 뒤편 언덕과 테마공원의 사연 정도만 취득하며 바다 정취를 한아름 따다 품에 간직했다.
연오랑세오녀는 신라시대 설화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단다.
동해 바다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잠시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고로 동해의 선물이라 간주하며 다음을 기약하자.
이야기가 가득한 하루를 열기 전, 아점 메뉴를 고민하다 숙소 뒤편에 소위 집에서 말아먹는 국숫집에 들러 김밥을 곁들여 주문을 했는데 운영하시는 분이 장년의 여성분으로 깔끔하고 단아한 식당 내부와 더불어 마치 집에서 먹는 국수 같았다.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도 엉뚱한 맛이 아닌 딱 집국수로 거기에 양념장을 축축 걸쳐 먹는 사람 입맛에 맞게 간을 하는 영락없는 집국수였다.
김밥도 찍어내듯 빈약한 그런 김밥이 아니라 통통한 김밥으로 두 조합이 꽤나 괜찮았고, 식사를 하는 동안 내 분위기가 이방인 같은 느낌 때문인지-여행을 가게 되면 최대한 현지화되지만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몇 차례 질문을 주셨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이 때문에 이튿날 아점도 여기서 해결했다는 건 안비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은 포항 12경 중 8경으로 천혜의 절경 동해면 해안을 따라 설화가 녹아든 공원.
삼국유사에 수록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월신화(해와 달이 이 세상에 있게 된 내력을 밝히는 이야기)이자, 포항지역의 대표 설화로 고대의 태양신화의 한 원형으로 꼽힌다.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연오(延烏)와 세오(細烏) 부부가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가, 일본에서 보내온 세오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설화로 본래 수이전(殊異傳)에 전하던 것인데 고려 때 삼국유사에 채록되었다.
이 설화는 단순한 연오/세오 부부의 이동설화가 아니고 고대 태양신화의 한 원형으로 여겨진다.
[출처]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_포항시 퐝퐝여행, 연오랑 세오녀 설화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풍급 폭풍이 몰아친다는 일기예보를 미리 참조했건만 막상 현지 날씨는 장난 아니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줄긴 해도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우산은 종종 뒤집히기 일쑤였고, 테마 공원엔 거센 바다가 길을 내어줄 리 만무하여 이런 일기에 해안둘레길은 제 발로 사지에 내모는 격이라 하는 수없이 공원 뒷켠 언덕길이 눈에 띄어 거기로 돌격했다.
계단길로 오르며 바다를 바라보니 정말 살벌했고, 그 살벌한 영일만 너머 포항 제철공단이 어렴풋 보였다.
계단을 통해 언덕에 발을 들이자 이런 멋진 오솔길이 있어 걷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이따금 이런 곁길 너머 바다가 보이는데 바닷가 멀찍이 떨어져 걸으며 바다 내음이 실린 폭풍우 내음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비릿한 내음이 아니라 병에 포집하여 간직한 향수 같았다.
길은 이렇게 정갈했고, 거친 바람에도 길은 굴하지 않아 이 길이 끝날 때까지 길을 굳게 믿었다.
언덕배기 가장 높은 지점에 닿자 너른 공간이 펼쳐졌고, 그 공간에 전망대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전망대 바로 옆 소나무는 꽤 멋있어 바다와 소나무를 연신 번갈아 훑으며 감탄했다.
전망대 일대는 소나무숲으로 둘러 쌓여 바닷가 솔숲도 정취가 좋았다.
전망대를 지나자 언덕은 이내 낮아지고 공원으로 이어졌다.
바다와 인접한 공원은 꽤 규모가 크고 테마가 다양했다.
공원 내 전시관은 연오랑세오녀에 대한 설화를 밀도 있게 표현했다.
전시관 이름은 세오가 짠 비단을 보관했던 창고 '귀비고'에서 명명했는데 총 4개 층 규모로 운영하며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테마가 상이했고, 지상 3층 경우 루프탑이라 폭풍으로 인해 출입이 불가했다. 아까비!
바다 조망의 멋진 일월대.
막연히 거친 바다의 모습 하면 이런 장면이 연상되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내일로 기약하고, 바다와 폭풍 언덕을 뒤로한 채 숙소 인근 영일대 해변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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