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에 대한 사색

택시운전사와 눈물_20170822

사려울 2017. 8. 25. 21:05



회사 동료들과 갖게 된 무비데이의 일환으로 용산CGV를 찾게 되었다.

용산으로 선택한 이유는 계절밥상에서 저녁을 폭풍 흡입한 후 한 층 차이로 붙어 있어 이동이 한층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20일날 내 생일빵으로 동탄 계절밥상을 갔건만 2일 후에 다시 계절밥상을 찾게 될 줄 산신령도 몰랐을 게다.

어차피 익숙한 메뉴의 밥과 찬거리로 식사 한 끼 한다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닌데 이런 곳을 가게 되면 마치 참아왔던 식욕을 일시에 해소 시켜야 된다는 강박증은 왜 생긴거지?

한 끼 때우는 식사 치곤 만만한 가격이 아니라 그럴 수 있겠다.

본전 생각에 익숙한 습성이 남아 있어 이 정도 단가를 지불한다면 그 날 끝장을 봐야 되는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그리 관대한 편은 아닌데다 뭔가 아주 근사하거나 특별한 메뉴가 구비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화근으로 욕심만 잔뜩 부린 탓에 얼마 먹지 않고 사정 없이 팽창하는 뱃살을 두드리며 음식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질려 버렸다.

커피 한 잔 마실 욕구조차 날아간 상태로 그 자리에 더 이상 있기도 힘들어 얼마 앉아 있지 않고-원래 2시간 앉아 있으면서 커피로 마무리한 후 느긋하게 상영관으로 갈 예정, 그래도 우린 1시간반 앉아 있었군- 상영관으로 바로 이동, 40분 가량의 널널한 여유로 CGV 전체를 둘러 볼 심산으로 VR 체험관까지 돌아다니며 즐겼다.



영화는 압도적인 지지로 '택시운전사' 당첨, 간혹 '혹성탈출'과 '청년경찰'도 물망에 올랐지만 거의 매장되는 분위기 였다.



영화 초반엔 송강호 전매특허인 서글함과 능글 맞음의 경계를 오가며 잔잔한 웃음을 유발 했지만 전날 밤잠을 설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좌측과 우측을 번갈아 인사 하느라 내용이 크게 기억 나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와 휘몰아 칠 폭풍에 비해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긴장을 벗어 놓았기 때문일까?



택시가 서울을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 길목 곳곳을 차단시킨 군과 접촉 하는 순간부터 잠을 떨치고 영화의 세계에 몰입됐다.

광주를 애워싼 군부의 삼엄한 경비를 접하던 순간부터 긴장감은 급격히 고조 되었고 광주에 진입하여 잠시 류준열 일행의 시위대와 맞닥드릴 땐 곧추 세웠던 긴장감이 잠시 풀리며 그들의 의지에 찬 열정이 미동도 않던 극장 내 갑갑한 공기에 신선한 바람 같았다.



독일인 기자가 그 청년 일행과 합류하여 어디론가 이동하던 중 차를 돌려 광주를 벗어 나려던 택시 운전사 송강호가 아들을 애타게 찾던 노모의 절규를 보며 나는 첫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나라의 한 시민이기 이전에 아이에 대한 뜨거운 모정은 맨발에 발바닥이 까이고 뜯길 지언정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모든 신경의 파동은 내 아이가 성인이든 어린이건 간에 내 생명의 모든 것으로 받아 들일 것만 같은 배우의 허망한 연기는 결코 과장되거나 추호의 의심 없이 공감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과 다를 바 없는 공통 분모이기에 그 심정이 그대로 내 심장을 가격해 버렸는데 어찌 눈물의 피드백을 보내지 않겠는가.



이미 영화의 구성원이 되어 버린 마당에 총포의 화염은 내게 여과 없는 고통으로 전달되었고 그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보다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명분은 당시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명분과 함께 현재 내가 누리는 행복에 당시 권력의 언론 유린의 복합적인 감정의 혼돈으로 뒤섞여 하염 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무지하다는 이유로 주위에서 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빨갱이'로 간주 했을까?

그들의 치졸하고 비열한 회피가 부끄러워? 아님 지역이라는 허울로 밟히기 전에 밟을 심산으로?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부조리에 맞서 나서는 행동을 못할 바엔 손가락질은 하지 말아야 된다.

우린 늘 친일파에 대해, 매국노에 대해 손가락질 하지만 그들 중에 상당수는 매국노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안목이 있던가?

나랑 정치적 이념이 맞지 않으면 빨갱이로 매도 되는 사회적 비겁함이 그들 가족에게도 전이 되었을때 그 누가 내 가족을 빨갱이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바엔 차라리 광주에서 목숨을 바친 용기 있는 분들께 경의를 표하고, 또한 여전히 총과 방망이를 휘두르게 한 그 '범죄자'들의 파렴치하고 뻔뻔한 회피에 대해 가운데 손가락과 저주를 표해야 되지 않을까?

그리 당당 했다면 회피하지 않았을 터, 아직도 숨기려 하고 숨는걸 보면 이런 말이 생각 난다.

'숨는 자가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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